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時祭, 학풍 찾는다
  • 경기도 안산·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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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 상록수 · 과학 정신 아우른 漢大 학풍 조성 축제



스웨덴의 양대 명문인 옵살라대학과 룬드대학은 각기 독특한 학문의 전통을 갖고 있다. 모든 논리를 의심하여 비판하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 대신 百家爭鳴식 개성을 절대선으로 간주하는 소피스트의 학풍을 중시한 룬드대학과는 달리, 옵살라대학은 모든 학설을 철저한 폐쇄회로 속으로 유도하여 분명하게 결론을 연역하는 도그마티스트들을 배출하고 있다.

옵살라나 룬드대학뿐이 아니라 세계의 주요대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끝없이 자전하며 일정한 학풍을 세워나간다. 영국의 옥스포드나 일본의 동경대가 해외에서 식민지 경영을 완수하기 위해 행정가와 고급관료의 양성을 담당하고, 캠브리지나 경도대가 외국 학문을 철저히 배격한 민족학문과 순수학문의 영역을 담당하여 각기 독특한 대학 아카데미즘을 구축해온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나라 대학 가운데 독자적인 학문의 전통을 세워온 대학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을 가지고 만나본 많은 대학인의 대답은 “파벌은 있으되 학풍은 없다”로 모아진다. 학설보다는 연고가, 학파보다는 파벌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학풍에 대한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병훈 교수(숭실대 · 정외과)는 “한때 홍익미대 한양공대 등 단과대학 단위로나마 나름대로의 학풍이 조성되는 듯한 시기도 있었으나 그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다. 막걸리 대학이니, 슈사인보이 대학이니 하는 풍속이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라톤식 축제 25시간

지난 11월6일, 7일 이틀 동안 한양대 안산캠퍼스에서 열린 제1회 대학 · 학문 · 학풍 25時祭는 대학이 학풍을 세워보자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한양대 민족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풍25시제는 교수와 학생에 의해 처음으로 학풍이라는 화두가 제시됐고 종래의 대학축제나 학술세미나의 틀을 파격한 매우 실험적인 양식으로 눈길을 끈다.

6일 정오에 개회하여 다음날 낮 1시, 한양 학풍의 근간으로 삼을 星湖 李瀷의 묘소와 崔容信의 묘소 참배로 마무리된 25시간 동안 당 하나의 행사도 겹치지 않게 배치하여 학생과 교수가 함께 이동하며 참여하는 마라톤식 축제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제시한 형식을 실험한 것이다.

학풍25시제를 기획한 강신표 교수(한양대 · 문화인류학과)는 오늘의 대학 상황을 게오르그의 25시 위기 상황으로 파악해 “대학의 본질인 학문과 학풍은 군사정권에 의해 죽었다”고 단정한다. 그는 “한 집안이 가업을 통해 가풍을 세우듯이, 대학은 선생과 학생을 순환시키면서 ‘배우고 묻는 일’을 통해 학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매우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한양대 학풍의 길잡이는 이익의 실학사상과 최용신의 상록수정신, 그리고 한양공대의 과학정신이다.

불교와 世儒의 無實한 학풍을 배격하고 실증적 사상을 확립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실학자 이익은 천문 지리 의학에 이르는 학문을 그의 투철한 주체의식과 비판의식을 담아 완성했다. 한양대 교수와 학생을 이익의 실사구시 학문이 인문사회과학뿐 아니라 공대 의대 약대 등 자연과학까지 구체적으로 안내함으로써 종합대학의 학풍으로 삼는 데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홍대용 박제가 이중환 같은 이익의 후학이 한양대에서 나오기를 기대해 봄직하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하의 교육 현장에서 계몽운동을 펼친 최용신의 사상도 실학과 더불어 한양대 학풍의 근간이 될 수 있다. 이익과 최용신 사상이 한양대 학생과 교수에 의해 포착된 것은 대학이 지역사회의 뿌리를 내려야한다는 명분과 이 두사람의 묘소가 안산캠퍼스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한양대 안산캠퍼스 정문에서 동쪽을 5백m 떨어진 언덕에 세워진 최용신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 적혀있다. “겨레의 후손이여, 위대한 사람이 되는 네가지 요소는 가난의 훈련, 어진 어머니의 교육, 청년 시절에 받은 감응, 그리고 독서이다.”

젊은 엘리트 교수는 ‘가풍 잇는 며느리’

학풍25시제에 참여한 정재승(신방과 1년)군은 “모의재판 · 시사즉흥쇼 · 쌍쌍파티 등 천편일률적인 대학축제의 틀을 깨고 마치 옛 선비가 벌이는 詩會나, 플라톤식 향연은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다”고 말한다. 총학생회 간부들은 “북으로 가자, 남으로 오라는 식의 구호를 단 이틀만이라도 중지해 달라는 교수님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고 밝히면서 이틀동안 ‘행복한 시대의 대학생’이 된 느낌이었다고 여운있는 소감을 피력했다.

國巫 우옥주 일행이 꼬박 10시간 동안 밤새워 벌인 학풍 조성 축원굿(황해도 만구대탁굿), “교수, 학생여러분네, 공부 좀 하라”는 인간문화재 박동진의 학풍 축원 판소리, 金光圭 시인(한양대 독문과)의 학풍25시 서시 ‘나무처럼 젊은이들도’, 구상시인의 축시 ‘젊은 그대들에게’도 이 행사가 거둔 수확이다.

그러나 학생 9천여명과 교수 3백여명 중 학풍25시제의 주역이 된 사람은 4백명에 불과했다. 학풍 조성의 주인공이 젊은 엘리트 교수 중심으로 확산되어야 하고, 대학이 교수를 선택하는 데 있어 폐쇄적 태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대학 분위기와 관계가 깊다.

강신표 교수는 “엘리트는 순환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며 엘리트 교수를 가풍을 잇는 점은 며느리의 역할에 비교한다. 즉 친가와 시가의 문화를 절충하여 취사 선택함으로써 가풍 계승의 실무자 역할을 하는 며느리처럼 대학 학풍은 외부로부터 유입되고 젊고 유능한 교수와의 異花 受粉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야 건강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새로운 혈통을 가진 젊은 엘리트를 받아들여야 학풍은 역동성을 갖는다.” 그의 주장처럼 엘리트 순환은 학풍 조성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공과대학생의 신바람’(서울공대 함준호 교수), ‘퍼지바람과 대학문화’(한신대 김상일 교수) 등의 초청 강연과 ‘대학의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조제 하에 7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된 교수 · 학생간 패널토론 등 학풍 25시제의 내용은 지식산업사에 의해 곧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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