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접고 양자회담 한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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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등의 입김 우려해 북한과 직접 대화 꾀해…당분간 채널 구축에 나설 듯

 
4월 한 달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가 ‘난세’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했다. 먼저 일본이 야기한 납치 문제와 독도 문제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이 두 문제 배후에 아베 신조 현 관방장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아베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점에 대해 도쿄의 전문가들은 일본 국내 정치의 맥락에서 그 배경을 설명한다.

아베 관방장관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DNA 조사 결과를 발표한 4월11일과, 일본 해양경찰청이 독도 인근 수로 측량 계획을  발표한 지난 14일, 일본은 향후 일본 정계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4월23일로 예정된 지바 현의 중의원 보궐선거와 야마구치 현 이와쿠니, 오키나와, 그리고 히가시히로시마 등의 시장 선거가 같은 날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4월 초반부터 자민당의 아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4월7일 민주당의 대표로 거물급 정치인인 오자와 이치로가 당선되면서 선거 판에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오자와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전면 비판하면서 매스컴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거의 무명씨에 가까웠던 지바현의 민주당 후보가 자민당 후보를 따돌리고 앞서 나가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자민당의 위기이자, 아베의 위기였다. 아베는 이미 ‘포스트 고이즈미’를 예약해둔 것처럼 행동해왔고, 실제로도 이미 아베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정도로 내정과 외정을 휘둘러왔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정치 분석가들은 그동안 고이즈미의 자민당과 틈이 벌어졌던 대규모 건설회사들이 오자와의 등장으로 민주당 지지로 결집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건설회사는 자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으나 고이즈미가 우정성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소외되어왔고, 그러던 중 다나카-하시모토의 전통을 이은 대표적 ‘건설족’ 의원인 오자와의 등장과 함께 그 주위로 결집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오자와 현상이 일본 정계의 지각변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베 장관이 납치자·독도 문제 꺼낸 이유

결국 아베가 자신의 전가의 보도인 납치자 문제를 꺼내 들고, 만만한 이웃 국가인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재연한 데에는 이같은 선거판에 불어 닥친 위기 국면을 탈출하기 위한 급박한 심경에서라고 할 수 있다. 도쿄의 한 정치 분석가에 의하면, 아베가 납치 문제를 제기한 4월11일 이전만 해도 일본 매스컴은 오자와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4월11일 기자 회견 이후 다시 납치 문제가 이슈의 전면에 부상했고, 4월14일  해상보안청의 독도 인근 수로 측량 계획 발표 후 독도 문제가 그 뒤를 잇게 되면서 나름대로 이슈를 선점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선거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즉 지바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를 거둔 데 이어, 나머지 시장 선거에서도 자민당 후보가 모두 낙선하는 파란이 벌어졌다.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4월7일부터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참석차 도쿄에 모여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와중에 납치 문제를 전면 거론하는 외교적인 결례를 자행하고 이웃 국가와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선거전에 임한 결과로는 참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전부터 거론되어 온 아베의 역량 부족 시비가 일본 정계에서 재연될 전망이다.

 
납치 문제와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돌발적인 분란 조성이 국내 정치적 필요에서 비롯한 것처럼, 4월 한 달 내내 관심을 끌어온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의 가속화 역시 그 이면의 의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에는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시아협력대화가 무산되면서 6자회담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함께,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 강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어 왔다.

미국의 압박 정책 강화와 관련해 그동안 유력하게 거론되어 온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 하나는 지난 3월10일자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것으로, 미국의 금융 제재가 북한의 신경망을 강타하는 의외의 성과를 거둠에 따라 부시 행정부 고위층들 사이에 의기양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이것이 금융 제재 확대론으로 이어져 왔다는 가설이다. 이런 가설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이 드디어 북한 정권의 꼬리를 잡았고, 이제 시간문제일 뿐 승부가 곧 판가름 날 것 같은 인상을 갖게 된다.

3월, 미국의 양자대화 채널 개설 계획 ‘불발’

여기에 두 번째 가설을 더해보자. 현재 부시 행정부 내에서 라이스-힐로 이어지는 국무부 협상파의 입지가 축소되었고, 체니-네오콘으로 이어지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다시 득세해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얘기와 더불어 이 얘기 또한 전문가들 사이에 마치 상식인 것처럼 확산되어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보자면, 이런 얘기들은 현상의 표면을 설명할 뿐 이면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선 3월10일자 뉴욕 타임스 기사는 미국 행정부 내 일부 분위기를 전한 것이기는 하나, 북한이 그 이후 궁지에 몰리기는커녕 더욱 뻣뻣하고 경직된 자세로 맞서옴에 따라, 워싱턴 내에서는 이미 생명이 다한 가설일 뿐이다. 오히려 북이 이런 얘기를 의식해 국무부의 협상안조차 가차 없이 거부해버리는 바람에 협상팀이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다.

지난 3월7일의 리근 북한 외교부 미주국장 방미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당시 미국은 북이 위폐 발행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 등을 약속해 부시 행정부의 체면을 살려주면 북한과의 양자 대화 채널을 개설하겠다는 내용의 협상안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러나 리근은 최소한의 사실 인정조차 거부하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국내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금융 제재 효과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교정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경직된 태도로 맞서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발단은 지난해 11월 금융 제재 문제를 둘러싼 힐-김계관 면담에서부터다. 당시 김이 이례적으로 저자세를 취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동결 자금이 액수는 얼마 안 되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적 성격을 띤 민감한 자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 일부에서 이것을 마치 체제에 심대한 타격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오해를 하게 되었고, 북이 뒤늦게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 이상의 뻣뻣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미국, 일부러 동북아시아협력대화 무산시켜

지난 3월7일의 뉴욕 회담에서 시종일관 강경 자세를 늦추지 않던 리근이 답답해하는 미국무성 팀에게 힌트를 주었다. 즉 한 달 뒤인 4월7일부터 도쿄에서 동북아시아협력대화라는 국제회의가 열리는 데 거기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이 회의는 원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이 주최하는 6개국 전문가 회의였다. 그런데 졸지에 6자회담 수석대표들의 모임으로 격상된 데에는 이런 내막이 숨어 있었다.

그런데 왜 도쿄 회의 역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무산된 것인가. 한때 미국측은 이 회의에 대해 매우 전향적으로 검토 했다고 한다. 힐 차관보까지 참석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사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담에 임박한 마지막 시점에 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즉 이번 회담을 무산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미국측의 최종적인 방침 전환 배경에는 현재의 6자회담 구도에 대한 불만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의 김정일 위원장 방중을 계기로 중국이 더 이상 미국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었고,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가 중국과 급속도로 밀착되고 있으며, 한국도 반드시 미국 편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6자회담은 미국에게 불리한 구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워싱턴 내에서는 이를 일러 ‘부메랑 툴(tool)’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분간 위폐·인권 문제 계속 거론할 듯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협상 틀의 변경을 희망하고 있다. 즉 현재의 6자회담은 핵문제 등에 국한하는 식으로 역할을 축소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독자적인 대북 채널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측이 겉으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면서도 이면에서는 양자 대화 채널을 계속 검토해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이밖에도 이란 문제 등 더욱 다급한 현안들이 쌓여 있는 상황도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6자회담은 불만이고, 그렇다고 새로운 틀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힐이 김계관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6자회담을 지연시켜놓고, 북한을 더욱 압박해 양자 채널 구축을 위한 보따리를 마련하는 작업에 당분간은  치중하겠다는 것이 워싱턴의 전략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북한 위폐 문제, 인권 문제, 납치 문제, 마약, 가짜 담배, 선박 제재 등 온갖 대북 압박 메뉴들이 무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방침이나 전략에는 국무부 협상팀이나 네오콘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상황 인식이나 전략에서 이미 양자 간에 컨센서스가 이루어져 있고, 다만 어느 시기에 어떤 계기를 활용해 새로운 판짜기에 돌입할 것인가라는 숙제만 남겨둔 상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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