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을 지배하는 이미지의 정체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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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비디오 미디어는 지식인의 함정"

앙드레 말로나 생텍쥐페리는 삶에 대한 프랑스적 기질의 일단을 보여준다. 앙가주망, 즉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앙드레 말로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헤맸고, 생텍쥐페리는 쌍엽기를 타고 참전해 아프리카 어디선가 실종되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지성 레지스 드브레(54) 역시 이같은 생애의 역정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태어나 20세가 되기 전에 철학 교수 자격을 얻은 그는 21세가 되던 해에 삶의 안락함을 피해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친하게 되었고, 그들과 사회주의 혁명 전선에서 싸우다 체 게바라와 함께 볼리비아에서 체포되어 4년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귀국 후 70년대에 주로 소설을 발표한 그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론적 저작 활동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의 관심은 지식인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그 역사적 궤적과 정체성을 밝히는 데 있다. 물론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탐사가 그 중심부에 자리잡는다. 85~93년 대통령 제3세계 자문위원을 맡았던 그는 지난해 연말 파리 대학에서 〈매개론 연구〉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고, 소설 〈불타는 눈〉으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았다.

"문화는 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서구적 시선의 역사'라는 부제를 가진 〈이미지의 삶과 죽음〉(정진국 옮김.시각과언어 펴냄)이 국내 초역으로 그의 방한에 맞춰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가 학계로부터 주목받게 만든 새로운 학문 '메디올로지(매개론)'의 완결편이라 할 만하다. 매개론에 대한 그의 저작 〈일반 메디올로지 강의〉와 〈유혹하는 국가〉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과 함께 3부작을 이루고 있다. 매개론의 핵심 사상은, 현대 사회의 인간들이 이데올로기 대신에 이코놀로지(iconology)의 시대, 즉 실체가 아닌 그 재현물이 지배하는 시대를 산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된 관심은 현대 사회의 인간 관계, 다시 말해 권력 관계를 중개.조작 혹은 통제하면서 각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완고한 의사 전달의 방법과 체계를, 그리고 그러한 매체를 파헤치는 데 쏠려 있다.

그는 사물이 인간의 연장인 것 못지 않게 인간도 사물의 연장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기존의 인문주의가 가진 가장 큰 장애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장애, 즉 칸트가 지엄한 문서를 내려 미학과 기술이 별거할 토대를 마련한 뒤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을 전환시켜 이미지의 물질성과 정신성을 다시 근접시키려면 그 상호적 관련 분야가 필요한데, 바로 거기에 매개론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미지의 발전을 통해 본 역사를 문자 발명 이후인 '로고스페르(logosphere)', 인쇄술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인 '그라포스페르(graphosphere)', 그리고 시청각 기기가 발달하기 시작한 '비디오스페르(videosphere)'의 3단계로 나눈다. 여기서 이미지의 존재 방식은 각 단계 별로 존재에서 사물로, 그리고 지각으로 변하게 된다. 파인더를 통한 지각, 이미지만이 존재의 근원이 되는 비디오스페르 시대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기 마련이다.

드브레는 "지식인에게는 참 힘든 계절이다. 그렇다고 나아질 가능서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현대는 글쓰기의 신성성이 사라지고, 책이 점점 탈신비화하기 때문에 지식인의 역할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식인이 자기 의견을 사회에 내놓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통해야만 하는데, 미디어는 그것을 어릿광대로 만든다. 미디어 자체가 스펙터클이자 거대한 쇼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지식인을 노리는 함정이 있다."그러나 드브레는 아직 낙관론에 서 있다. 그는 "역사가 항상 전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문화는, 자동차가 범람해도 조깅을 하듯, 느린 것을 찾아서 돌아오게 돼 있다"라고 말한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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