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者, 天下之末이랑께···”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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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쌀 수입에 농민 분노 충전···“정부가 앞장서 농업 파괴”

 
‘우리가 쌀농사를 짓지 않으면 당신들은 다 굶는다’ ‘농업을 파괴하고 쌀 자급을 위태롭게 한 김영삼 정부를 그냥 두지 않겠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장 이수금)이 9월10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연 ‘의료보험 통합과 쌀 자급을 위한 전국 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은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이 날 농민들은 △최소 시장 접근(MMA)에 따른 의무 도입 물량 이외의 쌀을 수입하지 말 것 △식용 쌀은 절대로 수입하지 않겠다던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할 것 △올해 쌀 수매가는 반드시 인상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쌀 수입한다’ 소문만 나도 쌀값 폭락

 집회에 참석한 농민들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물푸레나무로 깍은 몽둥이를 들고 뙤양볕이 내리쬐는 여의도 광장을 배회하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막걸리에 잔뜩 취해 기자에게 ‘경찰의 앞잡이’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휘두르는 농민도 있었다. 그을리고 주름진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차 있어 주최측인 전농의 통제가 없었다면 경찰과 큰 충돌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충북 영동군 용산면에 사는 김 아무개씨(30)는 한창 바쁜 농번기인데도 속이 터져서 여의도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는 “쌀농사를 2만평이나 짓고 있는데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이런식이면 아무도 쌀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마을만 해도 작년 한해 동안 쌀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마을만 해도 작년 한 해 동안 쌀농사를 짓던 논 만여 평이 포도밭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한결같이 쌀농사를 짓던 논이 해마다 채소나 원예같은 다른 작물 재배지역으로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농민들은 중국산 식용 쌀이 들어온다고 발표되던 때부터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전농은 부산·목포·인천 등 식용 쌀이 들어오는 모든 항구에서 입항과 하역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여수항에서는 시위하던 농민이 바다에 뛰어들어 수입 쌀을 실은 배에까지 들어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은 중국산 식용 쌀을 창고에 넣는 것도 막고 있다. 9월12일 전북 군산시 옥산면 농협 창고에 수입 쌀 2백t이 들어가자 군산시 서수면 농민 10여 명이 군산 시장에게 해명을 요구 했다. 시장이 해명하지 않자 이들은 벼가 자라고 있는 서수면 농어민 후계자 공동 경작 논 1천2백여 평을 트랙터로 갈아엎어 버렸다. 전북 순창에서는 육탄으로 수입 쌀 입고를 저지했다. 9월12일 중국산 쌀이 이곳 도정 공장 창고로 들어오자 농민들이 트랙터와 콤바인으로 창고 앞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선형씨 등 농민 5명은 아예 쇠사슬로 몸을 트랙터에 묶고 수입 쌀 입고를 저지했다.

 여의도 집회 이후 전농은 서울 조계사에 모여 연행된 농민 석방과 정부와의 협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9월12일 저녁 조계사 농성장에서 만난 홍성동씨(31· 경기도 평택)는 “식용 쌀을 수입한다는 소문만으로 평택지역 쌀값이 16만원에서 14만원으로 떨어졌다. 심정 같아서는 논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루과이 라운드 비준 이후 가공용 쌀만 수입하고 식용 쌀은 절대로 수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쌀 재고 부족을 이유로 중국에서 식용 쌀을 수입했다. 농민들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농민들은 2년 연속 동결된 쌀 수매가를 인상하고 도시 글로자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직접 지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의 주장은 농민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유남식 책임연구원은 “한번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게 농업이다. 특히 국제 쌀시장은 수급과 가격이 항상 불안해 필요량을 필요한 시기에 적정 가격으로 살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쌀 수급만은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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