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복’한 집념의 신 한국인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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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컴퓨터·바둑·스포츠·연예 등에서 ‘우뚝’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더 이상 ‘차별의 섬’이 아니다. 도쿄 닛포리에서 월간지 <아리랑>을 발행하는 金宗永씨는 이제 서른을 갓 넘은 청년이다. 그는 4년 전 대학원 진학을 위해 일본 땅을 처음 밟았다. 그러나 중도에 마음을 바꾼 그는 2년 뒤 ‘신 한국인’들을 위한 정보지를 창간하기로 결심했다.

 신 한국인이란 최근 일본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한국인들을 말한다. 그들은 우선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3세와는 달리구김살이 없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말을 하며 굳이 자기가 한국인임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일본을 ‘차별의 섬’이 아니라 ‘기회의 섬’으로 본다. 유학 후 대우가 좋으면 일본 회사도 마다지 않는 것이 그들이다. 김종영씨와 같이 아예 일본에 정주하기로 결심하고 사업 기회를 찾으려 하는 것도 그들의 한 특징이다.

 이러한 신 한국인들에게 도쿄 지역의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리랑>이다. 현재 발행 부수는 약 2만부. 경쟁지가 10여 종류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비약이다.

서울올림픽 전후해 30만명 몰려와
 김종영씨에 다르면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몰려들기 시작한 신 한국인은 모두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도쿄 지역에 20만 명이 거주하는데, 문제는 이들에게 구심력이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대사관은 문제아가 많다는 이유로 이들을 무시하고, 교포 조직인 민단도 이들을 경원한다. 때문에 신 한국인을 위한 새로운 교포 조직을 결성해야 한다는 것이 김종영씨의 생각이다. 그는 이런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올해 신 한국인을 위한 FM 라디오 방송국을 개설할 예정이다.

 일본이 기회의 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은, 신 한국인들의 눈부신 활약이 이를 입증한다. 94년 12월8일은 일본 바둑계에서 한국인의 승전고가 두번 울려 퍼진 날이다. 하나는 柳時勳 6단이 일본 바둑계의 정상급 기사인 임해봉 9단을 3 대 1로 꺽고 천원위(天元位)를 거머쥔 것이다. 천원위는 일본 바둑계의 7대 타이틀전 가운데 하나이다. 유 6단은 일본에 건너온 지 8년 만에 일본 기전 랭킹 6위 타이틀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 하나는 조치훈 9단이 숙적 가토 9단으로부터 왕좌위(王座位)를 탈취한 것이다. 조치훈 9단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기성(棋聖)과 일본 기전 랭킹 3위인 본인방(本因坊)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기원 발표에 따르면, 일본에서 바둑 하나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프로 기사는 약 4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고참 프로 기사가 겹겹이 포진하고 있어 유시훈 6단과 같은 20대 신인이 7대 타이틀을 획득하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로 유 6단이 20대에 타이틀을 획득한 것은 12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올해 조치훈·유시훈이 일본의 7대 타이틀을 싹쓸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둑뿐 아니다. 신 한국인들의 활약은 스포츠에서도 눈부시다. 유시훈 6단이 천원위를 손에 넣기 한달 전쯤 프로 골퍼 高又順 선수는 일본 골프계를 평정했다. 그것도 여성 프로 골프계 잔설의 여왕 베시 킹을 연장전에서 제압했다.

 2년 전 일본에 진출한 고우순 선수는 작년 3월 기분 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뒤 11월에 열린 94 도레이 저팬 퀸즈컵을 손에 넣었다. 이 대회는 미국의 베시 킹·낸시 로페스와 일본의 오카모도 아야코 등 쟁쟁한 프로 골퍼가 참가해 미국여성프로골프협회(LPGA)가 시즌 오픈 경기로 공인한 대회이다. 고우순 선수가 LPGA 공인 경기에서 우승한 것은, 한국 선수로는 88년 구옥희 선수가 티코이즈 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두번째 이룩한 쾌거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 여성 프로 골프계를 주름잡는 사람은 고우순 선수가 아니다. 올해 나이 25세. 키 162㎝. 몸무게 59㎏. 3년 전 도일. 중경 대학 입학. 이것은 작년에 3승을 기록하며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 골퍼로 등장한 원재숙 선수의 신상 명세서다. 그는 작년에 군제컵·토토자동차컵 등 세 대회를 석권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골퍼다. 그는 한국인 골퍼로는 처음으로 연간 상금 총액 3위에 오르는 대활약을 보였다.

 원재숙·고우순 선수 이외에도 지금 일본 여성 프로 골프계에는 작년에 1승을 기록한 이영미 선수와 구옥희·김애숙·신소라가 시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에 데뷔한 2~3년째를 맞아 안정감을 찾고 있어 올해는 이들의 우승 합계가 최소한 작년에 올린 6승 이상이 기대된다는 것이 <일본경제신문>의 분석이다.

 일본 여성 프로 골프는 연간 39개 대회 가 개최되어 상금 총액만 21억7천여 만엔(약 1백73억원)에 이른다. 이 상금을 둘러싸고 일본·미국·호주·대만의 여성 프로 골퍼들이 해마다 각축을 벌여 왔는데, 80년대는 대만 선수들이 상금을 휩쓸다시피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낭자군이 대만 선수를 제치고 황금기를 맞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은 우선 신 한국인답게 경기 태도에 구김살이 없다. 원재숙 선수는 시합중 늘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는 일본의 중년층 남자 갤러리들의 성원이 끊이지 않는다.

노정윤 선수, 일본 축구팬들 심금 울려
 히로시마 산프레체 팀에서 활약하는 축구 선수 노정윤에게도 94년은 기억에 남을 한 해였음이 틀림없다. 연봉이 갑절인 5천2백만엔(약 4억 1천만원)으로 뛰었고, 팀은 그의 활약으로 전기리그에서 우승했다.

 이제 그는 한국의 스타가 아니라 일본의 스타다. 화려한 드리블링, 겸손한 매너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한국 대표로 월드컵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일본을 떠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해 일본 축구팬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한국 대표로서가 아니라) 아시아의 대표로 열심히 뛰고 오겠습니다.”

 신 한국인다운 메시지다. 그러나 일본 이적 3년째를 맞는 올해야말로 중대한 고비다. 우선 엔고 위력으로 대거 유입된 외국 유명 선수들이 그를 위협하고 있다. 또 작년에 이루지 못한 종합 우승을 위해 올해는 갑절로 뛰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를 옥죄고 있다.

 가수 계은숙도 일본을 기회의 섬으로 바꿔놓은 대표적 신 한국인이다. 10년 전 혈혈단신으로 일본 땅을 밟았던 그는 지금은 누구 못지 않은 대가수다. 작년에도 그가 부른 <새처럼 꽃처럼>은 대히트했다.

 그가 일본에서 대가수로 자리를 굳혔다는 것은, 작년 NHK <가요 홍백전> 프로에 또다시 출연했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가요 홍백전이란 매년 섣달 그믐날 밤에 방영하는 NHK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평균 시청률이 50%대를 내려간 적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민적 인기 프로’로 불린다.

 따라서 이 프로에 출연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신인 가수가 이 프로에 출연하면 출연료가 몇 배 뛰어 오르고, 인기 가수가 선발에서 떨어지면 사양 가수라는 낙인이 찍힌다.

 계은숙은 <새처럼 꽃처럼>이 크게 인기를 얻어 작년에도 이 프로의 출연 가수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더욱이 7년 연속 출연 기록을 세웠다. 말이 7년 연속이지, 일본 가수 중에도 그 정도 연속 출장자는 몇 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외국인 가수로는 계은숙이 처음이다.

 재일 교포들에게도 일본이 언제나 차별의 섬은 아니다. 컴퓨터 소프트 웨어 유통 회사인 소프트뱅크사 孫正義 사장은 작년에 2천억엔(약 1조6천억원)을 벌어들인 화제의 인물이다. 그가 38세라는 나이에 이같은 부를 쌓게 된 것은, 대학 졸업과 함께 설립한 자신의 회사를 작년 7월 공개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사의 연간 매출액은 현재 천억엔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해마다 이익을 갑절로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멀티 미디어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이 회사가 수조엔대의 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본다. 이런 기대치 때문에 주식이 공개되자마자 주당 가격이 무려 1만9천엔(약 15만2천원)까지 치솟는 기현상을 보였다.

 창업 13년 만에 거부가 된 손사장은 일본에서 태어난 교포 3세다. 그의 밑천은 19세 때 개발한 자동 번역기 판권 1억엔. 이 돈으로 24세 때 소프트뱅크사를 설립한 것이 오늘의 성공을 가져왔다. ‘일본의 빌 게이츠’ ‘컴퓨터 왕’으로 불리는 그는 올해도 약진이 기대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재일 교포 영화 감독 崔洋一씨에게도 작년은 생애 최대의 한 해였음이 분명하다. 최감독이 연출한 <달은 어디에 떠 있나>가 일본의 영화상을 휩쓸자 그는 일약 일본 매스컴의 총아로 떠올랐다. 6월에는 아버지의 유적을 찾아 한국땅을 처음 밟기도 했다.

권위 있는 문학상 받은 60대 소설가
 현재 촬영중인 작품은 사기꾼 일가를 코믹 터치로 묘사한 <도쿄 디럭스>. 그는 이 영화의 촬영이 끝나는 대로 일단 감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어학 유학을 갈 예정이다. 일본 언론들은 절정기에 있는 그가 영화계를 떠나는 결단을 내린 데 놀라고 있으나, 실은 한국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그의 오랜 꿈이다.

 동안의 작가 李恢成씨도 올해 환갑을 맞이해 분주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다듬이질을 하는 여자>로 72년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한 그는 작년에 근대 한국 백년의 수난사를 그린 <백년의 여행자들>이란 소설로 또다시 권위 있는 노마 문예상을 수상했다.

 <다듬이질을 하는 여자>가 모친에게 대한 진혼가였다면, 이 소설은 부친에 바치는 또 다른 진혼가다. 이 소설에는 패전 후 일가를 거느리고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부친에 대한 정념이 짙게 배어난다.

 관서대학 李英和 교수는 작년에 김일성이 사망하는 바람에 뜻밖에 각광을 받게 된 사람이다. 재일 교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유학을 갔다온 그가 북한의 실상을 폭로한 <북조선 비밀집회의 방>을 펴내자마자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그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인사였다. 그가 조직한 재일당은 외국인에게도 참정권을 달라고 수 차례 위헌 소송을 냈다. 비록 작년에도 패소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올해 치를 중·참의원 선거에 재일당 후보를 입후보시킬 예정이다.

 이영화 교수에게 일본은 분명히 차별의 섬이다. 그러나 차별에만 집착하다 보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60만 재일 교포나 30만 신 한국인들이 차별의 섬 일본을 기회의 섬으로 인식할 때 우리의 세계화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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