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학, ‘누울 자리' 보고 떠나라
  • 북경·이연한 (자유 기고가) ()
  • 승인 199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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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숙사 생활 의무 제도, 수용능력 부족으로 한계점에…외국인 학생들 숙소 찾기 큰 곤욕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92년 8월까지 우리나라 학생들의 중국 유학은 단순한 언어 연수이거나 학위 취득과는 무관한 전수 과정에 그쳤었다. 정식 유학생 자격을 얻어 중국의 각 학교에 입학하게 된 지는 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 유학은 여러 가지 조건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 유학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가장 뚜렷한 특징은 양적 증가이다. 93년 말 현재 ‘재북경 한국인 총유학생회’(유학생회)가 집계한 바로는 북경에서 언어 연수를 포함해 6개월 이상 머무르는 장기 유학생 수는 1천2백여 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94년 4월1일 중국이 북방 사회주의 특정 국가에서 풀리면서부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10월 말 있은 유학생회 회장 선거에는 북경 소재 22개 학교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당시 북경의 한국 유학생 수는 약 3천5백명 정도였다. 1년 사이에 3배 정도가 증가한 것이다. 이 수치는 중국 유학 역사가 20여 년으로 유학생 수가 가장 많은 일본의 수준에 거의 육박하는 수치이다. 이렇듯 갑자기 늘어난 한국 유학생들로 말미암아 대학이 밀집한 학원로 일대의 각 대학은 유학생 학사 관리에 여러 모로 애를 먹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유학생 기숙사 문제이다.

 우리나라 대학과 달리 중국 대학은 학생 전원이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유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한국 유학생을 수용할 기숙사를 확보하는 문제가 유학생을 관리하는 각 학교 외사처의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각대학 외사처는 기숙사 신축·개조·보수 둥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한국 유학생 급증…‘무작정 입학’으로 낭패보기도

 유학생 기숙사는 각 대학이 시설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같은 건물에 층별로 남녀 방이 구분되어 있고 공동 화장실·샤워장을 갖추고 있다. 부대 설비로는 유학생 식당과 구내 매점이 있으나, 대학 밖과 비교하면 값이 더 비싸 부담스럽다. 기숙사 방은 가로3.5m 세로 6.5m에 2인1실이 기본이며, 각 방에는 개인용 침대·책상·옷장·책꽂이가 각각 2개씩 있다. 학교 별로 기숙사 방의 유형과 기숙사비가 조금씩 다르며 , 기본적인 부대 시설에서도 약간씩 차이가 난다.

 현재 북경에서는 사회과학원(중국 최고의 사회과학 연구 기관이며, 학위 과정에는 외국인을 받지 않음)을 비롯한 많은 학교가 늘어나는 유학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언어 연수 과정을 새로 개설해 놓고 있다. 그러나 급격히 늘어나는 학생들때문에 시설·관리 능력·규정 미비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북경영화아카데미(北京電影學院)는 작년 초까지 5명 안팎의 한국 유학생을 포함하여 전체 30여 명이던 외국인 유학생이 3월 학기부터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늘어나 현재는 약 80명이 기존 유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갑작스레 늘어나자 학교 당국은 기숙사 건물에 있는 교실들에 합판으로 벽을 만들어 방으로 개조했다. 그러나 각층에 한 칸씩이었던 화장실과 샤워장은 그대로여서 학생들의 불만이 높다. 학생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학교 당국은 궁여지책으로 화장실에 용변기 하나를 더 설치했다. 기숙사의 시설 부족이라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떠안게 된 각 학교 당국은 최근에 와서, 새로 입학하는 학생에게는 거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새로운 조건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 조건에 맞추려면 학생들은 유학생 기숙사보다 비용이 비싼 초대소(학교 등 각 조직의 단위 별로 외부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한 숙박 시설)라는 곳에 살아야 하므로 생활비 압박을 받게 된다. 게다가 초대소 중에는 장기 거주를 허용하지 않는 곳도 있어, 거주지를 자주 옮겨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도 한다.

 중국의 각 학교는 언어 연수 학생을 받을 때 대부분 개인 별로는 등록을 받지 않는다. 이는 93년 9월 학기부터 한국 내의 유학정보센터가 각 대학 외사처와 학생 충당 계약을 맺고 학생등록을 독점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다. 심지어는 한국의 유학정보센터가 중국측 학교의 수용능력을 초과하여 학생을 입학시키는 경우도 있어 많은 유학생들이 학교측이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악조건을 감수한 채 입학하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은 초대소 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의 기숙사 실정을 모르는 데다가, 유학정보센터가 사전에 자제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까닭에 초대소가 기숙사인 줄 알고 지내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기가 기숙사 정원 외로 입학한 것을 알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재학 기간 내내 기숙사를 제공받지 못한다.

수용 여건 무시한 연수과정 개설 붐도 문제

 기숙사가 왜 이렇게 중국에 유학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일까. 중국은 서방 국가들과 달리 유학생을 포함한 외국인의 거주가 자유로운 편이 아니며, 북경에 있는 아시안게임 선수촌(亞運村)등 몇 군데 외국인 거주지역의 집들은 월세가 몇 천달러씩 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 유학생들이 거주하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중국의 유학생 기숙사는 외국인 거주가 자유로운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에 유학하고 있는 모든 유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금 중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등소평의 개혁·방 정책 행동지침 중의 하나인 ‘흑묘백묘론’과 ‘자력갱생’의 실습장과도 같다. 이름난 출판사가 가라오케 경영을 부업으로 하는일 따위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경의 대학들이 언어 연수 과정을 개설해 부수입을 올리는 것도 이같은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대학의 이런 움직임은,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중국 열풍’에 호응하려는 방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비한 유학생수용 시설과 학사 관리 대책을 감안하지 않은 채 외국인 학생들을 끌어들이려는 데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매우 심각하다.

 얼마 전 북경 사범대학 석사 과정에 다니는 한 한국 학생이, 기숙사비를 대폭 인상하려는 대학측 방침에 대한 설문 조사서를 받고 깜짝 놀라 ‘우리는 돈을 벌러 중국에 온 상인이 아니라 중국의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온 학생입니다. 우리는 귀국후에 중국과 한국의 문화교류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서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우리를 경제적 수입원이 아닌 학생으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취지의 서한을 유학생 담당 책임자인 외사처장 앞으로 발송한 일은 외국인 중국 유학의 어두운 현실을 잘드러내 준다. ■
북경·李沿翰 (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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