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게 봐야 밝아지지 않을까
  • 박순철 편집부국장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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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에 쓰는 경제 에세이

로마인의 1월은 야누스신의 달이었다. 야누스는 출입구의 신이었고 모든 시작을 상징했다. 그는 두개의 다른 얼굴을 지녔다. 로마의 금화에 새겨진 야누스의 두 얼굴은 서로 반대방향을 응시했다. 한쪽의 얼굴은 과거를 되짚어보고 다른쪽의 얼굴은 미래를 내다보았던 것일까. 1월은 과거와 미래가 가장 강렬하게 맞부딪치는 달이다. 한해 12개월이 전개되어나갈 動因이 씨앗처럼 응축되어 기다린다. 씨앗에는 과거가 인과율의 지도로 그려져 있다. 새해가 내포한 희망과 불안은 묵은 해들이 쌓아놓은 수수께끼의 刻印이다.

 새해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경제활동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처해 있는 여건, 그리고 우리의 의지의 산물이다. 10만㎢가 좀 못되는 국토, 4천3백만명의 인구는 우리 경제를 규정하는 가장 큰 틀이다. 지난 한세대 동안 급속하게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경제의 국경’을 넓혀주는 역량지표이다. 여기에는 공장의 기계설비나 가로세로로 뻗어가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무서운 교육열과 성취동기가 바탕이 된 인적자본도 중요하다. 근로자와 기업인의 의욕, 관료조직의 능력, 능률적 제도, 모두 중요한 자원이며 또 제약이다.

 계량모형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제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의 기본적 여건과 축적된 역량은 큰 폭의 변동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후조건에 의존하는 단작경제에서는 흉년이 크게 들어 국민총생산(GNP)이 수십%씩 떨어지는 일도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개발과정에서 보인 성장률의 편차는 매우 작았다. 마이너스성장으로 떨어진 적도 없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6~12%의 성장권을 벗어나지 않았다.

 경제학은 이론적으로 정치하게 다듬어졌을 뿐 아니라 엄밀한 실증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 전문기관의 전망은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을 소숫점 아래까지 짚어내는 이론적?통계적 갑옷으로 무장되어 있다.

 많은 기관들이 새해 경제전망을 내놓았다. 대부부은 GNP의 실질 성장률을 6~7.5% 정도로 잡고 있다. 역사적인 실적치보다 다소 낮지만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관한 정확한 전망은 아직도 인간의 영역은 아니다. 어느 일본경제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전후 일본경제의 성장률 예측치는 전망을 내린 이후에 실제로 이루어진 실적치보다는 전망을 내릴 당시 이미 알 수 있었던 그 전해의 ‘성적’과 더욱 비슷하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예언자가 되는 위험보다는 과거 실적치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짚어보는 안전함을 택했던 것이다. 이것은 경제전망이 중요한 정치?경제적 요인들을 미리 가정해두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정과 관계가 있다.

 개방경제에서 전망은 더욱 큰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우리 경제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그 문은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남미의 어느 이름없던 소도시에서 시작된 다자간 국제경제협상이나 페르시아만의 긴장상태, 소련의 외무장관 사임이 우리 경제에 크고 작은 파문을 쉴새없이 밀고온다. 세계경기의 同調化시대는 우리처럼 GNP의 수출입의존도가 80%를 넘는 경제에 민감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이처럼 전문적인 전망에도 한계는 있다. 그러나 앞날을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꺼버릴 수 없는 욕구이다. 손바닥을 읽고, 점을 치고,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기업가든 소비자든 정부든 어떠한 경제주체도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전망없이 행동할 수는 없다. 투자나 소비, 또는 개발계획을 세울 때 가능한 한 불확실성의 안개를 걷어내며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해초 경제기획원과 주요 연구기관들은 경제성장률을 6~7%로 전망했다. 실적치는 9% 정도였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의 경우 전망치는 5~7%, 실적치는 9.5% 내외였다. 이것은 과학적 예측으로서는 낙제점을 받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전망이 없을 경우를 상상하면 그 유용성이 실감된다.

 지난 12월하순 정부는 ‘91년도 경제운용계획’을 내놓았다. 이 계획은 새해경제를 전망하면서 경제성장률 7%, 소비자물가상승률 8~9%, 격상수지적자 30억달러의 숫자를 제시했다. 이대로 된다면 한국경제의 새해 GNP는 2천6백80억달러에 달해 인구 8억인 인도의 경제규모를 육박하게 된다. 인구증가율을 1%라고 하면 평균적 으로 각 개인은 6%의 실질소득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 우울한 전망은 아니다.

 그러나 물가가 걱정이다. 수요?비용면의 모든 악재와 지방자치제선거, 부동산 투기재연의 위험들이 지뢰밭처럼 깔려 있다. 제조업 활성화의 명분으로 물가안정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 정책당국에의 불신은 또하나의 뇌관이다.

 물가는 ‘경제의 체온계’이다. 경제가 앓기 시작하면 물가의 온도도 뜨거워진다. 주요 예측기관들은 해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정부전망보다 높게 9% 이상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 가운데는 13%의 전망치를 내놓은 곳도 있다. 물가의 열병은 서민들에게 특히 괴롭다. 경제학 교과서는 소득이나 富의 이전효과를 말하지만 서민들은 그저 ‘체감물가’라고 그 身熱을 이야기한다.

 경제당국의 새해 계획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되살리기에 큰 힘을 쏟는다.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 산업인력수급, 공장용지 보급, 기술개발, 설비투자촉진의 온갖 약을 투여할 방침이다. 제조업은 경제의 기둥이다. 때이르게 시들려고 하는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로자의 ‘일하려는 마음’과 기업인의 ‘경제하려는 의욕’의 소생이라는 묵직한 근본과제가 있다.

 야누스의 한쪽 얼굴처럼 우리는 미래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그 눈길은 어느 地平 위에 떨어지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보다도 활력에 차있지만 조급하고 좁은 세계에 사는지도 모른다. 한해보다 긴 세월에의 관심, 나의 울타리보다 넓은 민족과 인류에의 관심으로 우리의 눈길이 옮아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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