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해가 지고 나면 또 잊어버릴 것인가
  • 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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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해가 지고 나면 또 잊고 말 것인가. 치욕으로 얼룩진 94년, 무술년의 저무는 해가 동강난 성수대교의 아픔을 삼키면서 스러져간다. 끊겨나간 대교의 북쪽에서 바라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의 저녁 풍광이 성구대교 붕괴 참사의 그 날 져녁을 되새기게 한다.

 먼 과거도 아닌 바로 3년 전, 경남 남해군의 창선대교가 무너졌다. 그때 우리는 뭐라고 했는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약속하고, 과거사로 묻어버렸다. 그러나 1년뒤 신행주대교가 주저앉고 말았다. 건설중이던 교각 10개가 차례로 쓰러지면서 상판 8백m가 주저앉는 사고였다. 92년 7월의 일이다.

주인 없는 다리는 무너진다
 그때 우리는 또 뭐라고 했는가. 이번이 마지막 사고라고, 다시는 그런 사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시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아홉 달 뒤인 93년 4월 제주도 북제주군의 추가교가 무너져내리자 주검 2구 앞에서 우리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94년 10월21일이 치욕일로 가록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날, 성수대교는 무너졌다. 왜? 창선대교.신행주대교.추자교를 잊었기 때문이다. 부실 공사 탓도, 관리 소홀 탓도 아니다. 창선대교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안전 점검을 했을것이다. 신행주대교를 잊지 않았더라면 위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자교를 생각했더라면 온 국민이 모든 다리를 조사해 보자고, 그러기 전에는 다리를 건너다니지 않겠다고 아우성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창선대교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모두가 성수대교를 무너뜨리고말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주인 없는 다리였기 때문이다.

잘못되면 모두 “네 탓”
  주인이 있는 아파트는 콘크리트 건물에 으레 생기기 마련인 ‘금’이 하나만 생겨도 점검·진단·보수작업을 서두른다. 공공시설인 다리는 그렇지 않다. 성수대교와 도시가스 저장고와 충주호 유람선의 공통점은 공공물이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공공물에는 주인이 없다. 가족 윤리만 있지 문 밖에 나서면 사회 윤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성수대교 사고 때 인명 구조체계가 엉망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새삼 깨달았다.

 3년 사이에 우리는 다리 네 개를 무너뜨렸지만 ‘내 탓’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고위 인사일수록 남에게 떠넘겼다. 그러면서 덮어버리고 깔아뭉갰다. 그러는 동안에 부모 형제는 계속 죽어갔다.

 다리라면 무조건 ‘대(大)’자를 붙이고, 공기를 단축했다고 표창받고, 돈 적게 들여 지었다고 자랑하는 사고방식도 성수대교를 무너뜨린 주범이다.

 교량 사고는 일종의 선진국 진입병이다. 선진국 문턱에서 우리는 일단 주춤하고 말았다. 선진국은 끊겨나간 성수대교 48m의 거리만큼 멀어졌다. 이래도 저 해가 지고나면 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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