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쟁력 검증받은 주식 사라’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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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주식 토정비결’       
전문가 5인의 전망과 투자전략/“장세 활황, 금융ㆍ우선주 피하라”
 94년은 한국증권시장이 89년 4월부터 시작된 지루한 침체를 끝내고 1천 포인트 고지를 재탈환한 해이다. 증권 전문가들은 94년이 한마디로 ‘역동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쉴새없이

‘뜨는 해’와 ‘지는 해’로 대별할 수 있는 주식이 출현했다. 이른바 ‘테마 주’를 만들어 패션화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1년치를 한두 달에 달성한 급등 종목도 속출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95년이 94년 빰치게 활발한 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렇게 보는 가장 큰 근거는 경기가 활황기에 진입했다는 데 있다. 경제학자들조차 경기가 패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지 규명하지 못하지만, 경기가 증시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다. 경제 전체의 활동 수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 95년 경기를 보는 시각에는 상당한 균열이 엿보인다. 좋다는 정도와 상승 기간에 대한 전망이 제각각인 것이다. 증권사들은 94년 상반기에 격화했던 경기 논쟁을 재현하고 있다.

 대우증권을 필두로 한 몇몇 증권사들은 95년이 94년에 견주어 성장률은 1% 포인트 정도 떨어지지만 활황 기조가 본격화하며, 96년은 더욱 좋다고 전망한다. 경기 상승이 수출 증가ㆍ투자확대ㆍ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흐름이어서, 해외경기 활성화에 따른 수출 호조가 계속될 경우 확장기가 매우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95ㆍ96년이 장기 상승 추세선의 중간에 위치할 것이라고 보며, 95년 연말 주가가 94년말 대비 50%상승하리라고 점친다. 종합주가지수를 1천5백 포인트 선으로 보는 셈이다. 이 기조가 98년, 최소한 97년 상반기까지 이어진다고 예측한다. 이같은 주장의 대표자는 대우경제연구소 沈根燮 전무를 들 수 있다.

 반면 동방페레그린증권 白京和 이사는 현재의 경기 사이클을 순환 국면'이라고 이해한다.그는 5차 순환의 활황기가 85~88년이 아니라 82년째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한번 큰 사이클을 타면 그 다음은 작은 사이클이 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95년 하반기께 짧게나마 경기가 나빠질 공산이 있지만 96년부터는 확실히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95년은 흥분할 수준의 경기가 못될 것이므로 따라서 큰 폭의 주가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그는 목표 수익률을 높게 잡으면 실망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금 운용 형태도, 사람들은 80년대 말 경기 호황으로 거머쥔 돈을 다투어 땅과 집에 밀어 넣었지만 이제는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기보다 금융권 어딘가에 넣어둘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식 매입 호기는 95년 상반기
 현재의 경기 상승세가 늦어도 95년 말께 끝나리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동서증권 ㆍ대신증권 등 꽤 많은 증권사가 이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한국 경제가 72년 3월 이후 다섯 차례 순환하는 과정에서 ‘확장 31개월, 수축 19개월’ 이라는 평균 궤적을 보인 사실을 근거로 든다. 현재의 경기는 93년 1월을 바닥으로 94년부터 활황세를 보였으며, 95년 말께 시한부 생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2년 연속 잠재 성장률(물가 등 부작용 없이 한 나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능력. 한국은행이 92년 6.8-7.2%로 추정)을 웃도는 성장으로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고 있으며, 설비 투자도 진정될 것이라는 근거를 들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진 점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동서증권 李鐘南 책임연구원은 “경기가 최고점을 형성한다면 2~6개월 가량 선행하는 주식의 속성상 주가도 하반기께 천장을 치게 된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경기는 정부의 경기 조절책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정부가 과열을 우려한다면 경기의 숨을 죽여 확장 국면을 줄일 수 있고, 반대로 길게 만들 수도 있다. 증권 관계자들은 95년 예측을 어렵게하는 가장 큰 변수가 통화 관리라고 말한다.

 96년 실시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호재라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정부가 증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강력히 원하는 정황이 이런 판단을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된다. 세금을 피하고 싶어하는 떠도는 돈 수십조원이 주식시장을 피난처로 삼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하지만 유입속도나 시기 등이 도리어 증시 불안 요인이 되리라는 견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상ㆍ하반기 장세 흐름도 엇갈린다. 상반기 장세가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시각은, 94년 말 이후 다소 소강 상태인 장세를 추스르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자금 사정도 빡빡하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닛코(日興)증권 任勇彬 부소장은 “2/4분기까지 게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이 때가 주식을 사야 할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또 1/4분기께면 94년 7월과 10, 11월에 급등한 주식들이 이유 있는 상승인지 불순한 의도가 끼여든 상승인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청소가 필요하므로 소란스런 장이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투자신탁 朴鐘奎 주식운용역은 ‘상반기 강세, 하반기약세’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점친다.

 주식 전망은 ‘백인백색’을 넘어 ‘백인백일색’이란 말이 있지만, 증시 전문가들조차 혼미를 거듭하고 있어 일반 투자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95년 증시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장일수록 조사분석가들이 득세하는 장이 된다는 점이다.

 쌍용투자증권 洪起烽 강남지점장은 “95년 장을 승리로 이끌 주역은 조사분석가”라고 단언한다. 이 말의 의미는 94년에도 도드라겼지만, 주식이 잘난 주식과 못난 주식으로 대별돼 차별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단지 어떤 업종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우르르 오르는 동반 상승 시대는 한국 증시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함축한다. 물론 이것은 주가는 ‘기업의 내재 가치가 결정한다’는 원론적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지만, 기업의 기본 요건(fundermentals)이란 개념은 다시 정리돼야 한다.

 증권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치고 ‘푼더멘탈’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이가 없다. 이들이 신봉하는 이 말의 의미는 다양하게 쓰이는 추세다. 내재 가치가 뛰어난 주식이라면, 사람들은 삼성전자ㆍ한국이동통신ㆍ포항제철ㆍ현대자동차 같은 핵심 블루칩을 떠올린다. 이들이 좋은 주식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 주식들만이 내재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푼더멘탈을 편협하게 해석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분석가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매출 실적이 획기적으로 늘거나, 자회사를 묶은 연결재무제표가 매우 양호하거나, 신기술 같은 무형 자산을 갖고 있다면, 그 기업에 내재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증시에 상장된 천여 종목가운데 어떤 주식이 내재 가치를 숨기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몫으로 넘겨지는 추세다. 진흙속에 숨은 진주를 캐는 작업에서부터 밀리는 일반 투자자들은 기관 투자가들의 거대한 자금력으로 말미암아 또 소외될 공산이 크다. 한국 증시의 기관화는 40~60%에 달하는 선진국 증시에 견줄때 미약하지만 올해 40%선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투자가들을 포함할 경우 45%선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관화 현상’의 심화는 증시 안전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기관 투자가들이 이런 공익적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돈을 벌어야 하는 ‘수익률 게임’에 내몰린다. 두 시중 은행의 수익률 경쟁이 삼성전자 주식을 들었다 놓았다 한 사실이 한 예이다.

 95년에는 유별나게 테마 주라는 유행이 시장을 휩쓸고 다닐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산업,사회간접자본, 기업 매수 및 합병(M&A),남북경협,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결재무제표, 공기업민영화, 금융산업 개편 등과 관련된 수많은 테마주가 거론되고 있다. 모두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주식을 언제 사야할지 가능할 수 있는 투자자라면 이미 프로다.


 증권 평론가 嚴吉靑씨의 조언은 불리한 처지인 일반 투자자에게 유용할지 모른다. “국제 경쟁력을 검증받은 주식을 사라. 이 주식들은 반짝 빛볼 테마 주를 능가한다. 그리고 업종 이류 주식은 피하라. 여력이 있으면 성장성이 뛰어나고 미래 가치가 인정되는 정보통신 관련 주가 유망하며, 구조 조정이 활발한 종목에도 눈을 돌려라.”

 한국 증시는 어설프지 않다. 상당히 효율적인 시장이다. 선진국 증시처럼 귀재나 고수 소리를 듣는 프로 선수들이 활개를 친다. 95년이 강세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지만 장을 읽고 나름대로 투자 전략을 세울 정도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투자자가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때마침 94년 말에 발표된 주가제한 폭 확대(4.6%→6%),기관 투자가의 위탁증거금 폐지는 일반 투자자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한국투자자들이 더욱 어려운 것은, 선진국과 달리 간접 투자를 하려 할 때 선택할 폭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현실이다.

 세상 만사를 예측하고 해석해야 하는 증시 전망 작업은 한층 어렵다. 과거와 달리 국내 요인만 살펴도 안된다. 투자자들은 94년에 한국 증시가 세계 금융시장 풍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가 한 해에 무려 여섯 번이나 금리를 올려 결과적으로 세계 중시의 ‘살육’을 초래한 사실을 강건너 불보듯 할 수 없었다. 한국증시는 국제화로 종종걸음을 치고있고, 세계 증시 속으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점점 예측 불허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
張榮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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