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불 붙은 석탄’ 위에 서다
  • 런던·한준엽 통신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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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 탄광 폐쇄 · 광부 감원 계획에 국민 반발… “보류” 발표에도 대규모 시위



일찍이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검은 금을 캐는 자본주의의 노예, 그들의 주인에게 으레 반항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족속”이라고 일컬었던 영국의 탄광노동자들이 총궐기하고 있다.

지난 84, 85년 전국적인 파업 바로 직전까지 치달았던 탄광노조 주도의 대규모 시위 이후 7년만에 광부들의 불만과 분노는 다시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시한폭탄의 첫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영국 언론이 ‘석탄업계에 조종을 울린 날’로 표현하고 있는 지난달 13일. 메이저 내각은 이날 전국의 31개 탄광을 폐쇄하고 3만여명의 광부를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30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는 만성적인 불경기 속에서 발표된 정부의 대규모 탄광폐쇄계획은 즉각 보수당 소속 일부 의원까지 포함한 국민적인 반발과 언론의 비판에 부딪쳤다. 그러자 메이저 내각은 탄광폐쇄 조처 발표 1주일만인 지난달 21일, 폐광이 확정된 10개 탄광을 제외한 21개 탄광의 폐쇄 여부를 내년 3월까지 잠정 보류한다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같은 메이저 보수당 내각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광부는 물론 전국 각계각층의 노동자 · 시민이 대규모 시위를 강행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지난 9월 말까지 무려 5만여개의 기업이 도산하면서 많은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메이저 내각이 경기회복을 위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석탄업, 지난 45년간 급속 사양화

대영제국의 번영을 구가한 지난 18,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석탄업은 영국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킹 콜(King Coal)’이라고 대접받던 영국의 석탄업이 한창 호경기를 맞았던 1910년대엔 무려 3천24개의 광구에서 1백20만명의 광부가 연간 2억9천2백만t의 석탄을 생산하면서 7천4백만t의 석탄을 해외로 수출했다. 이때만 해도 석탄은 영국인들에게 경제발전을 부추기는 전략산업의 모태며, 애정어린 하늘의 선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1947년 영국이 석탄업을 국영화하면서 채광권 허가를 포함한 석탄생산 전반을 관리하게 된 국립석탄청(현재의 영국석탄협회 B.B.C의 전신)은 과거의 사영 탄광업 체제 아래서 비효율적이고 돈벌이가 안되던 일부 부실 탄광을 폐쇄했다. 1967년부터 69년까지 2년 동안에도 노동당 내각이 1백21개 탄광을 폐쇄하고 6만3천여명의 광부를 감원했다. 결국 지난 45년동안 영국의 탄광업은 경영 합리화와 시장경쟁의 원리 아래서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70년대 이전까지는 정부의 탄광폐쇄 조처가 광부들의 별다른 반발없이 진행됐다. 당시 영국 경제가 호경기였고 탄광을 떠나는 광부들이 다른 직업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영화 당시는 1947년 영국 전역에는 총 9백58개의 탄광이 있어 75만여명의 광부가 연간 2억t 이상의 석탄을 생산했다. 메이저 내각의 탄광폐쇄 조처가 발표된 지난달 13일 현재 그 규모는 51개 광구에 광부 5만8천여명이 연간 8천6백만t을 생산하는 정도로 축소됐다. 메이저 내각의 이번 조처는 88년 대처 내각이 탄광업의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 90년 국영 전력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상된 일이었다. 이미 영국의 2대 민간 전력회사인 내셔널파워(National Power)와 파워젬(Power Gem) 회사는 유황과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높은 영국 석탄 대신 공해방지 시설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원가가 싼 천연가스와 수입석탄의 사용량을 늘렸다. 영국 정부도 석탄 대신 북해에서 생산한 가스와 함께 원자력을 21세기 주요 에너지원으로 선택했다.

당초 31개 탄광을 폐쇄하려던 계획에서 21개소에 대한 폐쇄 여부를 내년 3월 이후로 잠정 보류함으로써 메이저 내각은 일단 눈앞의 위기는 벗어났다. 그러나 이미 폐쇄됐거나 폐쇄작업이 진행중인 탄광촌의 뒷처리와 실직광부들의 심각한 정신적 갈등, 그리고 사회적인 후유증이 크게 부각되고 있어 내년 봄 이후 21개의 탄광이 당초 계획대로 폐쇄될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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