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운동경력 숨긴 게 죄인가
  • 신기남 (변호사) ()
  • 승인 1990.12.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자 징계해고 둘러싸고 고법과 대법원 판결 대립

회사에 입사할 때 이력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써넣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그 노동자는 실재하지도 않는 회사에서 근무한 것처럼 자기경력을 써 넣었던 것이다. 그는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근무성적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당했고 또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해 지명수배까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전의 근무경력을 사실대로 써낸다면 새 회사에서 그리로 조회를 하여 그의 성향을 알아볼 것이 뻔하므로(이것이 우리 노동현장의 현실이다) 이를 감추기 위해 편법을 쓴 것이다. 새 회사의 취업규칙에는 허위 이력서 제출이 징계해고 사유에 해당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회사는 노동운동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이 노동자를 시원스럽게 해고해버렸고, 노동자는 이에 대해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발하여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작년 10월에 선고되었던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회사가 근로자의 이력서에 학력?경력 등이 허위로 기재된 것을 해고사유로 삼기 위해서는 그것이 회사의 근로조건 체계를 어지럽혔다거나 적절한 노무배치를 저해하였다는 등 실질적으로 기업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어야만 한다. 그 근로자가 경력사원도 아닌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상 이력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 정도로는 실질적으로 기업질서를 문란케 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취업규칙상 징계해고 사유로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징계권의 정당한 범위를 넘은 것으로서 무효”라는 것이다.

 이 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 회사가 상고를 하여 재판이 계속된 끝에 1년만인 금년 10월30일 대법원의 새 판결이 선고되었다. 최종심의 대법원의 판결은 이렇다. “회사가 근로자를 고용할 때 학력이나 경력을 쓴 이력서를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근로자의 근로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기업질서 유지를 위해 근로자에 대한 전인격적 판단을 거쳐 고용 여부를 결정할 자료로 삼으려는 것이다. 만약 근로자가 경력을 사칭한 사실을 알았다면 회사는 그의 인격적 측면을 고려해서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 우리의 경험법칙상 명백하다. 따라서 경력을 허위로 제출한 것은 징계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력서의 허위기재를 해고사유로 볼 것이냐를 두고 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보였다. 고등법원은 기업질서에 현실적으로 문란을 가져왔느냐를 기준으로 삼은 반면, 대법원은 노동자에 대한 전인격적 판단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를 기준으로 삼았다. 금년의 이 사건 같이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의견이 엇갈리는 사례가 작년에도 있었다. 이 사건과 거의 유사한 경위(중학교 졸업자인 것처럼 위조된 졸업증명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당했음)로 인해 제기된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노동자의 경력이란 노동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속였다는 이유만으로 해고처분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으나, 대법원에서는 (1989년3월14일 선고) 역시 경력이나 학력은 노동자에 대한 전인격적 판단의 자료로 쓰이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보아 해고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함으로써 고등법원 판결을 깬 것이다.

 이미 비슷한 사건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 고등법원이 아랑곳하지 않고 종전의 견해를 고집하여 다시 대법원에 도전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누가 누구의 편이라는 식의 규정은 섣부르다. 이것은 법이론의 서로 다른 적용에 불과하다. 이 판결을 두고 노동현장의 치열한 분쟁 틈바구니에서 기업은 기업대로, 노동운동권은 운동권대로 각자에게 유리한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