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들은 성실히 살아요”
  • 부다페스트.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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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역 ‘신천지’…사업여건 매일 달라져 어려움

 동유럽권이 뚫리자마자 1천달러를 들고 무작정 부다페스트로 달려와 동유럽시장을 누빈 李均喆씨(38). 동유럽변혁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밑바닥에서 경험한 그는 이제 동유럽무역회사의 대표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고려대 재학시절인 74년부터 77년까지 국가대표 럭비선수였던 그는 웨스트런던대 대학원에서 스포츠 정치학이라는 특이한 분야를 공부했다.

왜 동유럽에 뛰어들었나?
동유럽은 적어도 무역에 관한 한 신천지와 다름 없는 곳이었다. 내개인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고 또 한국물건이 이곳의 경제여건으로 봐서 잘팔릴 것으로 판단했다. 부다페스트를 선택한 것은 헝가리가 동유럽권 중 선발주자라는 점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그쪽에서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니레지하자시에 건축중인 코리아 쇼핑센터가 올해말 완공되면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공략할 생각이다.

동유럽변혁기를 그야말로 맨발로 뛰었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우선 사업을 떠나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주택값이 너무 올라 월세가 런던을 앞지른다. 지금은 그래도 개선되었지만 전화, 특히 국제전화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사업여건도 거의 매일매일 달라지다시피 한다. 헝가리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은 중간계층에 오면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한번 관청에 가면 보통 여섯군데 이상을 돌아야 일을 마칠수 있을 정도다. 예컨대 상법은 무역업의 자유화를 규정해 놓아서 영업등록때 무역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게끔 되어있는데 경찰서에서는 법원의 허가가 없어서 거주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정도다. 최근 헝가리측이 무역억제정책을 쓰는 것도 장기적인 어려움의 하나다.

물가가 치솟는데 헝가리인들은 왜 보고만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가고에 대한 직접적 반발은 90년 유가 95% 인상 때 택시운전사들의 파업 한번뿐이었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핵심인 미하일 쿠파 재무장관에 대한 인기도가 정부인사 중 1위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다른 대안도 없다는 것을 국민들이 잘알고 인내하고 있는 것 같다.

동유럽 사람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길이 예전같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한 조짐이 없지는 않으나 아직까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것 같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이 언제 통일될지 묻는데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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