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꿈나무 ‘의문사 비밀’ 풀릴까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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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최현규군 변사 사건 재수사 나서…유족들 “자살 아닌 타살” 주장
 
차두리를 좋아하는 한 축구 선수가 있었다. 경기도 시흥시에 살던 현규는 초등학교 시절 빼어난 기량을 선보여 전남 강진의 한 중학교 축구부에 스카우트되었다. 현규가 중학교 1학년이던 2003년 8월21일 제주도에 시합을 하러 갔을 때 일이다. 그날 밤 11시가 넘은 시각, 현규가 숙소에서 사라졌다. 현규와 함께 방을 썼던 친구는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현규를 데리고 나간 것 같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사라진 현규는 1시간여 지난 22일 0시50분께 숙소 뒤편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 현규는 차두리 선수의 유니폼을 입은 채 편안히 누워 있었다. 죽어 있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004년 2월 경찰은 “순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몸을 피하다가 추락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사건을 검찰로 올려 보냈다. 하지만 검찰에서 이 사건 수사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고 3년 동안 담당 검사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사후 3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규군 부모는 아직도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최상웅씨는 “경찰이 자살로 결론을 내린 뒤 수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은 자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축구 꿈나무로 주위의 기대를 받던 현규는 죽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이 사건을 자살이나 단순 사고사로 보기에는 풀리지 않는 의혹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첫째 경찰은 ‘현규가 순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몸을 피하다가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판단하지만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규의 키(1백69cm)가 큰 편이었지만 난간의 높이가 1백14cm로 꽤 높았다. 경찰 주장대로 10cm 높이의 블록이 하나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수사 초기에 경찰은 “옥상 방호벽을 양 손으로 짚고 올라선 다음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분석했다.

 
아버지 최씨는 옥상에서 현규가 떨어진 콘크리트 바닥까지의 거리는 17.6m. 현규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호텔 1층 사무실에서 양 아무개씨가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현규가 떨어진 부근과 직선으로는 불과 4~5m 거리였다. 호텔 투숙객 중 누구도 현규의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었다.

둘째, 목과 가슴에 남은 멍이다. 부검의는 목에 남은 멍 자국을 “멱살을 잡거나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생겼지만 추락과는 별개의 손상이다”라고 설명했다. 가슴에 든 멍에 대해 부검의는 “병원에서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멍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버지 최씨는 “병원에 확인해본 결과 간호사가 사진을 찍고 난 이후에 심폐소생술을 했다.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늑골이 부러질 수 있지만 멍이 드는 일은 없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현규는 사망 전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했다. 이는 경찰도 동의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구타에 대한 경찰의 초기 수사는 미흡했다. 유력 용의자와 동료 선수 중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것이다. 담당 경찰은 “축구가 워낙 격렬한 운동이어서 운동 과정에서 몸에 멍이 남을 가능성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유족측 “경찰, 짜맞추기 수사 했었다”

셋째, 6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시체의 외상이 전혀 없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부러진 양 팔 이외에 머리 등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부러진 팔도 구타로 인한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 쓰러져 있는 현규를 목격해 경찰에 신고한 김 아무개씨는 “술 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술 냄새가 나지 않아 몸을 흔들어 깨웠으나 이미 죽어 있었다.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부검 직후 부검의는 “외상은 거의 없으나 내부 척추가 모두 골절되었고, 심장·폐·간·비장 등 거의 모든 내장이 파열되어 있다. 엉덩이부터 땅에 떨어지고 등 부위가 땅에 닿은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검의가 척추가 골절되었다고 한 것은 부검의의 실수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수사 결과가 부검의의 소견과 부합한다며 엑스레이 판독 결과를 첨부해 사건을 종결했다. 2004년 2월 경찰이 제주의 한 방사선과 임 아무개 원장에게 의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측 요골·척골 골절, 좌측 상완골 골절, 좌측 폐에 기흉 및 혈흔이 있다. 복강 내 출혈 소견이 있고 요추 1번의 좌·우 횡행돌기, 요추 2번의 우측 횡행돌기, 요추 3번의 좌측 횡행돌기의 골절이 강력히 의심된다.’

하지만 현규의 엑스레이를 보여주자 전문가들은 “엑스레이 필름에서 척추의 골절을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을 임원장에게 묻자, 임원장은 “당시 경찰이 6층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척추 부분이 골절될 수 있느냐고 유도 질문을 해서 ‘척추 골절이 의심된다’라고 적었다.

나중에 현규 아버지가 보여준 필름을 볼 때는 골절을 의심할 수 없는 정상 상태여서 경찰이 보인 필름과 아버지가 가져온 필름이 다른 게 아닌가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최상웅씨는 “의사가 터무니없는 실수를 연달아 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경찰이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넷째, 현규 발에 묻어 있는 페인트 자국이다. 현규는 신발을 벗어 놓은 채 밖으로 나갔다. 방과 복도 그리고 옥상 바닥에는 페인트가 묻을 만한 곳이 없었다. 호텔 지하 주차장 옆에 칠하다 만 페인트 통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현규가 지하 주차장에서 구타당한 뒤 옥상에서 떨어진 것처럼 위장되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유족 측이 제기하는 짜맞추기 수사와 은폐 의혹에 대해 경찰은 전면 부정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김 아무개 경위는 “학생들에게서 답이 나오기 마련인데 열심히 조사해도 나오는 게 없었다. 유족들이 추락사 자체마저 의심하고 수사를 불신하는 통에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최상웅씨는 “현규의 사진 가운데 먼지와 페인트가 묻은 사진을 경찰은 검찰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해서 믿을 수 없다. 넉 달을 제주도에 살며 증거를 모아서 검사에게 주었더니 검사는 ‘내가 보면 아는가’라고 화를 냈다”라고 말했다.

사인 의혹에다 경찰의 은폐 의혹까지 불거진 탓인지 제주경찰청은 올해 초 최현규군 사망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제주지방청은 강력계 직원 네 명으로 구성된 전담반을 꾸려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송양화 수사과장은 “자살로 단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철저히 수사하고 있다. 설사 경찰의 잘못이 드러나더라도 끝까지 파헤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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