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고발한다”
  • 함성호 (건축평론가 · 시인) ()
  • 승인 1992.03.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부동산자본가치의 확대과정에 다름아니다. 일제의 식민지수탈 지배세력은 8 · 15 이후 미군정과 결탁하며 재편성되었고 5 · 16과 더불어 군부로 이어졌다. 이러한 확대와 재생산의 과정에서 건축은 자연스럽게 재벌과 집권층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어휘로써 드러내게 되었다.

 5 · 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의 최대 콤플렉스는 그 도덕성의 결여에 있었다. 제3공화국의 군부세력은 자신들의 환부를 감추기 위해 국적있는 교육과 문화에 있었서의 전통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유신의 ‘국적있는 교육’은 명치유신의 주창자였던 이또(伊藤博文) 및 이노우에(井上毅)와 모토다(元田永孚)의 교육칙어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 대상이 의심스러운 충효교육의 강조뿐이었다. 전통문화의 계승은 공동체의 삶에서 유리된 소수지배집단의 구호로만 그친 ‘문화주의’의 피폐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결국 유신이 요구했던 박제화된 전통은 공공 건축물에 고건축적 ‘패션’을 요구하고 있었다.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법주사의 팔상전, 금산사의 미륵전과 같은 목조 양식적 특성을 콘크리트로 복사해내 군사문화의 조악한 전통미를 보여주었던 경복궁 중앙박물관이나, 소박한 초가의 형태를 기괴한 스케일로 ‘뻥튀기’하여 육중한 돌로 포장한 광화문 네거리의 세종문화회관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파시즘에 대한 열렬한 숭배의식은 거의 동일한 양식으로 반복해서 나타난다. 세계혁명의 열정에 고무된 소련의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소비에트관과 밤의 신비 속에서 차갑게 번쩍이는 완벽한 시메트리(균제미)를 보여주는 독일관, 그리고 무솔리니의 로마와 평양의 혁명 조각상은 그러한 집권층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의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신시대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수직 열주들도 한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한없이 무거운 침묵으로 ‘고발’하고 있다.

공공건축물은 정치 선전을 위한 ‘광고탑’
 ‘위대한 영도자의 국가통치 철학과 지도이념’(유정회 발행≪내일의 한국≫)의 한 시대가 총성에 가고 12 · 12와 외채가 만든 개도국 우등생의 자존심을 밑천으로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또다른 신 군부들은 ‘정의사회 구현’을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들의 선배들과는 달리, 신 군부들은 국제정치무대에서의 광고전략에 의한 국내 정치의 안정된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때의 한국 자본주의의 시장 경제는 엄청난 소비구조로의 이행을 경험하게 되고 소비화됨에 따라, 부동산 자본주의의 가치 생산 능력이 가일층 확대되고 그러한 소비구조의 심화에 힘입어 한국 건축에 있어서도 포스트 모더니즘이 자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 조성되게 된다.

 오늘날 강남 일대에서 중점적으로 지어진 자유로운 입면을 한 무뇌아적인 ‘패션 건물’들의 주요한 패트론들이 바로 소비사회로의 재편성 과정에서 부를 축적한 소자본가들이거나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된 토지 소유자들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시기의 공공건물들은 하나같이 보여주기 위한 광고탑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으리 만큼 ‘최고’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흑성산 기슭에서 차렷 자세로 관람객들을 맞아 들이고 있는 독립기념관의 조각상과 거대한 상징 조형물은 마치 집권세력의 불안정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여의도의 6 · 3빌딩은 엉뚱한 애국심으로 무장된 신 군부들의 비장한 의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황금빛이 말해주고 있듯이 그 자체 정치 선전적인 의도로 가득 차 있다.

 건축은 명백히 한 시대를 ‘고발’한다. 오늘의 우리 건축의 현실은 제정 러시아 시절 차르가 지나갈 통로마다 건물의 전면만 세워놓은 가설도시 ‘포템킨’처럼 대중과 유리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물은 언제나 명백히 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왜곡된 역사를 담고 있더라도 건축을 살아가는 대중들은 언제나 그 의도를 자신들의 것으로 정화해 버린다. 건축은 언제나 대중들의 것이므로.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