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미래로 통하는 문”
  • 정리ㆍ남문희 기자 ()
  • 승인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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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의 아시아전략’ 좌담/서구편향 벗어나 세계성 지향해야

95년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구한말 외세에 의해 강제로 개항하고 끝내는 36년간 식민 통치의 질곡에서 신음했던 우리로서는, 광복 이후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아직 조국 분단을 비롯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많이 안고 있다. 세계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의 위상과 나아갈 방향을 재정립하자는 뜻에서 좌담회를 마련했다.<편집자>

사회 : 국제화ㆍ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시사저널>은 세계화에 앞서 아시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인석 : 개인적으로는 아시아화에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90년 이후 한국이 경험한 큰 변화는 중국과 북한이 국제 무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아시아 시대를 맞아 중국과 북한의 등장이 한국에 주는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19세기 이래 지난 백년간 주로 실물 차원에서 한국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19세기가 한국이 아시아를 떠나는 시기였다면, 현재는 다시 아시아로 진입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한국이 겪게 될 장애요인은 없는지, 그리고 주변 상황은 어떻게 면할 것인지 생존 전략 차원에서 짚어봐야 합니다.

하영선 : 저는 국제화와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아시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19세기 개항기에 우리가 겪은 변화를 국제화라고 한다면 21세기를 앞둔 현재 시점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세계화입니다. 국제화가 근대 국가의 부국강병 전략과 일치한다면, 세계화는 탈냉전ㆍ탈근대 시대의 복합적 국가 전략에 걸맞는 개념이지요. 아시아화는 세계화의 한 구성 요소로서 봐야 할 것입니다.

공성진 : 아시아화가 세계를 포기하고 아시아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아시아가 중요하다는 것은 21세기가 아시아의 것이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2년전 유럽과 일본의 학자 1천5백여 명이 동원돼 ‘월드 2001’이라는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나온 결론이 21세기는 유럽의 시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론도 따지고 보면 21세기가 유럽의 것이 된다는 것이 아니고 유럽이 미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시아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흔히 누구의 시대라는 개념은 20세기 산업국가적 관점입니다. 현재의 세계를 탈근대ㆍ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정의할 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국민국가의 해체 과정입니다. 우리 역시 앞으로 국가 체계 재구축이 필요할텐데, 이때 아시아를 중요한 고려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시아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 : 우리에게 아시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죠.

이인석 : 실물의 흐름으로 볼 때 현재 아시아는 미래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9세기가 일본을 통로로 한 국제화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미래로 들어가는 관문이 될 것입니다. 최근 몇년 사이 우리 경제의 이동 과정을 살펴보면 이 점이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미국ㆍ일본ㆍ유럽의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의 비중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현상은 심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미국이나 유럽ㆍ일본과의 관계는 주로 정치적인 의미로만 남게 되고, 생명선인 경제는 중국이나 아시아에 의존하는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아시아 없는 유럽은 없다”
사회 : 중국의 떠오름은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이는 세계 경제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인석 : 세기말마다 세계 경제 중심지가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19세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20세기에는 미국에서 아시아로, 현재는 아시아에서도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그것입니다. 중국경제의 위력은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자본과 상품의 양이 1조달러가 됩니다. 1조달러라면 전세계의 자본과 상품을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21세기에는 핵탄두 숫자보다 시장이 무기라는 말이 실감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아시아의 중요성은 한국뿐 아니라 구미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독일의 콜 총리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아시아 순방을 끝낸 뒤 한 말이 바로 ‘아시아 없는 유럽은 없다’였습니다.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요.

사회 : 중국뿐 아니라 싱가포르의 이광요 전 총리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지적하듯 아시아의 가치에 대한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아시아적 자존심 회복 운동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공성진 : 70년대 중반부터 싹이 나왔다고 봅니다. 국제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패퇴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전쟁이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미국이 유럽 세력인 영국 편을 들자, 약소국은 약소국끼리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 유럽이 유럽연합(EU)으로 뭉치고 북미 대륙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뭉치는 등 경제 블록화 현상이 심해지고, 한편으로는 탈법전으로 인해 역내 국가들 사이에 이념 장벽이 없어지면서 아시아인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지요. 여기에 중국의 고도성장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회 : 냉전이 끝난 후 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정치ㆍ군사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하영선 : 전세계적으로 군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만은 예외입니다. 경제 교류는 활성화하는데 군비를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지요. 미국의 경우 군비가 상대적으로 줄고 있으나 19세기 영국처럼 급격하게 줄지는 많을 것입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 논의가 많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1세기 일본은 군사력보다는 기술ㆍ문화 대국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경제력에 상응해 군사력을 향상시킬 것은 분명합니다. 중국 역시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중심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미ㆍ소 중심의 군사력 구조가 재편되면서 힘의 공백 상태가 올때 이런 경쟁적 요소가 상승작용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사회 : 한반도 주변 4강 간의 역학 관계도 변하고 있지요.

하영선 : 미국의 힘이 쇠퇴할 것이라는 논의는 많이 있으나, 그렇다고 단기간에 이 지역에서 의미 없는 세력이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현재 경제력이 정점에 올라 있으나 국가의 한계로 보아 대국적인 사고나 행동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본은 오히려 쇠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은 경제력이 향상되고는 있으나 등소평 사후 혼란 가능성,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후 들이닥칠 정치 조정기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 등 조심스런 측면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당분간 힘을 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렇게 보면 동북아 4강의 세력 구도는 당분간 미ㆍ중ㆍ일 구도로 유지되다가 미ㆍ중, 또는 중ㆍ일 구도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질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사회 : 경제 블록화가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아시아권에 서는 그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인석 : 아시아는 유럽연합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처럼 국가 간의 조약에 의하기보다는 훨씬 자연발생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의 경제 공동체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인천과 중국의 위해가 1일 생활권이고, 중국 동북 3성과 한국 사이에 자연스런 경제권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정부의 아시아 정책이나 정부간 협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실물 흐름에 따른 것입니다. 앞으로 아시아에 경제권이 형성된다면 저는 두 가지 가능성을 봅니다. 하나는 자연스런 국지 경제권이고, 또 하나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에이펙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중간 단계의 소규모 경제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영선 : 경제 면에서는 낙관적이지만 정치ㆍ군사적인 안보협의체는 신중하게 봐야 할 것입니다. 유럽은 이미 19세기에 근대 국가를 형성하고 최근에는 탈근대를 모색하고 있으나,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제야 민족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제의 권역화는 활성화하고 있으나 정치ㆍ군사적으로는 당분간 치열한 민족주의적 경향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두고 전체상을 전망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문화 수용이 아시아화의 걸림돌
사회 : 아시아로 진입한다 해도 그게 우리 생각대로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시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부딪힐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인석 :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한국 기업들이 아시아 각국에서 겪는 노사분규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현지 적응이 안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 원인을 아시아 각국이 맞았던 근대화 과정의 차이에서 찾고 있습니다. 중국ㆍ일본ㆍ한국만봐도 19세기 서구 문명의 도전에 대한 대응 방식이 전부 달랐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선택했고, 한국은 묘하게도 기독교가 그 통로가 됐습니다. 일본은 자본주의였습니다. 이처럼 동양 3국이 서양을 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50년대 이후 아시아 전체가 서양을 대하는 공통점이 한 가지 생겼다면 그것이 바로 산업화입니다. 선두 주자인 일본을 포함해 한국ㆍ싱가포르ㆍ대만ㆍ홍콩을 1세대라고 한다면, 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태국이 2세대, 중국 ㆍ베트남이 3세대, 미얀마ㆍ북한이 마지막 때입니다. 문제는 4대까지 이르는 아시아형 산업혁명의 특징은, 어느 한 나라가 잘되면 다른 나라가 못되는 제로섬이 아니라, 앞선 나라를 중심으로 다함께 발전하는 공동체적 발전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 방식도 구미 일변도이던 시대와는 무언가 달라져야 합니다.

사회 : 문화 충격도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이인석 : 그렇지요. 우리는 국제화라는 측면에서는 아시아에서 하위권입니다. 특히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데는 매우 서툽니다. 문화 수용이 앞으로 아시아화에서 상당히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2천년 이상 중국 문명권에서 살다가 근세로 넘어오면서 마치 필름을 갈아끼우듯이 문명권을 이동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미국 중심의 서구 문명을 가지고 아시아로 들어가야 한다는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공성진 : 아시아에서 아시아화가 가장 안된 국가가 한국과 일본입니다. 일본은 이미 세계 국가라고는 하나 언어 장벽이 큰 문제입니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나, 아시아화라는 관점에서는 이것이 폐쇄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아시아국가들 대부분은 다인종 국가인데, 이는 그만큼 서로 다른 인종이나 문화권과 더불어 살 토대가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동남아 학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이 미국의 입김 또는 일본이라는 요인 때문에라도 아시아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남북이 통일될 때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대한 경계심도 큽니다. 단기적으로는 일본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정립할 것인가도 큰 숙제입니다.

사회 : 아시아 시대라는 관점에서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도 전망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지난해 타결된 미ㆍ북한 협상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하영선 : 북한 핵 문제 타결 이후 정부의 공식 입장은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킬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것과 북의 핵 위협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 ㆍ북한간 합의문을 꼼꼼히 뜯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이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미ㆍ북한 합의는 남북한 관계만 제외하고 남북한과 주변 4강의 관계가 모두 열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변 4강을 상대로 게임을 벌이기보다는 주변 국가들이 남북한을 상대로 게임을 벌이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지요. 미국과 북한은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데 남북한은 안되고 있다는, 이 속도의 문제가 국제정치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 : 남북 관계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하영선 : 남북 관계는 단기적으로는 어려우리라고 봅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의 생존 전략 때문인데, 저는 이를 3중 생존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그 첫번째가 북한의 국내 역량 강화입니다. 그러다 불가피하게 나온 것이 미ㆍ일 선진 자본주의를 끌어들이는 국제 역량 활용입니다. 현재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북한은 당분간 대남 정책에서는 두개의 조선 정책을 유지하려 할 것입니다. 남북관계가 활성화하려면 국제 역량 활용전략이 벽에 부딪혀 대남 관계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시점이 돼야 할 것입니다.

이인석 : 중국이 버티고 있어 북한이 당분간 중국식 모델을 채택한다고 할 때 한반도는 아시아형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마지막 승부를 노리는 공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한은 지금처럼 정부 대 정부의 대립보다는 북한식 체제와 한국식 체제의 우열을 겨루는 체제 대립, 체제 경쟁시대에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ㆍ법치주의의 확립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체제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체제 혁신과 체제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저는 중국을 무대로 한 남북의 교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중국 동북 3성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고 북한도 해외 무역의 6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단절되고는 있으나 중국이라는 제3의 공간에서 만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통일 문제는, 북한 체제가 만약 무너진다고 가정할 때, 북한 체제를 과연 우리가 어떤 식으로 포용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빵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역량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지, 두번째는 남북한의 사회통합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남북한 이질감 통일 장애 안돼
사회 : 남북한의 문화적 이질감도 통일의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공성진 : 그 점에 대해서는 그리 비관하지 않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민족의 원형이라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의 밑바탕에는 샤머니즘적 요소가 있습니다. 북에서 귀순한 사람들이 기독교에 귀화해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점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사회 : 이제 한국이 선택해야 할 전략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하영선 : 21세기를 향한 생존ㆍ번영 전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우리도 4중 전략을 짜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은 국내 역량 강화입니다. 한편으로는 근대화 과정을 완성해야 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탈근대적 요소를 동시에 포함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삼아 남북한 관계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북한의 생존 전략이 딜레마에 빠져 방향을 전환할 때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번째는 동북아시아의 국제 역량 활용인데, 우선 당장은 일본을 어떻게 순치할 것인가가 대단히 큰 숙제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이 상호 체크하게 하는 방안은 없는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중국이나 동남아와 연계해 미ㆍ일의 상호 체크 시스템을 다시 체크하는 방식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겁니다. 한반도는 비록 통일이 된다 해도 주변이 워낙 큰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 4강의 상호 체크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아시아를 넘어 유럽 등 세계 역량을 최대한 끌어들여 4강 구도를 견제해야 할 것입니다.

이인석 : 아시아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회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버겁기도 합니다. 미ㆍ일ㆍ유럽을 대하던 양식과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미ㆍ일ㆍ유럽 시대는 우리 문제를 주로 상대에게 전가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시대에는 그렇게 해서는 어렵습니다.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입니다. 또 미ㆍ일ㆍ유럽과의 관계가 주로 받는 관계였다면 아시아 시대에는 주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말해 미ㆍ일ㆍ유럽과의 관계가 들어오는 문은 막아놓고 나가는 문만 열어놓은, 입력 회로는 없이 출력 회로만 있는 관계였다면, 아시아 시대에는 이 양쪽을 다 열어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산업 개방, 시장 개방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지요. 또 한편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아시아로 간다고 해서 그동안 구미와 맺었던 관계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성진 : 그동안 우리가 서방일면도의 주변부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선택은 당당한 주체 세력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주면 세력으로 남을 것인가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때는 대륙 국가, 또 한때는 해양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반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해양과 대륙의 문화를 모두 흡수해 세계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정리ㆍ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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