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업은 조직폭력 “6공 들어 더 극성”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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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개발?인허가권 등이 미끼 …‘당원’자격으로 공개활동

정치권에는 여야를 통틀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 세가지가 있다. 정치인들의 언행이 정보기관에 의해 탐지되고 있다는 것. 정치인 대부분이 한두번씩은 이권에 개입해 ‘뭉칫돈’을 만져보았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직?간접으로 정치인이 주먹세계와 끈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보안사의 정치인 사찰 파문, 영등포 역사의 점포 분양 특혜 사건이 터지자 여론은 “심증이 물증에 의해 사실로 드러났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민자당내 사조직인 월계수회와 인천지역 폭력조직과의 관계가 알려졌을 때도 ‘역시’라는 반응이 나왔다.

 

정치와 주먹은 ‘형님 동생 사이’

특정 정치인이나 계파 주변에는 늘 주먹세계 ‘어깨’들의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과거 자유당 시절부터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多選의 원로 정객에서부터 이제 막 정치 ‘맛’을 보기 시작한 초?재선 의원에 이르기까지 폭력배와의 인연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는 조직 폭력배 얘기만 나오면 폭력조직의 배후로 으레 특정 정치인들의 이름이 더불어 거론되기 일쑤다. 지난 10월말 검찰이 전국 10대 폭력조직의 우두머리들을 공개 수배했을 때는 목포파의 두목 姜大佑씨와 야당의 ㄱ?o의원이 관련되어 있다는 풍문이 나돌았고, 심지어 이들 의원이 강씨의 후견인 역할을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관련 의원들이 폭력조직과의 관계를 부인했음은 물론이다.

또 3당합당 직후 당시 통일민주당 金正吉 의원이 민자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 잔류를 선언하자 김의원의 사무실에 괴청년들이 난입, 김의원의 보좌진을 협박한 사건도 정계에 기생하는 ‘어깨’들의 존재를 입증하는 예의 하나다. 88년 서울 영등포 을구 재선거 때는 여당이 전국에서 3천명 이상의 폭력배를 동원해 선거운동원으로 활용했으며, 4?26총선 당시 대구 서갑구에서는 아예 야당에서 투?개표 참관인을 참석시키지 못할 정도로 여당이 동원한 주먹들의 횡포가 심했다는 것이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속칭 ‘용팔이 사건’이야말로 5공화국 정치폭력의 상징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李哲 의원은 88년 4?26총선 전날 밤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3백여명의 괴청년이 지구당사로 몰려왔다. 열댓명의 우리측 사람들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다. 한바탕 난리가 휩쓸고 지나간 2시간 후에야 기껏 교통경찰 2명이 나타났다. 당사 주변에 몰려든 인파 때문에 교통 정리를 해야 해야한다면서."

정치 폭력배에게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야당 의원들의 증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선거운동 기간에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만 선거운동에 폭력배를 동원하는 것은 아니다. 민자당의 중진 ㅎ의원은 ”선거 때마다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주먹들이다. 특히 대통령선거 때가 압권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모두 주먹들의 손을 빌리기 때문에 전국의 어깨들이 거의 다 동원되다시피 한다“고 말한다.

 

“선거철이 대목”

4?26총선 당시 통일민주당 선거 운동에 ‘주먹’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던 ㅇ씨는 “선거철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대목이다. 보스에게 지시받은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일당만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선거 초반에는 여당쪽에서 일하고 후반에는 야당쪽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술회한다. ㅇ씨는 또 “민정당(당시) 일색이었던 경북 지역의 민주당 선거 캠프에서 선거운동원으로 뛴 결과 악전고투 끝에 민주당이 2석이나 따내자 상여금조로 특별수당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에 폭력배를 동원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이 위험부담을 안고 선거전에 폭력배를 쓴다. 폭력배를 가동시킬 경우 짧은 선거 기간에 비밀리에 가장 효과적으로 밑바닥의 유동표를 긁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확고한 정치이념이나 정책제시 없이 정쟁만 거듭하는 정치인일수록 폭력조직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선거철만 되면 우선 당선되고 봐야 한다는 한국 정치인의 의식이 정치와 폭력을 질긴 끈으로 묶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야권에서 잔뼈가 굵은 ㅂ씨는 정치인들이 주먹잡이들과 끈을 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연결형태나 활용방식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당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지역사회 개발이나 인?허가에 따른 이권을 미끼로 그 지역의 폭력조직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고, 폭력조직은 반대급부로 선거운동 등을 돕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그는 “야당 시정은 전혀 딴판이다. 기껏해야 선거철에 일회용으로 동원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자동 해산된다”라고 여권과 야권을 구별지었다.

한국 야당사의 한 장은 이른바 ‘각목부대’로 장식된다. 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장의 난투극이야말로 ‘각목 정치’ 시절의 한 표본이다. 평민당의 한 원로 정치인은 “당시 야권의 한 계파를 이끌면서 보스 노릇을 했던 ㅇ씨의 눈밖에 난 사람들은 예외없이 한번쯤은 혼쭐금을 당하던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야당의 치열한 계파 싸움과 당권경쟁은 ‘정치깡패’를 등장시켰고, 한 정치평론가의 표현대로 ‘야당을 정당 차원 이전의 모임’으로 만들어버렸다.

각목부대를 말하지 않고는 정치를 말할 수 없었던 60년대말에서 70년대의 야당사를 지켜본 중진의원 ㅊ씨는 “야당의 정치깡패는 당권경쟁에 일시적으로 동원되었을 뿐”이라면서 “주류와 비주류 측에서 동원한 주먹들의 두목끼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마주치면 서로 빽빽 소리만 지르다가 대회가 끝나면 헤어지곤 했다” 고 한다. 당시의 정치깡패는 폭력배라기보다는 완력을 쓰는 일회용 동원부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2공화국 때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현재는 야당의 고위 당직을 맡고 있는 전의원 ㅇ씨도 야당 의원들이 정치폭력배들과 관계를 맞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깡패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들(폭력배)은 경찰을 가장 무서워한다. 호루라기 한번만 불면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는 것이 그들의 생리다. 그러니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권 인사들과 공존공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ㅇ씨는 또 “야당 정치인들이 폭력배와 손을 잡고 있다 해도 평소 그 조직을 관리하려면 여러가지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것을 갖추기 힘들다. 우선 돈이 없다. 기존의 당 조직조차 유지하기 힘든 형편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저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형님 아우하는 사이일뿐”이라는 것이다.

 

야권은 일회적 동원에 그쳐

그는 또 최근에 나타난 정치폭력배의 성격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정희 시절에는 폭력집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골목대장 격으로 돈에 매수된 단순한 행동대원 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호국청년연홥의 이승완이나 서방파 김태촌 등은 한때 야당 중진이었던 ㅇ씨 수하에 있던 동네깡패 수준이었다. 조직폭력배는 6공화국에 들어오면서 창궐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전국적인 폭력조직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꼬집으면서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월계수회와 지방 조직폭력배와의 관계를 한 예로 제시했다.

여권이 우익단체 등 외곽조직을 활용한 전국 규모의 ‘가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야권은 주로 단순하고 일회적인 ‘동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거느리고 있는 ‘어깨’들은 ‘청년단체’나 ‘연구소’라는 이름의 합법적인 공개조직에 소속되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정가의 정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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