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걸음’으로 세계경기 회복
  • 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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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세계경제 전망/ “3% 성장 가능”…미국경제 회복·UR타결이 최대 변수


 

 냉전이 종식되면서 묘하게도 세계에는 불황이 닥쳐왔다. 전후 가장 심각한 세계적 불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선진국이 경기침체의 수렁 속에서 2년이 넘도록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냉전은 정치적으로는 평화를 가져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또 다른 ‘전쟁’을 가져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뭉쳤던 냉전시대와 달리, 선진국들의 경제이기주의는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세계경제의 질서와 환경이 급속히 변하는 가운데 앞을 내다보기는 더욱 어렵다. 지난 2년간 제대로 경제전망을 한 경제예측기관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선진국의 경제통계와 전망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전망치를 빈번하게 수정해야만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난 6월 93년도 선진국 경제성장률을 3%로 예측했으나, 불과 4개월 후 2.1%로 하향 조정해야만 했다. 그만큼 세계 경기침체는 전례가 없는 이상기류 성격을 띠고 있다.

선진국 물가 안정…경제성장 낙관

 지난 40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세계경제는 91년에 전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내년 봄에 집계될 92년도 성장률은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선진국의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사회주의 경제권 국가의 마이너스성장이 세계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면 다소 둔화하기는 했지만 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6%가 넘는 고도성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이끌기에 아시아지역의 경제규모는 아직 그 비중이 작다.

 93년을 보는 전망에는 비관론도 있고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지배적인 전망은 올 연말을 고비로 세계경제는 완만한 회복세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유력한 경제예측기관인 와튼계량경제연구소(WEFA)는 다같이 93년도 세계경제 성장률은 3.1%가 되리라고 비교적 낙관한다. 선진국의 물가가 안정되고 있다는 것이 낙관적인 전망의 근거다. 안정된 물가를 기반으로 각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 수 있다는 논리다.

 선진국 경기가 침체에 빠져 있는 와중에도 개발도상국은 작년에 3.2% 성장했고, 올해 성장률은 4.4%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93년에도 개발도상국은 평균 5~6%가 넘는 성장률을 유지하리라고 전문기관들은 본다. 개발도상국의 이런 성장추세에 힘입어서라도 세계경제가 3%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하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선진국과 아시아 개발도상국은 80년대에 최고의 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이 80년대를 중남미 국가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중남미 국가들은 △ 국영기업의 민영화 △ 물가상승의 억제 △외국투자 유치로 대변되는 개혁에 성공하여 90년대 들어 놀라운 성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92년에 3.0%, 93년에 3.8%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와튼계량경제연구소는 전망했다.

 세계경제는 회복된다고 해도 지극히 완만한 회복이 예상된다. 아직도 경제회복을 위협하는 지뢰가 곳곳에 깔려 있다.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유엔의 유럽경제위원회(ECE)는 내년에도 세계경제는 회복국면으로 접어들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했다. 유럽경제위원회는 지난 12월 6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이 좀더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고, 옛 공산국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년에 2회씩 경제보고서를 발간하는 이 위원회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가 제시한 경기부양책은 정부의 재정적자로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한다. 유럽의 경우에는 긴축재정의 실패로 유럽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초 기대치인 2.7%의 절반 수준인 1.5%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유럽통합이 많은 문제점을 제기함에 따라 기업의 투자의욕이 감소되고 있다. 독립국가연합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세계경제에 큰 부담을 주리라 예상한다.

 유럽경제위원회는 세계경제가 내년에 완만히 회복된다해도 선진국의 실업률은 급속히(quite sharply)올라갈 것으로 본다. 주요 선진국은 현재 10%를 웃도는 높은 실업률을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영국은 10.1%, 프랑스는 10.4%, 미국은 7.4%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지난 11월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80%가 현재의 경제상황을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혹독한 불경기로 꼽았다.

 그러나 낙관적인 예측을 뒷받침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미국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 조짐에 있다. 비록 미국의 경제력은 10~20년 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미국경제는 세계국민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국가 경제권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1월 말 “미국경제는 3/4분기에 당초 예상보다 훨씬 높은 3.7%의 획기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유렵경제위원회 보고서는 미국의 3/4분기 경제성장률이 집계되기 이전에 작성되었다). 미국 상무부는 수개월후의 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경기선행지수도 0.4% 상승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더욱이 미국 경기회복의 열쇠를 쥔 소비자의 동향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경기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신뢰도를 나타내는 소비자 신뢰자수는 11월 들어 11포인트나 급상승했다.

 미국의 경기회복 조짐에 고무된 장 클로드파예 경제협력개발기구 사무총장은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이 여지가 없다. 미국의 경제회복이 세계경제의 회복을 선도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제교역 증가·유가 안정될 듯

 국제무역의 동향도 세계경제의 향방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90년 3.9%에서 지난해 2.3%로 감소한 국제교역 증가율은 올해에는 4~5%에 이르고, 내년에는 6~7%까지 증가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은 내다본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된다는 전제 아래에서 가능하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될 경우 연간 1천6백억 달러의 세계교역 증대효과가 나타난다.

 93년 3월1일이 최종시한인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만약 결렬되면, 세계경제는 좀더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모색기에 자유무역질서가 붕괴하면 세계경제의 블록화와 각국의 경제이기주의를 심화시킬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결렬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세계경제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제금리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리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작년과 올해에 이어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국가 대부분에서는 금리가 극히 낮은 반면 독일은 높은 금리를 고수하는, 선진국 사이의 ‘금리 양극화’ 현상이다. 이는 경기부양을 위해 선진국 대부분이 금리를 낮춘 반면, 통일비용으로 재정적자가 늘어난 독일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극도의 금융긴축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3년 하반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가 다시 상승하고, 독일의 금리를 하락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점친다.

 국제통화기금은 선진국의 금리는 내년에 소폭 상승할 것이나, 경제회복에 큰 제약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낙관한다. 세계경제 성장의 주요 변수 중 하나인 국제유가도 돌발적인 국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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