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문화 뒷전에서 ‘잠잔다’
  • 이문재·송준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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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창간 3주년 문화 향유 실태 여론조사 / 책 · 공연 안보고 주로 TV· 비디오 시청… 여가는 집에서

1990년 문화부가 ‘문화입국’을 주창하며 출범했을 때 《시사저널》은 <한국의 최고>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바 있다(제56호 11월22일자).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문화의 좌표를 확인해본 것이었다. 그로부터 꼭 2년이 지났다. 그 2년은 한 나라의 문화가 달라지기엔 짧은 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산업사회의 ‘무서운 속도’를 감안한다면, 긴 시간일 수도 있다. 이 기간 동안 무엇이 달라지고 또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시사저널》은 창간 3주년에 즈음하여 일반국민 1천명을 상대로 서점 책 비디오 영화 가요 등 ‘문화’라고 공인받고 있는 장르 · 매체들과의 구체적 접촉빈도를 알아보고, 아울러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전통문화, 그리고 기업 등을 통해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체성의 일면을 2년 전 조사 결과와 비교, 진단해보았다. 문화 각 분야에 대한 인식의 부피를 전문가 대신 일반 ‘문화대중’으로 한정한 까닭은, 극소수 전문가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는 문화예술이 아니라, 문화의 토양이자, 소비자인 국민과 더불어 생명력을 갖는 문화를 지향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한국인의 문화 향유 실태가 더없이 열악함을 나타낸다. 10명 중에 8명 이상이 공연장이나 전람회에 가지 않고 있으며, 텔레비전과 비디오 시청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디오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가구(43.5%)를 포함해도 한가구당 매월 약 3편(3.34)의 비디오를 보는 것이다. 또한 반나절 가량의 자유시간이 생긴다면 응답자의 대다수가 “잠을 자겠다”고 답하고 있다. 문화생산자들이 바라마지 않는 문화와 ‘생활문화’와의 간극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아직 문화는 특정계층만이 누리는 사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하고도 중요하나 현실이다. 한국문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의 결과는 바로 1992년 한국문화의 현실을 읽을 수 있는 거울이다. <편집자>

 

 

 

한국인 두사람 중에 한사람은 한달에 한번도 서점을 가지 않는다. 한사람이 서점을 찾는 횟수는 월 평균 1.4회로 나타났다. 오는 93년을 문화부가 ‘책의 해’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책과 일반국민과의 거리는 아직 멀기만 하다.

서점 이용 빈도는 연령이 높을수록 낮고, 한달에 한번도 서점에 가지 않는다는 사람은 남성이 45.9%, 여성이 54.1%로 나타났다. 베스트셀러는 20대 여성이 만들어낸다는 출판계의 인식과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연령별로는 20대가 약 3번(2.50회), 30대가 1번(1.39) 40대가 1번(0.85) 등으로 집계되었다. 일터와 가정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한국 남성에게 서점 혹은 책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92년 출판계에는 교보문고 재개장(5월)과 영풍문고 개장(7월)이란 큰 사건이 있엇지만 반대로, 출판시장 개방(출판 우루과이라운드)과 일산출판문화도시 건설의 난항, 무분별하나 외국 저작물 수입 경쟁, 그리고 고질적인 출판계 불황 등 문제점도 많았다. 올 출판계는 《소설 동의보감》의 여운에 힘입어 일어난 이른바 ‘소설 붐’이 특기할 만하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면 세가지만 골라달라는 설문에 《소설 동의보감》과 《소설 토정비결》이 각각 1,2위를 차지한 것은 올해 출판계의 특징을 드러낸 것이다.

《소설 동의보감》 등 역사적 인물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한 장편소설들이 베스트셀러 부문 상위를 줄곧 차지한 사실은, 기존 문학권이 포스트 모더니즘 수용 여부를 놓고 리얼리즘 · 자유주의 양대 진영이 합의를 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가져온 이념적 공백과 지향점의 상실을 후기산업사회의 문화논리라고 불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메우려 한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의 암중모색은 뚜렷한 문학적 성과보다는 문학을 둘러싼 사회적 물의만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표절시비, 외설시비로 올해의 한국 문단은 그 어느 해보다 시끄러웠고 그만큼 또 착잡했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항목은 비디오와 관련된 것이다. 서점이나 공연장, 전시장 등 문화공간을 멀리 하는 대신, 비디오 시청을 매우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디오를 전혀 보지 않는다고 답한 43.5%를 제외한다면, 비디오 시청 가구만의 시청 편수는 전체 평균 월 3.34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연령별 비디오 시청 편수는 20대 월 5편(4.98), 30대 4편(3.81), 40대 2편(2.36) 순으로 집계되었다. 직업별로는 판매 서비스직이 월 5편(4.65)으로 가장 많이 보고 있다.

한가구당 한달에 비디오 약 3편 시청

비디오가 가장 접촉빈도가 높은 매체로 떠올랐지만, 비디오(업)계는 외국인의 국내 음반 · 비디오 제작 및 배급 참여로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영상음반 판매자협회(회장 최영진)가 지난 6월 외국 비디오 불매운동을 벌일 만큼 외국 음반 · 비디오 제작사(직배사)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좋은 비디오 120》 《시민이 뽑은 좋은 비디오 200》 등을 발간한 ‘건전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 · YMCA)과 지난 2월 공연윤리위원회가 자문위원회를 구성, 청소년을 위한 비디오 심의를 강화한 것 이외에는 비디오문화를 조율하는 이렇다 할 심의기관이나 제도장치가 없다. 비디오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관련학자들의 연구와 더불어 자발적인 지역 · 계층별 모니터 활동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지난해가 ‘연극 · 영화의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은 매우 낮았다. 국민 1인당 연극 관람 횟수는 평균 0.35편에 불과하고 일반 국민의 83.9%가 지난 1년간(지난해 9월부터 올해 9월) 연극을 한편도 보지 않았다. 또한 연령이 많을수록,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그리고 지방으로 갈수록 연극을 관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문화의 서울 편중 현상이 다시금 확인됐다. 음악회도 마찬가지여서, 조사대상자의 88.2%가 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전체 평균 음악회 참석회수는 연 0.27회).

미술 등 전시회에 대한 일반국민의 관심도 매우 낮았다. 82.9%의 국민이 지난 1년간 전시회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농림수산업 종사자의 경우 모든 항목에서 다른 직업에 비해 가장 문화생활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연극은 96%, 음악회는 100%, 전시회는 98%, 박물관은 90%가 가보지 않았다. 문화의 사각지대인 농어촌에 대한 문화정책이 절실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올 미술계는 화랑가의 불황과 양도세 파문, 그리고 6월1일부터 시행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요약된다. 미술품에도 양도세를 매긴다 해서 화랑가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지만, 미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술시장이 합리적으로 재편되기를 바라고 있다.

“도서관 있는 줄 모른다”도 상당수

박물관과 국공립 도서관 이용 실태를 조사해본 까닭은, 이 두 문화광관(기관)이 다른 문화공간에 비해 문턱이 낮고 서울 집중화 정도도 비교적 작아, 지역문화 ·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서관 박물관의 흡인력은 미미했다. ‘국 · 공립 도서관을 이용해보신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무넹 12.5%가 ‘그런 도서관이 있는 줄 모른다’라고 답했고, 52.7%가 ‘있는 줄 알지만 이용해본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요사이도 가끔 이용하는 편’이 5.6%, ‘비교적 자주 이용하는 편’이 고작 3%였다. 일반국민의 91.5%가 도서관이 있는 줄도 모르거나 알더라도 현재는 이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에 가본 사람은 21.9%로 나타나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전체 평균은 0.39번이었고 한번 관람한 사람이 전체의 13.6%로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대구 · 경북에서 23.%로 나타나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경주와 인접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도서관이 그 지역의 출판 문학 공연 전시 등 전반적인 문화활동을 수용하고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은 각 지역 문화원과 함께 지방문화의 거점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나 문화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문화부가 전국 2백51개 공립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도서관 문화활동 운영 실태를 조사함 바에 의하면 도서관에서 ‘도서관 문화학교’ ‘독서교실 ’ ‘독서회’ 문화 강좌 등이 열려 종래의 공부방 기능에서 벗어나고 있다. 고전읽기, 서예, 어학을 비롯 예절 강좌에 이르기까지 지역주민을 위한 생활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강좌는 모두 2백378개인데 그중 생활교양 부문이 1백5개로 가장 많고 전통문화가 81개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지난 한해 동안 전체 참여인원은 약 3만2천명이었다.

도서관 기능을 활성화시키면 생활문화는 물론 출판 · 학술 분야의 발전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의견이 최근들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도서관이 양서를 선정, 구입하면 상업성을 이유로 외면당하던 전문서적이 출간된다는 것이지만, 정부의 예산 편성을 보면 앞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93년도의 공공도서관 전체 자료구입비는 15억2천여만원으로 각 도서관에 돌아가는 몫은 겨우 6백만원이다.

영화, 방송 프로그램 가요 등 대중문화에 대한 반응은 책, 미술, 연극과 같은 고급문화에 견주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영화의 경우 일반국민 10명 중 7명은 지나 1년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기억에 남는 영화가 ‘없다’.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국산영화 외국영화 포함)로는 <원초적 본능>이 1위(3.3%, 이하 괄호안 수치는 % 수)이고 <사랑과 영혼> <연인>이 각각 2,3위를 기록했다. 국산영화는 <결혼이야기>가 <연인>과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했고 <장군의 아들 3>이 <파 앤드 어웨이>와 함께 8위로 나타났다.

‘올해 활약이 가장 돋보인 국내 영화배우’는 안성기(11.1) 장미희(6.2) 최진실(6.1) 최민수(5.9) 강수연(3.9) 순이었다. 그러나 ‘없다, 모른다’라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50.5%를 차지해 탤런트(‘없다, 모른다’ 20%)에 비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하얀전쟁>의 주역을 맡은 안성기는 20대(14.7)와 30대(13.8), 그리고 학생(20.5)과 사무관리직(14.6)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올 영화계의 가장 큰 뉴스는 지난 10월 도쿄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하얀전쟁>(정지영 감독)이다. 국내 관객동원에서도 성공한 이 작품은 제3세계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월남전 영화라는 의미를 남긴 것 외에도 해외로케, 편집, 녹음 등에서 모범을 보였다. 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지난 8월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제작자상(박종원 감독 · 도동환 제작)을 받은 것도 한국 영화의 앞날을 밝히는 청신호로 평가됐다.

방송드라마 부문은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김수현 극본)와 <여명의 눈동자>(김성종 원작 · 송지나 극본)가 각각 17.3%와 16.3%로 1,2위를 차지했다. 문화방송 장수프로그램인 <전원일기>는 4위로 나타나 그 인기가 여전함을 말해준다.

안성기 최진실 이경규 등이 ‘돋보인 연예인’

올해 활약이 가장 돋보인 탤런트는 최진실(13.5) 김혜자(11.2) 최불암(6.6) 최민수(5.6) 최수종(4.3) 하희라(4.0) 순이다. 최진실에 대한 선호도는 여자(14.6)와 나이가 어릴수록(20대 21.8, 30대 14.6)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서울(20.4)이 높고 학생(28.2)과 사무관리직(17.9)에서 강세를 보였다. 한편 김혜자는 여자(15.9)와 주부(18.2) 족에서 최진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개그맨(코미디언) 족에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진행자인 이경규가 22.5%로 1위에 올랐고 “알 라뷰”란 말을 유행시킨 신인개그맨 이영자가 2위(13.2)에 올랐다.

올 방송계의 비망록에는 보도국장 직선제 등을 놓고 노사가 팽팽하게 대립, 결국 공권력이 투입되었던 문화방송의 장기 파업이 손꼽힌다. 이 사태는 언론노동운동 전반의 무기력증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프로그램 분야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 <현장> 등 각 방송사가 주간물로 내보내고 있는 ‘탐사 저널리즘’의 정착이 눈길을 끈다. 뉴스가 감당하지 못하는 다각도의 심층취재가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가요 쪽에서는 단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기를 독차지한다(32.8). 2위를 차지한 주현미(8.0)와는 뚜렷한 간격을 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남자(29.9)보다 여자(35.6)에게서 인기도가 높았고 연령이 낮을수록 높게 지목됐다. 지역적으로는 서울(49.4)과 부산 · 경남(36)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두드러졌고 학생층(56.4)에서 큰 호응을 보였다. 서태지 신드롬은 가요계 내부에서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랩뮤직 붐을 몰고왔다.

한편 우리나라 고유의 특색을 보여주는 문화요소로 네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경로사상과 예의범절을 들었다. 주로 남자보다 여자가, 그리고 50대 이상이 경로사상을 꼽았다. 요즘의 세태가 경로사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추세에 있고, 새삼스레 경로효친을 강조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 응답은 우리의 일상 속에 유교문화의 뿌리가 얼마나 깊게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학생층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주로 예의범절을 지적했는데 이는 경로사상에 대한 장노년층의 향수와 더불어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리 사회에 유교문화의 영향이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밖에 엄격함 · 제사 · 한복 · 김치 · 명절 · 고향방문 등이 5% 안팎으로 언급되었다.

외국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우리나라의 자연경관 · 상징물 · 풍속 · 건축 · 사건 등의 우선순위로는 불국사(10.4), 설악산(5.6), 88올림픽(5.0), 민속촌(4.2)이 꼽혔다. 90년 조사에서는 문화 · 예술계 전문가 2백명이 한국의 멋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소로 경주(18), 비원(12)을 꼽은 바 있다. 독립기념관은 3%에 머물러 아직 국민정서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난 1년간 가족과 함께 찾은 곳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소는 경주(2.5), 설악산(2.4), 과천 서울랜드(1.9) 순이다. 반면 전체 응답자의 40.5%가, 특히 농림수산업과 단순생산직 종사자의 절반 이상이 ‘그런 적 없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업종별 부의 편재가 아직도 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연 · 놀이문화로는 사물놀이(10.0)와 탈춤(9.9)이 꼽혔으며 농악(6.3)과 부채춤(6.1), 창(5.7)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국악(4.2)은 7위로 밀려나, 사람들은 왕조시대의 정통음악보다 속악(俗樂)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시각 효과가 뛰어난 부채춤을 가장 선호했다.

지난 7월30일부터 9월6일까지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회갑기념 전시회를 가진 바 있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5.7)과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교향악단 지휘자 정명훈(5.1)이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지목됐다. 정명훈은 정경화 정명화와 함께 지난 8월 ‘유엔마약퇴지 친선대사 정트리오 특별 초청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여가시간 주로 “잠자면서 보낸다”

그러나 응답자 가운데 63.2%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의 항목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이 항목에 대답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식견을 가진 계층인 것으로 보이며 이들의 견해는, 지나 90년 조사에서 백남준과 정명훈을 각각 ‘올해 활약이 가장 돋보인 미술가 · 음악가’로 집계한 미술계 · 음악계 전문가 각 50명의 생각과 일치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는 최근 프랑스 일본 등 해외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문열이 꼽혔다. 90년의 조사에 이어 올해에도 대표적 작가로 꼽힌 그는 대학생 이상의 20대 독자와 중산층 사무관리직 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서정주 김홍신 김동길 김수현 등이 대표적 문인으로 꼽혔다. 이 집계는 작가들의 문학성이나 예술성보다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를 통한 지명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을 보여주는데, 독자의 작가 인지도가 독자의 작품 이해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 전체 응답자의 63.7%가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유일하게 응답자의 과반수로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스포츠 분야)’로 지목받은 황영조(51.1)는 당분간은 계속 국민영웅으로 남을 듯하다. 그는 연령별 지역별 교육수준별로 고른 인정을 받았다. 다음 순위에 오른 차범근 손기정도 한국인의 긍지를 세계에 떨친 사람들이다. 이 질문에 ‘모른다’고 답한 사람은 15%에 불과해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대표적 여성계 인물로 황산성(18.6)이 단연 압도적이지만 역시 ‘모른다’가 60.7%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연예인으로는 조용필(13.2) 최불암(12.0)이 꼽혔는데 모두 오랫동안 지속적인 활약을 보인 인물들이다. 세계에 소개할 만한 대표적 한국기업으로는 현대(45.8) 삼성(18.0) 대우(8.8) 등이 지목됐다.

‘갑자기 혼자 보내야 할 반나절의 여유시간이 있을 때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조사결과는 한국인의 여가의 질이 어떤 수준에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다섯사람 가운데 한사람꼴로 각각 ‘잠잔다’와 ‘독서’에, 그리고 11명 중 1명꼴로 ‘음악감상’에 응답을 표했다.

그밖의 여가거리 역시 비디오 시청, 운동, 휴식, 집안일, 성경책 읽기, 기도 등으로 나타나, 결국 사람들이 반나절의 여가를 거의 집안에서 보내고 있음을 알린다. 여가 방법의 ‘0순위’인 ‘잠잔다’는 여자보다 남자의 경우, 그리고 주로 30대와 40대의 경우에 많았다. 특히 고졸 이하 학력의 응답자 가운데 20~25%가 잠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주로 잠을 잔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회생활이 급박하고 반문화적임을 반증한다.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바탕이 생존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할 때, 한국 문화의 토양은 여전히 척박하다. 대다수 국민이 예술 또는 문화공간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잠을 자고 있는 마당에 건강한 생활문화가 뿌리를 내릴 리 만무하다. 문화와 예술은 대중 속에서 대중에 의해 함유되어야 하며, 대중의 숨결을 담아낼 때 비로소 문화로서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문화가 삶의 질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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