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업계, 불공정 ‘짬짜미’ 의혹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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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정부 입찰 유찰돼 ‥‥ 제살깎기 경쟁 피하고 가격 인상 노린 ‘담합’ 가능성


 

 떡줄 사람은 하나뿐인데 그 떡을 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이 여럿이면 경쟁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입찰제도는 이같은 경쟁을 극대화한다. 경쟁이 무한으로 치달을 때 기업은 제살깎기도 불사한다. 그러나 덤핑경쟁이 심화되면 같이 망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입찰 전에 경쟁업체끼리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지난 1일 정부는 내년에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공급할 행정전산망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 입찰을 실시했다. 수량은 컴퓨터가 1만5천대, 프린터가 7천5백대로 약 5 백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92년 개인용 컴퓨터 시장 규모 6천3백억원에 견주어볼 때 5백억원은 큰 떡이다. 게다가 이번에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하면 내년 장사가 쉬워질 수 있으므로 컴퓨터업계는 입찰에 큰 관심을 쏟아왔다. 이번 입찰에 참가한 업체는 컴퓨터의 경우 XT 기종에 3개, AT기중에 7개, 386기종에 6개였다. 프린터의 경우 도트프린터에 6개, 레이저 빔프린터에 10개 업체가 참가했다. 

89년 응찰 땐 나눠먹기 모임 가져

 국산 컴퓨터의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길이 막히고 내수시장마저 침체돼 있는 가운데 정부 물량이 The아져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다.  싼 가격을 써넣는 업체에게 떡이 돌아가는 입찰방식이기 때문에 덤핑 부작용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낙찰된 것은 레이저빔 프린터 4천5백대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유찰됐다. 이는 입찰업체가 제시한 공급가격과 정부 예정가 사이의 차이가 켰기 때문이지만, 가격을 올리기 위한 담합이 있었던 것 아니냐 하는 의혹을 낳았다. 

 컴퓨터업계는 과당경쟁의 폐해를 체험했기 때문에 덤핑 행위를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90년 컴퓨터업계를 온통 들쑤셔놓은 교육용 컴퓨터 입찰파동은 과당경쟁이 결국 자기 목을 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한국통신공사는 국민학교용 컴퓨터 가격을 44만원 수준으로 책정하고 애프터서비스 기간도 3년으로 길게 잡았다. 이에 컴퓨터업계 에서는 가장 싼 모델의 소비자가격이 63만원 인 점을 감안할 매 44만원이란 가격은 너무 낮은 데다가 애프터서비스 기간을 길게 잡는 것은 원가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로부터 입찰자격을 받은 18개 업체는 1차 응찰에 불참해 유찰시켰다. 

 그러나 2차 입찰에서 삼정전자와 로얄이 38만원이란 낮은 가격으로 정부 물량을 독차지했다. 그러자 나머지 16개 업체가 일제히 '삼성과 로얄의 배신행위'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이는 스스로 담합을 인정한 꼴이었다. 컴퓨터업계의 이전투구가 계속되자 공정거래위 원회는 18개 업체 모두에게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사과광고를 내도록 조처했다. 경쟁은 중고등학교용 컴퓨터 입찰로 이어겼다. 대우 전자와 갑일전자는 XT 컴퓨터의 경우 각각 18만8천4백원과 9만9천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써내 또 한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이같은 경쟁은 가격체계를 허물어뜨리고 컴퓨터업계를 적자의 늪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담합이라는 편법은 제살깎기 경쟁을 피하 고 낙찰가격을 올리기 위해 동원된다. 지난 89년 행정전산망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 입찰 결과도 업체 간의 담합 사실을 말해준다. 현대전자 삼보컴퓨터 대우통신 삼성전자 금성사 등 12개 업체는 전국 15개 시 ·도를 골고루 분할했다. 가령 어느 회사가 어느 지역을 먹는다는 식으로 약속해놓고 다른 회사는 들러리로 참여하는 것이다 컴퓨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88년 12월부터 경쟁업체 간의 모임을 갖고 지역과 가격을 미리 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행정전산망용 컴퓨터 ·프린터 입찰에서 유일하게 낙찰된 레이저빔프린터의 경우 신도리코(6백50대)와 양재시스템(2백50대)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업체가 약속이라도 한듯이 4백50대씩 나뒤 가졌다. 

 정부가 입찰을 통해 싸게 사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덤핑이나 담합과 같은 불공정거래를 유도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경쟁이 치열할 때는 입찰을 앞두고 “제조원 가의 70%를 써넣어야 따낼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 그러나 손해를 보면서 팔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면 수량과 가격을 미리 약속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컴퓨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무조건 싼 가격만을 고집할 경우 기업들은 어떻게든 부품을 싸게 구입할 궁리만 하게 돼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득될 것이 없다”는 말로 입찰 방식의 허점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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