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눈높이로 바라본 ‘압구정동’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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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학자 평론가 전시·출판 공동작업



지난 12월12일 개막돼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압구정동 :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는 저널리즘이 거칠게 휩쓸고 간 압구정동 문화현실에 대한 예술가 학자 평론가들의 탐구작업이라는 점에 뜻이 있다.

‘현실문화연구’ 모임이 6개월에 걸쳐 기획하고 준비한 이 전시에는 ‘사건적인’ 요소가 많다. 이 전시회는 우선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지식인·예술가들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고급·대중 문화와 같은 이분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탈피하여 대중문화를 수평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선언적 의미가 돋보이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백지숙씨는 “압구정동이라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대상을 스쳐 지나가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 사회학·문화인류학적 방법이란 채취 방법을 도입한 점이 새롭다”고 평하고 “문화현실을 독해하려는 ‘이미지 작업’들이 기존 미술의 개념을 자극하고 확장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시회와 함께 이번 기획은 같은 이름의 책으로도 엮어져 출판됐다. 기획팀은 애초에 ‘출판미술’이란 새로운 실험에다 무게중심을 두었다. 전시장을 떠나면 감상자와의 소통 회로가 끊겨버리는 미술작품을 책이라는 매체와 그 유통구조 속에 편입시켜 ‘독자’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에는 전시회에 출품된 ‘시각 이미지’들과 함께, 학자 평론가 건축가 시인 등의 압구정동 문화현실 분석이 짝을 이루며 어우러져 있다. 예컨대 중앙대 강내희 교수(영문학·《문화과학》발행 겸 편집인)가 쓴 글 <압구정동의 ‘문제설정’-한국 자본주의의 욕망구조>와 화가 김환영씨의 <세계 자본주의와 압구정동>이란 일련의 작품이 나란히 실렸다.

 

“미술계서 촉발된 출판문화운동에 의의”

이 책에는 이외에도 연세대 조혜정 교수(사회학·‘또 하나의 문화’ 동인)와 화가 신지철, 김효선(여성신문 편집부 차장)과 화가 조경숙, 경희대 도정일 교수(영문학·문학평론가)와 디자이너 박혜준, 미술평론가 김진송과 화가 김복진, 시인 김정환과 화가 김환영, 미술평론가 엄 혁과 화가 조하익, 미술평론가 조봉진과 화가 서숙진 씨가 필자와 화가로 공동작업을 펼쳤고 건축가 정기용씨의 글과 그림(96~97쪽 기사 참조), 사진작가 이지누씨의 사진들이 수록됐다. 압구정동을 테마로 한 미술 전시회와 학술토론회가 하나의 책으로 묶인 셈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현실문화연구’운영위원 엄 혁씨(미술평론가)는 “문화 침체는 문화계 내부의 자체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및 출판이 그동안 대중문화를 외면하고 방기해온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비판하고, 동시에 대중 및 대중문화에 대해 ‘무지’했던 80년대 문화운동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을 기획팀을 바라고 있다. 아울러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미술계는 물론, 출판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출판저널》 편집부장 강철주씨(출판평론가)는 “영상매체의 위력 앞에서 주눅들어 있는 출판계에 신선한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특히 문자 시대의 부흥을 도모하는 책의 해를 앞두고 “출판계 내부가 아닌 미술계에서 촉발된 출판문화 또는 문화출판 운동이란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압구정동은 곧 한국 자본주의 문화의 현실”이라고 규정한다. 즉 압구정동 문화라는 ‘파편’을 통해 당대의 문화현실을 수직·수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방법론에서 출발한다. 국내 문화현실 연구의 전위에 서 있는 학자들이 압구정동을 보는 눈은 다양하다.

한국 자본주의의 이중적 욕망구조를 압구정동에서 발견하는 강내희 교수는 압구정동이 ‘욕망의 해방구’이자 동시에 ‘욕망의 하수구’라고 본다. 욕망은 대상에 대한 관심의 과잉 집중을 야기하며, 욕망하는 사람은 그 대상의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려 든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압구정동은 우리 사회 전체 욕망 구조의 표상이며 새로운 형태의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체계라는 것이다.

도정일 교수 역시 압구정동을 유토피아/디스토피아란 양면성으로 관찰한다. 도교수는 성곽도 없는 사통팔달의 열린 공간이면서 동시에 비압구정족을 배타시하는 닫힌 공간이 압구정동이라고 규정하고 그곳이 ‘자본주의의 천국’에 이르는 서울의 마지막 계단임을 지적한다. 그 유토피아는 그러나 노동과 땀의 결과가 아닌 ‘천국의 축제’이다. “감사의 대상이 없는 축제, 생산과 소비의 죄가 철저히 잊혀져 단 한순간도 기억되지 않는 순수망각의 축제”인 것이다. 그 축제에서 도교수는 “육체에서 혼이 증발해버린 화려한 망각의 자루, 혹은 움직이는 검정색 변기”를 목격한다.

압구정동의 계급문화는 “그들의 경험이고 세계이며, 스타일이고 자연”이다. 그리고 그 문화는 압구정동의 젊은 세대를 위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그 문화를 향유한 그 부모와 기성세대가 압구정족에게 가르쳤다는 것이 도교수의 진단이다. 결국 압구정동의 환락문화는 자본주의적 풍요의 신화를 맹신했던 지난 한 세대의 믿음을 “싸늘하게 복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압구정동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압구정동에 모이는 ‘아이들’을 들여다본 엄 혁씨는 압구정동을 초월된 현실·가상의 실재공간이라고 파악한다. 감수성과 향수를 단군신화와 같은 우리 역사가 아니라 서구 문화사의 계보에 두고 있는 압구정파는 ‘복제된 인간’이며 이를 수용하는 미학 또는 복제된 미학이라고 엄 혁씨는 본다.

그는 또, 압구정동이란 하드웨어를 설계한 자본과 과학기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권력이 “비압구정동인 현실의 공간까지 조정하고 통제하는 현실 세계의 권력과 제도”이기 때문에 압구정동을 탐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강력한 흡인력과 전파력을 동시에 지닌 압구정동 문화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압구정동에 대해 비판적이든,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든 학자들은 “바로 그 압구정동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내세운다.

강내희 교수는 이조 때 권력자 한명회가 관직에서 은퇴하며 ‘압구정’을 짓고 축하연을 벌일 때 그 권력의 마당에서 한명회를 정면 비판한 최경지를 예로 들면서 오늘의 압구정동을 우리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는 ‘재료’ 즉 문제상황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이 우리 사회에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사회변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조혜정 교수는 압구정동을 바라보는 대중매체의 시각을 크게 ‘소외’ ‘소비’ ‘우리 것’으로 정리하면서 소비와 놀이에 대한 적극적인 언설이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있음을, 다시 말해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적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읽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조교수는 다른 학자들의 평가에 비해 압구정동 문화의 가능성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문화만들기의 관점에서 압구정동을 살려내고 싶다”는 조교수는 먼저 지역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압구정동이 지역주민의 공간으로 새로운 교육과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실험해가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는데, 이같은 지역운동이 현 자본주의의 위기를 뚫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힘이라고 본다.

조교수가 보기에 압구정동은 이태원과 같은 ‘식민지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 생산지가 될 수 있다. 일본 신인류의 집결지인 아카사카가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는 세계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것처럼 압구정동이 인간적 숨결이 담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상업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압구정동 공간은 다름아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조교수는 압구정동이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인 공간이어야 하고 보다 많은 문화적 발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한편, 김효선씨는 <압구정동에서 들은 이야기>에서 “압구정 비판론의 필자들이 남성이면서도 남자들의 타락상보다 여자들의 타락상을 묘사하는 데 치중했다”고 비판한다. 압구정 위기론을 과잉 풍요의 모순으로 규정하면서도 그 위기를 낳게 한 “남성 지배자들이 주도해온 물질 제일주의”를 아무도 간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압구정동 여자들은 압구정으로 상징되는 한국 자본주의 의의 구조에 의해 왜곡되고, 남성 지배에 무관심한 남성적 비판론에 의해 또 한번 굴절되었다는 것이다. “압구정동에서 여자들이 ‘번뇌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면 그 연료를 제공한 것은 남성들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라고 김효선씨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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