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상 바꾸는 고분자의 ‘마술’/덴드리머, 유전 물질 이동 · 의학 진단에 활용
  • 번역·이덕환(서강대 교수·화학) ()
  • 승인 1995.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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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 칼럼

 현대는 고분자 시대이다. 현재의 우리 생활은 합성섬유·플라스틱·접착제와 같이 인공적으로 만든 물질에 의해 완전히 변환되었다. 이런 물질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천연 재료보다 강도·수명·가공성·염색성·접착력 등이 월등하고,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소재로 쓰인다. 최근 합성 고분자 생산량이 금속·목재·천연섬유를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합성 고분자의 유용성은 쉽게 짐작된다.

 분자 수준에서 구분자는 단량체(單量體)라 부르는 구성 단위로 돼 있다. 단량체들을 적절한 화학 반응으로 한 조각씩 연결하면 사슬 모양이나 3차원 구조를 가진 고분자가 된다. 한 종류의 단량체 A를 이용하면 사슬 모양의 고분자…A-A-A-A…를 만들 수 있다. 식품 포장재나 플라스틱 병에 사용되는 폴리에틸렌도 에틸렌(C2H4)을 사슬 모양으로 연결하여 만든 고분자이다.

 

끊이지 않는 고분자 연구

 나일론은 두 종류의 단량체 B와 C를 함께 써서 …B-C-B-C… 형태로 만든 것이다. 여러 개의 반응 자리를 가진 단량체들을 연결하면 복잡한 3차원 구조를 지닌 덩어리 모양의 불규칙한 고분자가 되기도 한다. 가황 고무, 접착제, 열에 강한 플라스틱, 탄성 플라스틱 따위가 그 예이다.

 고분자 합성은 분자를 이용한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고분자 합성이 핵심 산업으로 발전한 지금도 고분자를 합성하는 화학자들의 흥미는 조금도 줄지 않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고분자 합성 방법이 나오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미국 미시간분자연구소에서 일하며, 나무의 모양에 깊은 흥미를 가진 젊은 고분자화학자 도널드 토마리아에 대한 것이다. 토마리아는 79~83년에 나무 모양으로 성장하는 고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87쪽 상장 안의 그림처럼 끝에 아민이라 부르는 말단기를 가진 작은 분자에 두 단계 효율적인 화학 반응을 일으켜서 역시 아민 말단기를 가진 두 분자 조직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간단한 반응을 되풀이하면 가지가 자라게 되어 PAMAM이라는 분자가 만들어진다.

 고분자가 자라는 모양이 나뭇가지 뻗은 모양과 닮아서 덴드리머(그리스어로 덴드론은 ‘나무’를 뜻한다)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분자는, 폭죽 터지는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불꽃놀이에 쓰이는 화약 이름을 본따 ‘성화(星花·starburst) 덴드리머’라고도 한다. 이런 고분자는 흥미로운 특성을 여럿 지니고 있어서 응용 분야도 넓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지를 3개 가진 분자를 중심 핵으로 쓰면 87쪽 그림과 같은 작은 덴드리머를 만들 수 있다. 세 가지를 가진 분자에서 자라는 PAMAM 분자는 판모양으로 시작하여 점차 둥근 공 모양으로 자란다. 덴드리머가 자라는 각 단계를 ‘세대’라고 한다. 가지 3개를 가진 분자에서 시작해 5세대까지 자란 덴드리머는 중앙의 질소를 비롯하여 질소 93개(3+6+12+24+48)를 포함한 단위체로 되어 있으며, 지름이 2천5백만분의 1cm로 헤모글로빈 등 중간 크기의 단백질과 비슷한 크기이다.

 이 분자는 다른 고분자와 달리 그 크기와 분자량이 일정하다. 전자 현미경으로 직접 볼 수 있는 큰 덴드리머도 있고, 독특한 중심 핵에서 자란 막대기 모양의 덴드리머도 있다.

 토마리아의 PAMAM 덴드리머는 한 세대 자랄때마다 직경이 1억분의 1cm씩 자란다. 그러나 나무 모양의 분자 공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다. 공 표면에서 가지가 자라므로 바깥쪽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자라게 되고, 어느 정도 자라면 공 표면이 너무 복잡해져 정상적인 성장이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PAMAM은 9~10세대 뒤에는 성장을 멈추는데, 이런 점이 도리어 그것을 응용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덴드리머는 어디에 쓸 수 있을까. 합성에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연구는 활발하지만 아직 상업화한 것은 없다. 덴드리머는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과, 가지로 이루어진 내부 구조에 접근할 수 있다는점, 반응성 큰 표면의 다양한 화학적 특성 때문에 여러 부문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덴드리머는 분자 수준의 볼 베어링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고, 덴드리머에 커다란 항체나 작은 자기(磁氣) 표식을 부착하여 의학 진단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덴드리머로 세포막을 통해 유전 물질을 이동시킬 수도 있음이 밝혀졌다. 그로써 현재 이용되는 개질(改質) 바이러스를 대체할 가능성이 열렸다.

 

미래 생활에서 중요한 몫 담당할 듯

 어느 정도 성장한 덴드리머는 사방이 막히면서 성장을 멈추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종말(catastrophe)'이라고 부르고 덴드리머를 합성하고 응용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지만, 요즘은 이런 현상도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나뭇가지 안에 분자를 담으면 분자 상자가 된다. 부서지기 쉬운 분자를 안전하게 포장·운반할 수 있게 되어 본격적인 분자의 상업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래 세상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분자의 모양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고분자가 현재 우리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처럼 덴드리머도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할 것으로 확신한다.

번역·李悳煥(서강대 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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