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못한 식민지 역사
  • 글 조용준 특파원 ()
  • 승인 199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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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권 백인 독차지…계속되는 내전속 개혁바람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칼로 그은 듯 반듯반듯한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19세기 서구 열강이 세계지배의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종족과 종교에 관계없이 땅덩어리를 분할했기 때문이다. 코끼리나 들소떼들만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킬리만자로의 몇몇 봉우리가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선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프러시아의 카이저와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타협한 결과였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2차대전이 끝나고도 한참 뒤인 1950년대 중반 이후에 독립했다.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전히 식민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 서구에 예속된 채 정치 경제적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질적인 종족간의 갈등은 지금도 내전과 지역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미 수백년 전에 뿌려진 서구 열강의 영향력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정부의 고문 자리나 굵직한 경제 이권은 서구인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자원과 노동력이 없었다면 유럽의 오늘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의 드골은 “아프리카 없이는 유럽이 있을 수 없다”라는 칼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아프리카 없이는 프랑스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유럽에 의한 아프리카 착취의 역사는 이 짧은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아프리카는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등 회교 영향권의 북부 아프리카, 세네갈 가나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 콩고 잠비아 등 중부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등의 동부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프리카로 크게 나누어진다.

 북부아프리카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모두 낙후되어 있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블랙 아프리카’는 끊임없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와 기하급수적인 인구폭발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20세기초까지 1억명에 불과했던 아프리카 인구는 지난 90년 동안 5배가 늘었지만 식 량생산은 인구증가율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1천5백만명의 인구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영양실조 등으로 평균수명이 짧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거리에서는 노인들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자연재해와 내전 등 인재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가 마이너스 또는 제자리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백달러 이하인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도 새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동유럽개혁과 함께 시작된 개혁의 열기는 아프리카 대륙에도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다. 민주화와 민족주의의 외침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려퍼지고 있다.

 금년 들어 코트디부아르 베냉 자이르 카메룬 가봉 나미비아 케냐둥지에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수십년 동안 총칼로 국민을 짓밟아온 1당독재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유혈사태도 빈번히 일어났다. 그러나 동유럽개혁에 세계의 관심이 몰리면서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현재 아프리카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은 2천7백여명. 서부 · 중부 아프리카가주요 활동무대다. 이들은 대부분 사진관, 소규모 무역업,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음식점을 차리거나 가발 · 가방 · 플라스틱 공장 등을 운영하는 이들도 많다.

 현지의 시장구조에 정통한 사람들은 앞으로 유망한 것은 주사기나 플라스틱 용기 따위를 만드는 소규모 투자라고 말하고 있다. 삼성 대우 현대 등 대기업은 대규모 건설사업 이나 철도 차량 등 거액의 상품거래를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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