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꺼진 미국의 연말
  • 워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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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만사태 · 경기침체로 안팎으로 ‘주눅’… 대량해고 줄이어

예년과 다름없이 연말 대목을 맞아 미국의 백화점과 상가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휘황찬란하게 단장을 하고 손님을 부르고 있지만 시민들은 호락호락 돈주머니를 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텔레비전 화면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 나가 있는 미군병사들의 땀에 젖은 후줄근한 모습이 비치고 있는가 하면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실업수당을 받으려고 원호기관에 몰려가 줄을 서있는 우울한 모습이 보여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페르시아만 위기가 전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불안과 닥쳐온 불경기로 갈수록 살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요즘 미국인들은 안팎으로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언론기관들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나타난 미국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도 첫째가 이라크와의 전쟁이고 그 다음이 경기침체에 대한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는 우선 대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종업원을 해고하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자동차 메이커인 지엠社는 올해 안으로 2만5천명을 감원할 방침이라고 발표했고 맥도널 더글라스 항공기 제작회사는 1만7천명을, 전화통신회사인 AT&T는 3만3천5백명을, 체이스맨해턴은행은 5천명을 각각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1백50개 대회사들이 모두 30만명을 감원한다고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1월까지 미국의 실업률이 7%를 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항공회사들이 제 살 베어먹기식으로 경쟁으로 손님을 끌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하면 호텔들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평소의 3분의 1 값으로 방을 예약받고 있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류 백화점들도 올해에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제히 날짜를 앞당겨 할인판매를 한다고 광고를 했다.

지금까지 미국경제가 더디긴 하지만 계속 성장일로에 있다고 장담해온 부시 대통령도 얼마전 한 텔레비전 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처음으로 시인했다. 그는 미국이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긴 해도 6개월만 견디면 다시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고 전망했으나 “그러나 정도가 얼마나 심할지 또 얼마나 오래 계속될 것인지는 페르시아만 사태 이후 급등한 기름값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일각에는 부시대통령이 페르시아만 사태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는 반면 국내문제, 특히 재정적자나 경기침체 같은 국민생활과 직결된 일에는 너무 소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에서는 부시가 손을 쓰려고 해도 별로 탐탁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아예 비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돈에 매달려 그동안 적당히 위기를 넘겨왔지만 이젠 기댈래야 기댈 곳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경기침체의 암울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미국인들은 끝이 빨리 보이기를 갈망하고 있다. 2년 뒤 재선에 도전하게 될 부시는 더욱 마음이 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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