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명은 거의 다 우리말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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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전에 고향 주소가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 신풍리'였던 사람이 지금 편지를 보내려면 주소를 '양강도 김형직군 풍산읍'으로 바꿔 써야 한다. 분단 이후 북한 지명은 엄청나게 바뀌어 옛 주소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광복 당시 6도 9시 89군이었던 행정구역도 9도 1특별시 2직할시 22시 149군 37구역으로 나뉘었다. 

 지금까지 모두 50차례 개편된 북한 행정구역의 특징은 3단 체계에 있다. 도-군-면-리의 4단 체계에서 도-군-리 · 동 · 노동자구의 3단체계로 바뀐 것이다. 면을 없애거나 통폐합하여 군을 대폭 증설했고 노동자구라는 특수 행정구역을 설치했다. '공업의 합리적 배치' 를 위해 1952년 12월에 처음 만든 노동자구는 노동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주요 공업지대로 북한의 최말단 행정단위이다. 

 북한 행정지명정책은 토박이 이름 살려쓰기가 최우선이다. 또 3천8백개에 달하는 행정지명 가운데 우리말 이름이 서울밖에 없는 남한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의 행정지명은 대개가 우리말이다. 

 김일성은 1966년 5월14일 다음과 같은 연설을 통해 행권지명정책을 확정했다.

 “고유어를 적극 찾아 고장 이름을 우리말로 부르는 것이 한자말보다 더 고상합니다.  가령 붉은바위동을 赤崙洞, 돌다리골을 石橋洞이라고 한자식 이름으로 부르면 아주 초라하지요. 현재 한자말과 고유어 두개로 부르는 고장이 적지 않습니다. 고유어로 된 고장 이름을 조사하여 써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확정된 것이 평양의 세거리동 긴마을들 련못동 옷매동 옻고래동 독골동 긴골리 세우물리, 함흥의 금빛동 은빛동과 같은 토박이 이름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권력 전면에 나선  80년 이 후로는 김일성과 그의 인척을 우상화한 지명이 등장했다. 81년 8월 양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으로, 양강도 후창군을 김일성의 아버지 이름을 딴 김형직군으로, 풍산군을 김일성의 삼촌 이름인 김형권군으로 바꾸었다. 그밖에 충성동 은혜리 개혁동 영웅리 등 의식화를 나타내는 고장 이름도 1백여개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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