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경협을 갑자기 중단하면?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5.02.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1월8일 정부가 발표한 '남북 경협 활성화 조치'는 민간 차원에 한정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협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위험에 대해서는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위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업계는 일단 북한이 한국 기업들과 경협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줄곧 한국 정부를 배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측이 한국 기업들에게 초청장을 발급해 방북이 계속 성사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북한이 일부 시범 사업을 추진한 뒤에 경협을 일방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즉, 북한 당국은 남북 경협이 체제 유지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관찰하다가 북한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동요할 듯하면 이를 즉각 중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남북 경협과 관련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경우 한국측이 입게 될 손실이 얼마나 될지 추산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참고가 될 만한 자료는 있다. 지난해 6월 북한 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당시 상공자원부가 작성한 '남북 경제제재 방안 검토보고'라는 문서다. 아직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는 이 보고서는, 비록 한국측이 일방으로 경협을 중단할 경우를 가상하기는 했지만, 경협 중단으로 인한 피해액을 추산해 놓았다. 당시 정부는 대외무역법 제4조에 근거해 통일원장관과 상공자원부장관이 협의해 북한에 경제 제재를 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물론 그때는 시범 사업이 성사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교역상의 피해만을 추산한 것이다. 만일 앞으로 추진될 시범 사업이 중단된다면, 한국측의 피해는 94년 피해 추산액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예상 피해액 약 2백억원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북한에 원·부자재를 반출한 후 완제품을 회수할 수 없어 입게 되는 피해액은 약9백만달러(72억원)이다. 여기에 제3국으로부터의 수출 불이행 클레임을 비롯한 간접 피해액까지 포함하면 2천5백만달러(2백억원)정도에 이를 것으로 이 보고서는 추정했다. 북한과의 교역량이 전체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2%밖에 안되므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해를 입는 기업의 처지에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제재를 하더라도 2~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어 기존 계약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강력히 요청한 적도 있다.

 물론 안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정부는 '남북협력기금법'에 근거해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조성된 남북 교류협력기금액은 1천2백억원 가량으로, 전체 피해 예상액을 훨씬 넘는다. 기업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면서도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