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 대륙은 하나의 중국”
  • 타이베이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1992.03.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만의 ‘中華民國’ 외교부장 錢得 박사

묻는 이:  ≪시사저널≫ 편집고문(타이베이)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은 인구 2천만에 불과하다. 그러나 금년에 대만의 1인당 GNP는 1만달러를 넘는다.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에 다음가지만, 외화 보유고는 무려 8백24억달러, 단연 세계 제1이다. 경제대국 일본을 능가한 것이다. 중국대륙의 ‘中華人民共和國’은 인구 11억, 세계 최대의 나라. 대만에 비해 인구는 55배, 면적은 2백73배지만 중공의 GNP총액은 작년에 3천6백억 달러. 대만의 GNP 1천9백억달러의 두배가 안되었다. “대만의 경험으로 중국통일을 완성한다”는 대만사람의 구호는 결코 공소한 것이 아니다. 상승일로의 국가경제력에 힘입어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의 국제적 지위 역시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데 ‘국제정치는 돈’이라는 현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2일 나는 중화민국의 錢得외교부장을 방문, 50분간 담소할 기회를 가졌는데, 원기왕성한 모습에 자신만만한 말투, 비록 작은 섬 작은 인구를 지배하고 있지만, ‘중화민국’의 옛 영광을 상기시키는 듯한 기염을 토하였다.

공산주의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에 따라 동부 아시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데 그 성격을 어떻게 보십니까?
두가지 중요한 요소를 고려하여야 합니다. 그 하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요, 두번째는 시장 경제체제입니다. 지금 동북아 및 동남아 나라들은 그러한 방향으로 열심히 공동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기구(APEC)를 조직하였습니다. APEC은 아직도 완전한 경제적 국제기구라고 볼 수 없고 장관급 및 고위관리의 협의체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회원국들이 단순한 협의체를 벗어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향해 일보전진하여 협력기구로 만들 수 있느냐, 이것이 목표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화인민공화국(中共)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중공도 참여하고 있는데 중공이야말로 불확실한 요소입니다. 그들은 아직 민주주의 룰이나 인권존중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존중한다고 입에 바른 소리를 하고 있고 등소평은 지난달 광주와 심수를 방문하고 여러번 연설을 통해 자본주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정말 그렇게 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두고볼 일입니다.

중공의 장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사회주의의 얼굴을 지닌 자본주의’가 성공할 것인가, 자본주의가 성숙하면 궁극적으로 중공도 자유화될 것인가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에서 다같이 실증된 것입니다. 진정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정치적인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그것을 체험했고, 우리도 체험했습니다. 아직까지 중공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후 북경의 지도층은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그리고 이전에도 잠시 경제적으로 근대화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 짧은 기간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초기의 경제적 근대화로 말미암아 두가지 고약한 부작용을 맛본 것입니다. 관료들 사이의 부패 및 인플레가 만연한 것입니다. 1988년 가을, 그들은 경제근대화 정책을 계속하느냐 격렬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없었습니다. 근대화의 침체는 많은 사람들의 심각한 반감을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등소평은 최근에 근대화를 지속키로 결정한 것입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중공의 군사적 위협은 어느 정도입니까?
1991년 5월1일까지 우리는 중공을 반란집단으로 간주하고 우리는 그들을 정치적인 실체로 인정안했습니다. 그러나 ‘공산반란기간’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다시말해 중국에는 현실적으로 두개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 중화민국은 대만, 팽호군도, 金門 및 馬粗에 지배권을 행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대륙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본인식입니다. 그러나 중공의 입장은 그들이 중앙정부이고 우리는 지방정부라는 것, 우리가 ‘一國兩制’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쌍방간에 일치되는 부분입니다. 양쪽 다 중국은 하나라는 것이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이고 중국은 궁극적으로 통일된다는 것 등에 뜻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공은 대만이 지방이라는 열등한 지위를 받아들여야 통일이 된다는 것인데 우리는 모든 중국인이 자유, 민주주의 및 번영을 누리면 통일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전망을 논한다면 우리가 대만에서 얻은 경험이 전파되어 경제적인 번영과 정치적인 민주화가 병행되어 발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중국인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중국 통일의 전망이 현실화됩니다. 중공의 군사적 위협을 말한다면 그들은 1978년부터 세가지의 상황에서 같은 무력공격을 가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독립을 선언할 때 둘째 우리가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셋째 만일 대만에 심각한 내부 혼란이 일어날 때 쳐들어오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경우는 소련의 붕괴로 사라졌고 첫번째와 세번째의 경우가 남아있는데, 작년 10월 야당인 민진당이 당강령으로 대만의 독립을 채택했을 때 중공으로부터 강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군사적인 위협은 있으나 우리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그들의 군사적 공격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통일에 관련, 우리 중화민국은 작년 3월 ‘국가통일강령’을 선포하였습니다. 단기적으로 민간교류입니다. 문화 경제 체육 교육 교류입니다. 이제 1단계에서 적의가 해소되고 선의가 촉진되기를 바랍니다. 이 단계에서 중공은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정책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아직 중공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첫단계가 성공적으로 발전하면, 상호협조단계에 들어갑니다. 서로가 직접 통상과 우편과 항해를 촉진하여 협력체제를 강화합니다. 제2단계가 성공하면 쌍방은 정치적 협상에 들어갑니다. 아직까지 저쪽의 적극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제1단계에 있습니다.

제1단계이지만 수많은 대만사람이 대륙을 방문하고 있지 않습니까?
1987년 11월2일부터 민간인의 대륙방문을 허가하였습니다. 4년4개월 전입니다. 대륙에 있는 친척을 방문케 하였고 대륙사람에게는 대만에 있는 친척의 문병을 오게 했습니다. 그동안 2백50만명이 대륙을 찾아갔습니다.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는 기업심이 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3천명쯤은 20억달러를 대륙에 투자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간접적인 교역은 작년에 40억달러에 가깝습니다.

중국의 통일문제에 중공은 ‘일국양제’를 주장하고 있는데 귀측은 대등한 ‘정치적 실체’를 요구합니다. 사실상 ‘두개의 중국’이 아닌가요. 유엔에 가입하겠습니까?
중공이 ‘일국양제’를 말할 적에 그들이 중앙정부이고 우리는 지방정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대등한 ‘정치적 실체’를 말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 대통령이 72년 7월4일 성명에서 남북간에 평화적인 경쟁을 요구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중공과 평화적 경쟁을 원합니다. 중국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말입니다.

두 정부간에 말인가요, ‘1국가 2정부’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그것은 두개의 중국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되풀이 중국은 하나라고 천명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는 대륙에 어떤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고 그들은 대만에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대로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유엔의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회원국이란 특권이 아니라 의무를 뜻합니다.

한국과 북경간에 조만간 국교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서울에서의 전망입니다.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는 어찌 되는건가요.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현상유지라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현상유지는 우리로서 대단히 중요한 나라인 한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므로 매우 좋고, 그것은 한국에도 매우 좋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제 중화민국과 외교적 유대를 가지고 동시에 대륙과 무역하고 투자할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다른 나라가 중공한테서 향유하고 있는 이득을 모두 누리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이 한걸음 더 나아가 중공과 외교관계를 맺으려면, 북경은 “우리를 택하거나 저들을 택하라”고 선택을 요구할 것입니다. 한국은 매우 불쾌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 순간 당신네는 두 손에 떡을 쥐고 동시에 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중공 역시 어려운 결정이 됩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2년 전 소련이 행사하던 것보다 더 큽니다. 그때 소련이 서울과 국교를 맺었을 때 평양은 소련을 의심했고 소련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되었습니다. 이제 중공은 가장 큰 영향력이고,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차가워진다”고 그들은 말하지 않습니까. 이제 중공은 한국으로부터 모든 자본투자를 얻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과의 교역에서 큰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서울 · 대북 · 북경 모두에 좋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로 가기 어렵지 않습니까?
모두의 이해관계가 일치된다면 현상을 깰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다가 세상은 변합니다. 소련이 민주화가 되었는데 중공이라해서 안되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만일 중공이 민주화된다면 중국은 하나가 됩니다. 당신네들도 저절로 문제가 없어집니다.

귀하는 중국이 민주적 원칙하에 통일된다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우리의 신념입니다.

민주적 통일이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걸릴 것입니까?
어쩌면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룰 수 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십시요. 5년 전에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서울과 대북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시킬 방법은? 대만의 6개년 경제계획에 한국의 참가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2주일 전의 민관식특사의 방문은 대성공이었습니다. 같은 고위사절의 한국방문이 있을 것을 희망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경제적인 협조를 증진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서로 경쟁관계였으니까. 일본에 대해 작년에 한국은 88억달러 무역 적자였고 우리는 96억달러 적자였습니다. 일본과 합작하고 따라서 그들의 반제품을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들끼리 합작 할 수 있고 공동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같이 나누어 쓸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6개년 개발계획에 한국이 참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을 위해 매우 신중한 연구조사를 했습니다. 각료급 회합을 열어 이 문제를 의논했고, 우리는 한국의 참여를 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은 대만의 제2의 고속도로건설에 참여할 수 있고 대중교통수단의 발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만의 경제적인 힘은 ‘중화민국’의 국제적 지위를 괄목하게 향상시킨 것 같습니다. 구 소련의 여러공화국과 국교 수립이 진전되고 있지 않습니까. 라트비아와는 총영사관계를 맺었는데…
지금 세계적인 자본의 결핍이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 자본이 구 소련으로 가고 있고 동유럽으로 갑니다. 따라서 중남미나 아프리카 여러나라가 자본을 우리한테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국제관계에서 우리가 다소의 진전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재건개발은행(EBRD)에 참여했습니다. 구 소련과 동유럽의 재건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다페스트, 프라하에 사무소를 설치했고 작년 말에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에 중화민국 무역 대표부를 설치했고, 라트비아는 대북대표부를 총영사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지난주 중공은 잠정적으로 그들 대사관을 라트비아에서 철수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키에프와 모스크바에 대표단을 보냈고 우크라이나에는 무역 대표를 두었고 모스크바에는 아직 없으나, 10만톤의 쌀을 러시아에 보내고 있습니다.

중공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라트비아가 귀국과 총영사관계를 맺는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이 중공과 국교를 맺는 경우, 중요한 참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외교부장으로서 나는 가상적인 성격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삼가고 싶습니다.

서울에 있는 귀국대사관을 매각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제일의 외화 소유국입니다. 대사관 부지를 팔아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