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은 미래의 통합유럽市場”
  • 이기영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지역실장)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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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핑계로 방치 말아야…알맹이 있는 輕協 · 전문가 육성 절실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 추진됐던 북방정책을 두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서두를 것이 없다는 충고를 하였다. 그리고 서두른다해도 졸속으로 처리하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했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수고에 비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속빈 강정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이름을 내걸고 다녀온 민간 사절단과 정부 대표단이나 쌍무경제협력위원회에서 주최한 투자설명회니 하는 거창한 행사들도 형식에만 그쳐 실속없는 겉치례 통상외교만 치른 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부의 동유럽에 대한 경제협력이나 통상 정책이 전혀 쓸모없는 것이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동유럽과 체결된 각종 협정을 보면, 헝가리 · 폴란드와는 경제진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보호장치라 할 수 있는 투자 보장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무역협정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와 맺었고 항공 협정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가서명 상태임)와 맺었으며 과학 기술 협정은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와 체결하여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북방정책이 시동을 걸고 수교단계로 접어들 무렵인 1988년의 對동유럽 교역(동독 포함)은 수출이 1억2천6백만달러, 수입이 8천9백만달러로 총 2억1천5백만달러였다. 이같은 교역 규모는 작년의 경우 동독을 제외하고 수출 5억4천1백14만달러, 수입 2억6천6백27만 달러 총 8억7백41만달러로 늘어났다. 4년사이에 4배나 비약적인 성장률을 보여준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동유럽과 우리와의 경제협력은 꾸준히 증대되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꼭 지적되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외형적인 성장이 아니라 경협의 내용과 추진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점들이다.

 그 첫번째는 동유럽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동유럽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일부이며 장차 통합된 유럽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의 통상 정책에서 차지하는 이들에 대한 비중이 여전히 낮다. 서유럽이나 제3국으로의 진출을 모색할 수 있는 전진기지라는 전략적 판단이 북방정책 초기부터 거론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이렇다할 활동 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새로운 체제의 등장이라는, 이 지역 진출에 있어 초심자인 우리에겐 무척이나 유리한 환경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데 비해 우리의 태도는 여전히 과거에 했던 소리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정치적 · 사회적 불안정 때문에 진출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든가, 생산성이 낮거나 아니면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약하다는등 경제 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진출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변명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 기업이 진출할 의사가 없고 환경도 좋지 않은데 굳이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주장이다.

 이 지역이 갖고 있거나 앞으로 갖게 될 정치적 · 경제적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구태의연한 핑계보다는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활동 방안과 함께 진출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해도 늦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두 번째는 경협자금의 배분과 사용에 관련된 문제이다. 동유럽의 재정적 여건은 지금 현재로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교역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 점은 적어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제공하기로 되어있는 경협자금은 동유럽과의 경제협력을 촉진시키는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협자금에 대한 정부의 원칙은 민간 기업이 유망한 투자기회를 발굴하면 검토한 후 지원하겠다는 데 그치고 있다. 이 원칙은 분명히 안전한 정책이기는 하나 모든 게 여의치 못한 동유럽 사정과 우리 기업의 여건을 감안해 보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의 동유럽의 처지가 일본이나 유럽, 미국, 우리에게 모두 똑같이 주어진 새로운 환경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우리 기업의 목소리와 입지를 키워주는 방향으로 정부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간 업계가 구상하는 투자나 진출 방향을 청취하고 과감한 지원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노력이 없는 한 동유럽 국가로부터 약속된 경협자금이 늦어지는 데 대한 불평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에 대한 신뢰도 역시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세 번째는 동유럽 진출에 대한 정보 입수와 판단에 대한 능력의 부족이다. 이 지역에 대한 정보 부족은 북방 정책이 추진되면서부터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 지역 전문가를 육성하는 문제 역시 누누이 지적되어온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 두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이같은 연유에서 정보와 전문가 부재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결국 앞으로도 계속 동유럽 진출이 졸속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게 한다.

 한국과 동유럽 간 경제협력의 현주소는 북방 정책의 현주소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북방 정책이 정치적 실적 위주의 외화내빈에 몸살을 앓듯이 동유럽과의 경제 협력 역시 알맹이 없이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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