[소비자] 불꽃튀는 퍼지 판촉
  • 고명희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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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3社 세탁기 전쟁 "과대선전이다" 비난도

가전업계에 퍼지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9월에 대우전자가 최초로 퍼지세탁기를 개발했지만 시판은 금성사가 한발 앞섰고, 여기에 삼성전자가 11월중순부터 시판에 가세할 예정이어서 바야흐로 '퍼지세탁기전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국내 굴지의 가전3사의 제품경쟁은 '퍼지' 기술자체를 둘러싼 공방인가. 아니면 광고경쟁에 불과한가.

영어 퍼지(fuzzy)는 사전을 찾아보면 '흐릿한' '희미한'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불분명한 개념이 인공지능을 가리키는 첨단이론으로 구체화된 것은 그 개발동기를 살펴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자데 교수는 자신의 아내가 과연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확하게 수치로 나타낼 수 없을까 궁리하던 끝에 막연한 생각을 분석할 수 있는 수학이론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퍼지이론'이다. 일본에선 지난해 10월 마쓰시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가정용품에 적용한 이래 세탁기, 컬러텔레비전, 진공청소기, 팬히터 등 거의 모든 가전제품에 확대되어 금년 상반기에만 5백억엔어치의 퍼지제품을 판매했을 정도. 퍼지제품이 아니면 팔리지 않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세탁기보다 두배는 더 팔린다"

또한 단가측면에서도 기존의 마이콤(마이크로컴퓨터)에 퍼지회로를 내장하면 되므로 비교적 저렴한 비용을 들여 고성능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퍼지열풍이 일어나게 된 요인이다. 국내에서도 퍼지세탁기생산업체들은 '조금만 더 편리하면 가격경쟁에서 이긴다'는 영업전략하에 일반세탁기와 거의 같은 가격수준에서 판매하고 있다. 금성사의 퍼지세탁기(모델 WF-1410Y)는 용량이 종전 6.2kg에서 6.7kg으로 늘어나고 퍼지기능이 보태졌지만 가격은 52만9천원에서 55만 9천원으로 3만원 올랐을 뿐이다. 삼성의 새제품(SEW-62Q2)도 종전제품(SEW-62Q1)에 비해 퍼지기능이 추가됐지만 용량은 똑같은 6.2kg이고 가격은 1만원 오른 55만8천원이다. 이렇게 가격은 비슷하고 기능이 추가된 까닭에 "약 10 대 5로 퍼지세탁기가 일반세탁기에 비해 많이 팔리고 있다"고 미도파백화점 홍보과 朴明錫씨는 전한다.

그렇다면 퍼지세탁기는 같은 값이면 편리한 것을 찾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제품인가.

실제로 세탁하는 순서를 따라가면서 퍼지회로를 알아보자. 우선 세탁물을 통 속에 넣고 세제를 넣은 뒤(대우와 삼성은 자동투입구가 있고 금성은 없다) 수도와 연결한다. 스위치를 누른다. 이 순서까지는 같다 차이는 이제부터. 각 세탁기는 '세탁시의 인공지능'으로 알아서 세탁을 시작한다(표 참조).

금성사와 대우전자의 제품은 그 성질이 대체로 같다. 1개의 포량(布量)센서와 2회의 퍼지기능으로 요약된다. 포량센서가 일차적으로 세탁물의 중량을 감지한다. 그리고 나일론인지, 면인지 옷감의 질을 퍼지추론으로 감지한다. 퍼지회로는 이 양과 질을 기준으로 입력된 기능 가운데서 세탁에 필요한 물의 높이, 물살의 강약, 세탁시간, 헹굼횟수, 탈수시간 등을 결정해서 가장 적당한 세탁방식을 선택한다.

삼성전자 퍼지세탁기는 1개의 포량센서와 오염도를 측정하는 광센서, 1회의 종합적인 퍼지기능으로 요약된다. 포량센서의 역할은 위와 대동소이하고, 별도의 광센서가 오염도를 체크한다. 오염의 양과 질이 결정되면 이미 포량센서로 감지된 세탁물의 양과 질과 함께 퍼지회로에 입력되어 퍼지추론에 따라 세탁시간, 헹굼시간, 탈수시간 등이 결정돼 세탁이 이루어진다. 삼성이 타사제품과 다른 본격퍼지제품이라며 내세우는 무기는 바로 오염도를 측정하는 '광센서'. 그러나 금성사 회전기상품기획실 金赫杓 과장은 "세탁물의 양과 질이 세탁기능의 80%를 차지한다"면서 광센서부착만으로 최고수준의 세탁기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오염도 체크의 논리에 의하면 더러운 스타킹이 약간 때가 묻은 청바지보다 더 오래 빨려 세탁물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대우측 역시 광센서를 부착하지 않은 근거로 "요즘은 옷이 더러워서 세탁하기보다는 한번이라도 옷을 입었으면 세탁하는 시대" 임을 강조한다.

 

수준차는 도토리 키재기

세가지 세탁기의 또다른 차이점은 입력된 세탁자동선별기능수. 삼성전자 李圭成 홍보과장은 "세탁물의 양  질, 오염물질의 양  질에 따라 5백84가지 방식으로 세탁이 가능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지만 금성사와 대우전자측은 숫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일축한다. 일례를 들어 '꽤'라는 용어를 '0.7'로 입력시키는 경우와 '꽤'를 다시 '약간 많이'와 '조금 많이'로 나누어 각각 '0.7'과 '0.75'로 입력시켰다고 가정할 때 후자의 세탁선택가능종류는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실제로 세탁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89년초부터 대우전사 중앙연구소내에 '퍼지연구'를 위한 별도의 전자응용개발팀을 두어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의 퍼지응용사례들을 연구분석 해 왔다는 朴勝一 홍보과장은 "퍼지세탁기가 기존세탁기에 비해 획기적인 것은 사실이나 무궁무진한 퍼지이론을 어느정도까지 응용하는지는 미지수."라고 하면서 퍼지세탁기수준차는 아직 '도토리키재기'라고 밝힌다. 실제로 실용화단계에 들어갔다는 '퍼지전용칩'은 전세계적으로 없는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퍼지세탁기생산업체들이 퍼지전용칩을 사용했다고 갑론을박하다가 급기야 한 회사는 자사의 세탁기를 뜯어 홍보실에 진열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학교 朴玟用 교수(전자공학)는 "한국 퍼지제품은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되었다"고 지적하고, 기술수준에 비해 과대선전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감을 표시한다. 오는 12월8일 '한국퍼지시스템연구회'를 발족시킬 예정이라는 박교수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각사의 독특한 상품개발로 퍼지열풍을 몰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조건으로 어떤 규칙을 설정하는가에 따라 같은 퍼지제품이라도 전혀 다른 제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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