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멸하고, 정치 좋아하고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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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서 떨어지면 남아서 당을 돕지 않고 신당으로 몰려가는 철새 정치인 많아

8 · 15해방이 되자 이 땅에 자유가 왔다. 민주주의가 왔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낸 미군이 왔다. 그후 3년간, 그러니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태어날 때까지, 남한에는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어지럽고 어려웠던 ‘해방정국’이었는데, 혼란과 분규의 초점은 누가 정치권력을 잡느냐 한가지였다. 35년간 이민족의 강압통치에 자치정부의 훈련이 전무하였던 까닭에 자유가 의무적으로 수반하는 책임의식도, 민주주의 구현에 필요불가결한 질서의식도, 하물며 국민의 의사와 주장을 조작하는 정당이 무엇인지 알 까닭이 없었다.

1945년 11월1일 현재로 미군정청에 등록된 정당사회단체의 수는 무려 2백50개가 넘었다. 가히 ‘雨後竹筍’이라고 말할 수 잇다. 서너 사람만 모이면 정당을 결셩하고 저마다 자유와 민주주위를 신주처럼 모셨지만, 실은 자유도 민주주의도 그리고 정당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모두가 권력의 나무에 기어오르기 위해 우왕좌왕하였다.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은 동경에 있는 직속상관 맥아더 원수에게 보내는 보고서에서 “한국사람처엄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찍이 본일이 없다”고 개탄하였다. 한마디로 누구를 상대로 해서 군정을 펴가야 할지 무척이나 당혹하였다는 흔적이 역력하였다.

사람에 관한 시비만 있고 정치프로그램 토론이 없다
그로부터 46년이 흘렀다. 남한에서나마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를 수립한 지도 43년이 되어간다. 자유 독재 그리고 항쟁에 이어 다시 자유가 오고 자유가 혼란으로 이어지더니 군사쿠데타와 독재가 반복되고 6 · 29 이후 국민이 정부선택권을 갖는 민주화시대로 복귀하였으며, 금년에는 민주화시대에 두번째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는 정치 변동기에 접어들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창된 민주주의가 부리 내릴 수 있느냐의 중대한 실험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해들어 전개되는 정치활동의 어느 국면을 보더라도 참된 민주주의에의 길을 걷고 있는지 실망의 먹구름이 앞을 가리고 있는 느낌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3년째 재임하는 어느 유럽나라 대사가 사사로운 저녁모임에서 지적한 말이다.

“연처에 정부여당의 대통령후보자 문제로 정신 못차리게 왈가왈부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에 관련한 시비일 뿐이지 정치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신기할 정도로 전혀 토론이 없더군요.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누가 다스리느냐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더 중요할 텐데 여기에 대한 논쟁없이 후계자 문제가 연일 언론매체의 주요토픽이었죠. 국회의원후보자 공천을 둘러싼 논의도 어느 누구 중심의 세력 규합이냐에 그치고 있을 분이지 그 인물의 정치 프로그램과는 전혀 관계없는 게임인 것 같아요. 참 재미있어요.”

그의 말에 별로 반박할 자료가 없었다. 해방정국에서처럼 정치단체가 2백50개나 난립하지는 않고, 선진민주주의하는 나라처럼 양당제 또는 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래도 다행한 일이지만, 민자당이나 민주당 안에서 소위 대권후보나 국회의원후보를 놓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계파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국회의원 공천을 놓고 집요하게 줄다리기하다가 후보자의 자격과 관계없이 나누어 먹기 비율대로 낙찰짓는 일종의 상거래는 보기에 딱할 뿐이다.

정치인을 경명하는 것은 私黨이니 朋黨이니 때문
솔직히 말해 우리 정당들은 아직도 사리사욕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私黨의 영역에서 맴돌고 잇지, “국가 정책에 관한 주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극들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협력체”라고 말할 수 없다. 구체적인 실례로 야당 어느 계파에 줄을 대어 어느 지역구에서 출마키로 뒷거래가 진행되다가 계파간 이해관계 상충으로 ‘영입’이 안이루어지자 곧바로 여당에서 모셔간 경우를 지적할 수 있다. 민자, 민주 양당체제에 식상한 국민여론을 의식해서 몇갈래 신당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까지는 그 충정을 이해할 수 있으나 어느 신당 준비위원회가 출발한 지 한두 주일밖에 안되는데 세력규합문제로 둘로 갈라섰고, 갈라선 어느 계파가 다른 신당준비세력을 흡수하고는 다음날에는 또다른 신당에 흡수되었으니 어지러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가.

어디 그뿐인가. 어떤 이유에서든 공천에 떨어졌다면, 마땅히 당내에 남아 공천된 후보자를 밀어 당의 승리를 기하고, 그럼으로써 당의 주의주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극가정책에 반영시켜야 하거늘, 대부분 낙천자들이 무소속 출마 아니면 새로 생긴 정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철새 정치인 철새 정당들이다. 모두가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모이는 사당이나 붕당 수준이라는 점, 46년 전과 매한가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정치인과 정당이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연유가 있다. 한국사람처럼 정치를 비웃는 국민도 없겠지만, 하지 중장의 말처럼 “한국사람처럼 정치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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