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입시 문제’가 아니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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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드는 밑거름 ...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 절실

앞으로 40여 일, 논술의 계절이다. 95년1월6일 포항공대 등 5개 대학을 시작으로 서울대 · 연세대 · 고려대 등 28개 대학이 13일, 한국외국어대 등 나머지 15개 대학이 17일 각각 본고사를 치른다.

  중위권 이상 대학들이 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전체 입시 점수의 30% 정도만 반영하기 때문에 대학 입시 성공 여부는 본고사에 달려 있다. 논술은 본고사에서 과목 배점이 높을뿐 아니라, 수험생 사이의 점수 격차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논술은 이제 대학 입시와 동의어가 되고 있다.

  교실 안팎을 둘러보면 논술의 계절은 따뜻하지 않다. 가르치는 교사, 배우는 학생, 그리고 이들을 선발해야 하는 대학 삼자 모두가 혹한 속에 있다. 가르치고, 배우고, 가려뽑는 일이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술에는 과거가 없고 현재와 미래뿐이다. 논술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바로 논술에 대한 전통이 없는 데서 비롯한다.

“왜 국어에는 초급 · 중급 · 고급이 없는가”
  하지만 겨우 두 살배기인 논술에 거는 기대는 교육계 · 학계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자못 크다. 논술 고사를 놓고 국가의 장래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생각하는 국민이 살아남는다’는 구호는 세계화 · 국제화 시대에 그대로 적용된다. 요즘 나오는 한 공익 광고의 표현대로, 이제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경쟁 상대는 선진국 고등학생일 것이다.

  논술 고사의 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 전반에서 뚜렷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는 물론이거니와 최근에 와서 일반 기업체 입사 시험에서도 논술을 채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논술 고사를 실시한 이후, 학교를 마치면 글쓰기(글짓기) 선생을 만나러 가는 국민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늘고 있다.

  앞으로 나타날 논술의 위력에 견주면 논술 교육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논술 고사 실시 후 글쓰기 교육 문제가 더 심화됐다’고 일선 국어 교사들은 하소연한다. <글쓰기 열두마당>(고려원미디어)를 펴낸 숭문고 국어교사 허병두씨는 먼저 논술 고사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재 논술 고사의 질문 방식은 문제 의식을 갖고 주제를 끌어내는 힘을 키워 주기가 어렵다. 논술의 개념을 대학 입시를 위한 측정에만 비중을 두지 말고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쪽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허교사의 논술에 대한 바람은 초 · 중 · 고교는 물론 대학의 교육 이념까지 가 닿아야 가능한 본질적인 주문일지도 모른다. 대학 입학 시험 ‘선수’를 양성해야 하는 현재의 교육 현실에 몸담고 있는 학생 · 교사 · 학부모 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멀다는 것과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 문제이다.

  논술 개념을 정립하는 일은 당분간 전문가들이 사투를 벌이며 세워나가야 할 주제이고, 당장 교사와 학생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무엇을 읽힐 것인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이다.

  일선 교사들은 읽힐 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글읽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글쓰기와 글읽기는 분리 될 수 없다. 글읽기를 배제한 글쓰기는 입력한 내용이 없는 컴퓨터에서 출력을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수필을 통해 독해력을 강화하는 모델을 제시한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고려원미디어)의 저자인 숙명여대 국문과 최시한교수(소설가)는 “읽는 힘을 과학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기르기 위한 노력은 놀라우리만큼 빈약하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읽기가 아니라 외우기였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왜 영어는 초급 · 중급 · 고급으로 구분하면서 국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정작 독해가 필요한 것은 국어인데, 현실은 거꾸로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과 교사 들은 신문 사설에 매달리고 있다. 급한 대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글의 분량도 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설이 읽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국내에 처음으로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 시험(바칼로레아) 논술을 상세하게 소개한 고려대 김화영 교수(불문학 · 문학 평론가)는 “신문 사설의 논조는 뻔하다.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이니 양자를 잘 조정해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자는 논리로 일관한다”라고 지적한다. (42~43쪽 딸린 기사 참조)

통합 교과 실행되고 있지 않다.
  논술 고사가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서점에는 논술 관련 서적 수십 종이 쏟아져 나왔다. <반갑다 논리야>를 필두로 한국 단편소설 · 고전 · 시를 선정해 수능시험을 위한 필독 읽기 자료라는 제목을 단 책들을 비롯해, 논술 작성법을 구체적으로 다룬 책도 많다. 사설을 묶고 이를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한 책도 십수 가지에 이른다.

  논술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입문서 <논술행 기차를 바꿔 타자>(문화과학사)를 곧 내놓을 고길섶씨(문화 평론가)는, 학교 논술 교육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고 쏟아져 나온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논술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논술을 형식적인 논리로만 제시하려는 시도들이 많다. 특히 형식적인 논리학을 중심으로 한 논술입문서들이 전형적이다”라고 비판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다른 문제는 논술을 국어 과목(작문)에만 한정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정책과 실제 교육 현장과 괴리가 큰 것이다. “논술은 통합 교과 과목이다. 하지만 많은 교사가 논술을 국어 교사 담당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 교사는 털어놓았다.

  예컨대 지난해 서울대 논술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운영에 따르는 주요한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 그 문제점이 생기는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국민윤리와 정치경제, 국어가 통합된 문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과목별 통합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통합 교과는 이뤄지지 않고 대신 국어 교사만 통합 교사가 된 형국이다”라고 한 일선 국어 교사는 말했다.

  통합 교과를 제대로 실시한다 해도 국어 교사들에게는 문제가 남는다. 논술을 대비해 통합 교과로 가야 하는데, 실제로 교과서는 세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어 교과서에는 전통적인 교과서인 <국어>(상 · 하)를 비롯해 <문학> <작문> <문법>이 있고, 96학년도부터는 <화법>과 <독해>교과서가 생긴다. 그러나 교과서 세분화에 따른 국어 교사가 <한문>까지 가르치는 실정이다.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독서 교육이 없다는 것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학교에는 논술과 관련한 독서 지도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고등학교 교사들처럼 개별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도하는 경우가 간혹 있을 뿐이다.” 한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지난해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 즉 논술 1기들에게서 어떤 변화를 찾아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논산에 있는 건양대 국문과 우찬제 교수(문학 평론가 ·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가 메모한 논술 1기의 문장을 잠깐 살펴보자.

  ‘12살’ ‘그는 여간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에서처럼 기본적으로 문장 호응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열두 살’이나 ‘12세’로 써야 하고, ‘여간’은 부정문에 사용해야 한다. 영어 · 일본어 글투가 적지 않고 상투어도 적지 않다. 개성 표현과 자기 주장을 구호로 내세우는 신세대들이지만 ‘구원의 천사’니 ‘사막의 오아시스’ 따위 ‘죽은 은유’를 자주 구사한다. 비속어를 그대로 삽입하기도 한다.

  “요즘 대학생들의 글에는 문맥이나 논리가 거의 없다. 단락 나누기조차 제대로 못한다”고 우찬제 교수는 지적했다. 아직 본격적인 논술 세대는 태어나지 못한 것이다.

논술은 사회문화적 일대 전환점
  논술의 가장 큰 어려움은 정작 우리 사회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말과 글을 분리했고, 사회적 관계에서 ‘따지고 드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하면 된다’나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사회를 지배한 적도 있다. 이같은 비논리가 끝나는가 싶더니 영상 매체와 컴퓨터 문화가 논리와 독서, 나아가 활자 문화 전체에다 고리타분한 유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는 마침내 보편성을 쉬운 것, 재미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말았다. “오늘날 나태한 사람들은 ‘쉬운 것’이 마치 보편성과 위대함의 상징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김화영 교수는 지적했다. 김교수는 “그 자체로 쉽거나 어려운 것은 없다. 쉽고 어려움은 그것을 바라보는 개개인에게 나타나는 것이다”라면서 보편성을 쉬운 것과 동일시하는 ‘폭력적인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입 논술은 ‘도화선’이다. 논술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논술을 통해 성장한 세대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지금과 달리 논리가 통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강요와 수락의 관계에서 설득과 납득 관계로 달라지는 것이다. 전자의 사회에서는 자리잡을 틈이 없었던 상식과 논리가 이제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술은 단순히 대입 과목만은 아니다. 사회문화적인 일대 전환점인 것이다. 고길섶씨는 <논술행 기차를 바꿔 타자>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논술이란 환경 성 세대 교육 문화 노동 과학 경제 등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논술이 특정 과목에 제한되지 않고 통합 과목적인 사고로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논술은 사회적인 실천, 인간적 실천의 한 과정이다.‘

  이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난 뒤에 우리는 다시 말해야 한다. ‘논리야 반갑다’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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