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전당 ’ 한국 대학 더 비틀거릴 시간 없다
  • 이흥환 차장대우 ()
  • 승인 199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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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난조 · 재정 빈곤으로 중병 걸린 채 몸집만 비대 … 살길은 ‘특화 ’전략



 서울의 명문 사학으로 손꼽히는 한 대학교의 중견 교수 몇몇이 한자리에 모여 한담하던 중에 이런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우리 대학에 이름 없는 학과를 하나쯤 만들어보면 어떨까.  무슨무슨과라고 이름 붙이지 말고 학생들이 자유스럽게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자기 돈 가지고 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하는데 나쁠 게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하면 뭔가 좀 될 것 같은데.”

 그날 모임의 주된 화제는 대학 구조의 왜곡된 현상, 특히 학과가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대학이 학과 통폐합을 대학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설정해 놓기는 했지만, 일부 교수들의 이기주의와, 학과를 증설해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는 대학 당국의 ‘머리 수 늘리기 ’ 정책 때문에 통폐합은커녕 학과의 가지뻗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 자리에 모인 교수들은 ‘이름 없는 학과 ’가 실현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일그러진 대학 구조를 바로잡을 묘안을 찾다 못해 생각해낸 고육지책인 셈이다.

머리 수 늘리기 급급, 너도나도 공과 대학
 학과 수 늘리기 관행은 아예 대학 생존의 필수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한 사립 대학의 기획처장은 대학 내의 ‘칸막이 ’현상은 전국적인 병폐라고 지적한다.  “인접 분야의 유사 학과가 많은 것을 이웃집에 비유하는데, 따지고 보면 이웃집이 아니라 큰집의 방 한칸씩을 서로 차지하고 앉아 딴 살림을 꾸려온 셈이다.  교수들이 자기 분야의 필수 과목을 많이 늘려 놓아 학생들이 다른 학과 과목은 수강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 해 버렸다.”  기초 과목만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육철학을 전공하는 ㄱ교수는 ‘깡통 찬 해외 박사 ’들을 양산해낸 것도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교수들의 힘겨루기 탓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교수들은 자기 ‘꼬붕 ’이 많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 유학가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전공 분야만 공부하라고 권유한다.  유학 간 제자는 인접 분야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지만, 미지의 분야에 대한 두려움과 교수의 권유에 못 이겨 결국 지도 교수가 지정해준 분야를 전공하게 된다.  단순재생산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 돌아오면 전공들이 겹쳐 설 땅이 없다.  깡통을 차는 셈이다.  자연과학 분야는 전공 폭이 더 좁다.  심각한 국력 낭비다.”

 학과 증설은 이부 교수뿐만 아니라 대학 당국의 생존 전략과 맞물려 증폭되어 왔다.  학생 수 늘리기는 곧 학과 증설과 직결되고, 학과 증설의 종착역은 모든 대학의 ‘종합대학화 ’이다.  덩지가 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과 대학 간판을 걸고 출발한 대학이든, 신학 대학이든 예외 없이 4년제 종합 대학이 되어버리는 기현상이 속출했다.  ㄱ대학교의 기획처장은 “모든 대학이 종합 대학 병에 걸려 골골하다가 지금 똥을 싸고 있지 않느냐 ”라고까지 말한다.  멀쩡하던 대학들이 돈이 많이 드는 자연과학대학만 맡고 나면 쩔쩔매다 결국 속빈 강정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金鍾一교수(건국대 · 사회복지학과)는 덩지가 커야 살아남는 풍토 때문에 표준화한 규격품을 싼 값에 대량으로 생산 · 판매하는 포드주의 방식이 활개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대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교육 관료든 전문가든 이런 진단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대학 교육 현장의 형편을 너무 잘 아고 있기 때문이다.  사학 위주의 교육 구조, 말뿐인 산학 협동, 지방대학이라는 말이 아무거리낌 없이 통용되는 극심한 지역 차별주의, 종합 대학을 향한 끝없는 욕망, 관료 사회를 뺨치는 대학 행정의 권위주의와 행정편의주의, 허울뿐인 대학 평가, 먼지만 풀썩거리는 사학의 안주머니 등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우리만큼 한국 대학은 중병에 걸려 있다.

 고려대학교 기획처장 李基秀 교수는 지난 11월4일이 학교를 방문한 일본 동경 대학 총장과 사학의 재정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본 결과 한국의 대학 구조가 심각하게 비틀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고 말한다.  “일본은 사학 예산의 30%를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되는가?  3%뿐이다.  또 일본 대학원의 경우 이공계의   90%가 국립대학에 설치되어 있고 사립은 10%에 불과하다.  사립대학의 20%만이 공과 대학을 가지고 있다.”

교육부 · 대학 책임 떠넘기기 끝없는 공방
 한국 대학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75%에 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립대학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공과 대학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돈이 없어 쩔쩔매는 사학이 공과 대학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이처장은 교육부 관계자를 만나 정부의 사학 재정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홧김에 “이공 대학의 기자재 정도는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이공 대학은 전부 국립대가 가지고 가  라 ”고 말했다고 한다.

 대학 관계자들의 이런 주장이 교육 관료들과 마주치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식의 상대방 비난으로 치닫게 된다.  대학이 능력은 생각지 않고 무작정 몸피만 늘렸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대학을 통제하려는 교육 당구기 그렇게 만들었다라는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책임 떠넘기기의 대립과 악순환은 대학 평가 작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학 평가라는 것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교육부에 잘못 보이면 지원이 끊긴다. 지원 끊기면 망한다.  평가?  평판?  대학은 그런 것 신경 쓸 처지가 못 된다.  문제는 돈줄이 끊기느냐 아니냐이다.  평가받으라면 받을 뿐이다.”(ㄱ교수)

 “대학 종합 평가의 목표는 명확하다.  수준에 들면 대학에 자율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에게 인정받으려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ㅇ교수)

 “대학 평가?  우스운 장난이다.  대학끼리 서로 경쟁시켜 놓고 잘난 대학에는 나중에 떡고물을 주겠다는 것인데, 사실 줄 떡고물도 없다.  학교를 서열화해 등급을 매기는 것은 배급표를 나누어주겠다는 발상이다.”(ㅁ교수)

 평가 작업에 대한 또 한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사실이라면 대학 교육의 현실은 아예 시궁창이 되어버린다.  “교육부 당국이 전국 총 · 학장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교협)을 앞장세워 평가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  다분히 교육 외적인 발상이다.  과연 대교협이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는가.  대학을 통제하는 교육 관료와 부실 대학을 위한 것이다.  대학마다 규모와 성격이 다른데 총 · 학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느 대학 총장이든 대교협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문했다.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수준과 격이 비슷한 대학들끼리 별도로 ‘리그 ’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대학 도서관의 장서 수와 시설 기자재, 교수 1인당 학생 수 같은 기준으로 대학을 서열화 한다는 것은 대학의 정신이 아니라 가축 도살장의 논리이다.  노동집약적인 사회에서는 질보다 양이 우선이기 때문에 서열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남과는 뭔가가 달라야 살아남는 시대 ”라고 지적한다.

 결국 대학이 살 길은 차별화 · 특화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김종일 교수는 “기존 대학은 특화가 힘들다 ”라고 지적한다.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자세 때문이다.  또 특화하겠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과연 어떤 분야를 어떻게 특화할 것인, 또 어떤 특화 전략을 쓸 것인지 판단하기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화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71년 프랑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아주공업초급대학으로 출발해 74년 공과 대학으로 승격한 아주공대의 경우 대학 사회에서 공대로서 위치를 굳히는가 싶었지만 81년 종합 대학으로 격을 높여 지금은 공과 · 경영 · 인문 ·  사회과학 · 자연과학 · 의과 등 6개 단과 대학에 33개 학과를 거느린 종합 대학이 되어 있다.

“인문 · 사회과학이 공학에 얹혀사는 꼴 ”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에 따른 국가 차원의 산업 인력 수급 계획은 각 대학의 마구잡이 공과 대학 증설이라는 결과로 나타나 대학의 병을 깊게 만들었다.  정부의 재정 지원도 공과 대학에 집중된 것은 물론이다.  명분은 공과대의 특화였다.

 ㅇ대학교 공과 대학의 한 교수는 “돈이 없어 건물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판국에, 돈 없이는 유지하기 힘든 공과 대학만 자꾸 만들어댔다 ”라고 지적한다.  김종일 교수는 결국 공대 남발로 “극장에서 좀더 화면을 잘 보겠다고 한두 명이 일어나다가 나중에는 관객이 전부 일어서서 영화를 보는 꼴이 되었다 ”면서, 전체 효용이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것을 “바로 공학(工學) 중심적 사고 탓 ”이라고 지적   한다.

 그는 또 “대학은 기능이 아니라 잠재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어떤 분야를 전공했든 직업 선택에는 별 차이가 없다.  대학이 산업 인력 양성소가 되다 보니 인문 · 사회 과학은 얹혀사는 꼴이 됐다.  말만 많고 쓸데없는 분야라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라고 말한다.

학습만 있고 교육은 없다
 국책 대학이라는 이름도 공과 대학 중심의 국가 지원책이 만들어 낸 말이다.  지방에서는 충북대 충남대 전남대 전북대 창원대 부산대 경북대 등 국립대학이 국책 대학으로 지정되면서 지원 사업비를 타냈다.  지방의 사학으로는 영남대학이 유일하게 국책 대학으로 지정되어 지원을 받고, 2백50억원의 사업비 지원을 받을 부산대의 경우 올해 1차분으로 50억원을 지원받았다.  물론 ‘국책 ’이란 공과 대학 지원을 말하는 것이다.

 金仁會 교수(연세대 · 교육학과)는 ‘인류학 ’과  ‘배낭 여행 ’의 상징적인 차이점을 지적한다.  “한국의 근대 백년 교육사는 어떻게 살아 남을까 하는 방법론(how to)만 가르쳐 왔다.  나를 알고, 남을 알고, 같이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의심하거나 회의해 보지 않았다.  대학에서 기승을 부리는 의학 · 공학 · 어문학 등이 실용 위주 분야라면 한국 대학의 최대 취약 분야인 인류학 · 고고학 · 민속학 · 종교학은 남과 같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일본을 미워만 했지 알지는 못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긴 하지만 정작 미국학을 전공한 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문  학 · 독문학만 있고 영국학이나 독일학은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고 같이 살 줄도 몰랐다.  이제야 남을 알려고 배낭 여행을 떠나는 수준에 도달했다.  남을 알고자 자기 돈 들이는 투자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김교수는 또 “우리 대학생들은 학급 안에서만 길러진다.  지금의 50대는 교육다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학급 안에서 훈련된 것이 아니다.  노천 수업의 효과가 더 컸다.  이른바 무식한 부모들이 지금보다 더 훌륭한 교육을 시킨 셈이다.  지금은 학습과 훈련만 있을 뿐 교육은 없다.”

 김교수의 교육부재론은 교육비교불가론으로 이어진다.  “학습력은 경쟁이 되고 비교가 되겠지만 총체적인 교육은 경쟁이나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학습은 교육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며, 교육은 삶이고 인생 자체이다.  인생을 어떻게 경쟁시키고 비교한단 말인가?”

 어문 계열 소속 학과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도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영어영문학  과 · 중어중문학과 같은 것을 영어과 · 중국어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모집 인원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지적도 있다.  영문과 · 중문과 식의 구분보다는 지역 연구가 상위 개념으로 자리잡고, 해당 지역의 역사 · 사회 · 어학 등이 지역 연구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학 고질병 ‘재정난 ’··· 국립대도 동병상련
 대학 총장들이 참석한 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金淑喜 교육부장관은 이런 말은 한 적이 있다.  “한국에 세계적인 기술이 한 가지 있다.  대학 지원자 70만명을 한 수간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렬 종대로 세워놓는 정밀기술이다.  그 서열에 1.5등이나 2.5등이 생긴다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다.  정화하게 1등에서부터 70만등까지 석차를 매긴다.”  교육 관료를 대표하는 교육부장관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의 현주소이다.  교육 관료도 학자도 한국 대학이 기형아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한때 고등하교에는 배치고사라는 것이 있었다.  시험 성적 결과를 보고 미리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이었다.  한 교수는 “학생들을 도대체 어디에 배치한다는 말이냐. 학생을 우롱해도 정도껏 해야지 교육 관료나 전문가들이 말이 안 되는 발상만 하고 있었다 ”라고 지적한다.  예비고사라는 이름의 국가고사도 마찬가지였다.

  그 예비고사는 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치되었고, 내신 성적이 대학 입시의 평가 기준으로 등장했으며, 일부 대학은 본고사라는 잣대도 마련했다.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국가 고사 하나만으로 70만명을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국가와 기업 모두 돈주머니 풀어야 한다 ”
 언발에 오줌누는 격이긴 하지만 미미한 형태로나마 ‘산학 협동 ’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대학의 숨통을 트게 하는 현상이다.  빈사 상태로 비틀거리는 대학을 기업이 부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대학과 기업은 인력과 돈이라는 두 가지 자기 상품을 놓고 줄다리기해 왔다.  기업은 대학에 반품도 할 수 없는 ‘불량품 ’을 그만 생산하라고 다그쳤다.  돈줄을 거어 쥔 기업쪽의 일방적인 권리 행사에 대학은 묵묵부답 벙어리 냉가슴 앓듯 제 가슴만 쥐어뜯었다.  대학만의 잘못일까?

한양대 기획조정처장 김필수 교수의 항변은 한국 사학의 한결같은 아우성 같이 들린다.  “기업이 대학에 해준 것이 무엇인가?  반대 급부라고는 없었다.  사람 하나 값이 얼마나 비싼데 공짜로 갖다 쓰고는 이제 와서 반품도 안되는 불량품이니 뭐니 말하고 있다.  그럴 자격이 있는가?  외국을 봐라.  기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학교에 퍼붓고 있는가.”

 김교수는 정부에도 책임을 묻는다.  “국가도 사학에 투자해야 한다.  국립대학은 정부가 백% 지원해주지만 사립대학은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으로만 지탱할 수밖에 없다.  인력은 국가와 기업이 가져가면서 책임 있는 지원은 하지 않고 규제만 한다.”

 국립대학도 허리를 펴고 살 형편은 못된다.  부산대학교 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국립대학이 정부로부터 받는 예산의 80%는 교직원 봉급으로 나간다.  나머지 20% 가지고는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라고 말한다.  국립대학이 발전기금을 모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대는 지난 10월13일 현재 85억원을 모았다.  기자재나 시설물 평가액이 아닌 현금으로는 꽤 많은 액수다.  교내에는 저금통장식 기금함을 설치했고, 총장은 동문 · 학부모 · 기업을 직접 찾아다녔다.  기획실 관계자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경우 발전기금 모금 담당자는 2백명이다.  부산대는 기획실에 단 1명만 있  다 ”라고 말한다.

포항공대는 한국 대학 미래 가늠할 시금석
 포항제철이 설립한 포항공과대학은 한국 대학 구조의 전환점을 시사하는 대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족한 재정과 우수한 학생의 지원 기피 등 사학의 고질병을 극복한 포항공대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다.  공학 계열의 경우 시설이나 교수진 · 학생 질에서 서울대를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포항공대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한 교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주의 때문에 포항공대의 장래도 장담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포항고대와 한국과학기술원의 학부가 과학고등학교 재학생들을 초청해 학교 설명회를 개최하곤 한다.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은 그 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정작 입시 때가 되면 학생들 대부분이 서울대를 선택한다.  포항공대가 대학 사회에서 제몫을 할 것인지는 20년을 기다려 봐야 알 수 있다.” 포항공대 출신이 사회에 진출해 중견으로 자리잡고 학문적 생산 능력을 갖추려면 교육에서의 한 세대, 즉 최소한 20년이 걸린다.  그때 가서 포항공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항공대는 90년 2월에 제1회 석사 80명을 사회에 내보냈고, 91년에는 학사 1백39명을 처음 배출했다.

“왜 말끝마다 지방 대학이냐 ”
 지방에 있는 한 4년제 종합대학의 총장은 여러 대학 총장들이 모인 한 세미나에서 자기 발언 차례가 오자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가만 듣고 있자니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여기는 최고지성이라는 분들이 모인 자리다.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말끝마다 꼭 ‘지방 대학 ’이라고 하느냐?  지방 대학이 어떻다는 거냐?  도둑질을 한 범죄단체냐, 뭐냐? ”

 서울 중심주의는 대학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적요된다.  한 교수는 “포항공대는 일종의 귀족 학교다.  그런데도 지방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방 대학으로 분류된다 ”라고 말한다.

 특정 지역 대학과 서울의 대학들 사이에는 구조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근거 없는 차별만 있을 뿐이다.  지역 특성을 살리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경주 지역에 고고학 분야에서 월등한 대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산간 지대인 강원도에 임학 위주의 대학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해양 · 수산 계열의 학교가 반도 국가의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을 뿐이다.  미국 중서부 농업지대 대학에서 농학과 통계학이, 플로리다 지역의 대학에서 해양학과 기상학이 강세를 보이는 현상은 지역 특성을 활용한 지역대학 특화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 평가든 대학의 자체 진단이든 모든 변화의 조짐이 대학에 ‘자  극 ’을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종일 교수는 “변화의 바람을 불게 만든 것은 냉혹한 시장의 회초리다 ”라고 말한다.

 자율이라는 말은 대학의 유행어가 되어 있다.  한 교수는 “이제는 자율이라는 말에 신물이 난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해온 소리다.  흉내만 냈어도 벌써 됐겠다 ”라고 말한다.

 또 한 교수는 교육 전문가 집단의 기득권 고수 자세를 강도 놀게 질타한다.

 “30년 넘게 한국 교육을 파행으로 이끌어오면서 득을 본 집단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충만한 국민의 에너지를 여전히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쉽게 말하면 부실공사를 해놓고 보수하면서 먹고 사는 무리들이다.  5 · 6공화국 때 교육개혁심의회와 교육정책자문회의 같은 것을 만들어놓고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역사의 장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교육 개방, 교육 소비자의 인식 전환 등 외압 때문에라도 대학은 바뀔 수밖에 없다.”

 지난 12월8일 교육부는 대학 정원 및 학사자율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교육부로서는 그야말로 ‘큰일 ’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대학 정원 규제가 대학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게 되자 교육부가 선심 쓰듯 생색을 내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미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오명으로 얼룩진 한국의 대학은 과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한국에 과연 대학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대학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변혁의 거센 물결에 올라탔다.  학과 통폐합을 시도하는 학교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양식 있는 교수들의 목소리가 살아나고 있으며, 지성의 공간을 채우는 대다수 학생은 건강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교육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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