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宇中의 ‘영웅대망론’
  • 김동선 (편집부국장)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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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이더라도 정치참여만은 참는 것이 그가 취할 ‘구국의 길’이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달포 남짓 남겨놓고 터진 金宇中씨 출마설은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소문에 따라 株價가 급등락했고, 이해가 엇갈리는 각 정파는 긴장 속에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했다. 시중의 화제도 시중의 화제도 단연 ‘김우중’이었다.

 김우중씨가 출마 여부에 대해 이번 주초까지도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가 '국가경영'의 큰 뜻을 품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므로 대선에 뛰어들 가능성은 아직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그가 최근에 끊임없이 주창해온 ‘50대 역할론’이나 ‘영웅대망론’을 단순한 정치적 소신으로 보기에는 그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가 너무 심장하므로 더욱 그렇다.

 그의 50대 역할론은 양김씨 배제론이다. “30년 이상 정치를 계속해온 사람은 개혁 의지가 없고 젊은 세대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50대 이상의 정치가는 국가지도자로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 등소평이 88세임에도 불구하고 개혁 노선을 걷고 있다는 것을 모를리 없는 그가 굳이 ‘30년 이상 정치한 사람은 개혁의지가 없다’고 못박은 것은 양김씨를 겨냥한 발언임에 틀림없다. 12월의 대통령선거가 양김씨의 패권 싸움으로 압축되어 있는 마당에 재벌총수가 양김씨에 대해 이와 같은 도전적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양김씨에 대한 강력한 ‘도전’ 의사로 해석되고, 백보 양보하여 그것이 단순한 정치소신 피혁이라 할지라도 ‘용기있는 발언’ 목록에 오를 만한 것이다. 그것은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권위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민주화된 작금의 재벌 형태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발언이다. 대권을 눈앞에 둔 인물들에게 감히 어느 재벌이 그런 도전적 언어를 구사하겠는가. 오직 권력자의 눈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도산한 기업이 어디 한둘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모하리만치 양김씨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들에 대한 도전 의사가 없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발언 통해 자신이'구국의 영웅' 이 될 수 있음을 암시

 그의 영웅대망론 골자를 보면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면서도 안정을 추구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역대 지도층들이 희생의 철학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지도자그룹도 희생정신의 귀감이 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중략)… 나는 지금이야말로 희생하는 지도자가 이 땅에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다. 희생하는 지도자는 곧 우리 시대가 목마르게 기다리는 새로운 영웅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가 누구든, 희생의 철학을 이 사회에 씨 뿌리고 자신이 몸소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 그리고 그런 인물이 지도자의 위치에 나가게 될 때, 우리 사회도 진정한 선진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웅대망론은 일견 우국충정의 소회를 피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웅이 누구인가를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김우중씨 자신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우선 양김씨를 포함하여 현 지도자그룹은 희생정신의 귀감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으므로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어느 후보도 그가 바라는 영웅은 아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물인데, 초헌법적 상황을 배제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다크호스로 등장하여 승리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추론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은 무엇보다도 지명도가 있어야 하고, 재력과 함께 조직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불세출의 영웅 자질이 있는 인물일지라도 이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현재로서는 초야의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명도ㆍ재력ㆍ조직을 갖춘 인물을 찾아보면 자연스럽게 재벌총수인 김우중씨가 나타난다. 그는 위 인용문 말미에 “이 희생의 철학을 놓고 나는 이 시대의 지성인들과 가슴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임으로써 그 자신이 구국의 영웅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재벌의 국가지배는 악순환만 초래할 것

 영웅에 대한 고전적 해석은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영명하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개혁을 갈구한다. 그러한 인물이 때로는 혁명도 하고 개혁도 한다. 고금동서의 새 왕조 창건자들은 대개 그러한 인물들이다.

 김우중씨가 50대 역할론이나 영웅대망론을 펼치며 개혁을 외치는 것은 그가 영명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그의 저서 이름대로 그의 뜻은 이미 ‘할일 많은’ 국가 개혁 쪽으로 옮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가 구국의 영웅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대선에서의 당성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정치참여 의사를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정치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이더라도 정치참여만은 참는 것이 구국의 길이다. 재벌의 국가지배가 또 어떤 악순환을 초래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는가. 많은 식자들이 재벌의 정치참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역사의 진리에 바탕을 둔 논리이다. 그가 영명하다면 이 진리도 뚫어보는 혜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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