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 올린 ‘虛舟’ 김윤환 만선가 부를 수 있을까
  • 이흥환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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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臣그룹?정호용?이한동 등 견제세력이 변수



  “민자당은 이제 ‘金泳三당’이다”  대통령선거 개표가 진행되던 지난 12월19일 새벽, 민자당 선거상황실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한 민정계 의원은 이렇게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 민자당은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의 1인 평정시대를 맞았고, 민정?민주?공화계의 계파 구분도 오랜 진통 끝에 사라지고 말았다.

  3계파 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반김영삼파’ ‘친민주계’ ‘관망세력’ ‘盧泰愚 대통령 직계’ 라는 단어도 사라져버렸다.  한때 金潤煥 의원은 신민주계 또는 친민주계의 대표 주자였다.  당시 민정계 의원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김의원은 “내가 신민주계가 아니라면 민자당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한마디 반론을 방패막이로 삼곤 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민자당이 깨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이른바 ‘반분당론’이었다.  이에 맞서 민정계 주류는 ‘역분당론’을 폈다.  김영삼 대표(당시 직함)가 민자당 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당을 뛰쳐나가지는 못하리라는 주장이었다.  일종의 모험이었던 이 ‘대권 놀이’에서 김윤환 의원은 결국 승리했고, 민정계 주류는 이때부터 김의원에게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김영삼 총재와 김의원은 한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김영삼 총재를 반대한 민정계 주류와 일부 TK 의원들은 당을 떠났다.  김윤환 의원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민정계의 수장으로서 계보 관리를 맡았던 박태준씨는 탈당에 이어 의원직 자리도 내놓아 아예 정치일선에서 한발 물러났고, 李鍾贊?朴哲彦?金復東?金龍煥 의원 등은 국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민자당 입장에서 보면 김윤환 의원의 논리대로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면서 분당은 막은 셈이다.

적 안만드는 ‘김윤환식 정치’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민자당을 떠난 민정계의 일부 주류와 김윤환 의원의 관계다.  이들이 당을 떠나긴 했지만 ‘반김윤환’으로 비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민주계 의원들은 “그게 바로 김윤환식 정치의 장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김의원의 의중대로 상황이 전개되었고 정파가 분열되긴 했지만 김의원은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구?경북세였다.  사람들은 대구?경북세의 분열을 점쳤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김의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대구?경북 현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한창 자라나기 시작한 TK의 싹을 허주가 밟아버렸다”는 손가락질이었다.  김의원은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에 김영삼 후보의 취약지구 중 하나였던 대구?경북지역을 철저하게 관리했고, 선거 결과는 김영삼 후보의 압승이었다.  “역시 김윤환”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구 표밭에서 박철언?유수호?김복동 의원 등 일부 TK 의원의 이탈이 있었고, 국민당의 융단폭격이 가해지는 악조건에서도 ‘TK의 분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셈이었다.

  대구?경북세력 중에서 김의원과 맞잡이를 할 만한 대표 주자는 정권교체기의 정치곡예 끝에 결국 민자당에 안주한 鄭鎬溶 의원이다.  정의원이 한동안 민자당 입당을 망설인 주원인의 하나는 김윤환 의원의 존재였다.  두 사람을 정적관계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편안한 사이는 결코 아니다.  더구나 김의원의 당내 위상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면 정의원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정의원의 정치력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대선 기간에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으로서 맹활약한 李漢東?李春九 의원과 김윤환 의원의 관계도 앞으로 주목해볼 만하다.  지난 경선 때 이한동 의원은 결코 만만치 않은 당내 입지를 바탕으로 정치적 야망을 드러냈고, 과거 노대통령 직계로 분류되었던 이춘구 의원의 당내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崔炯佑?金德龍?徐錫宰 의원 등 상도동 가신그룹이야말로 김윤환 의원을 견제할 새 세력이다.  이들 상도동 3인방은 그동안 절치부심의 정치세월을 보냈다.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야당식 투쟁력’이 집권여당 내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느냐에 따라 민자당 내 판도의 밑그림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지난 12월22일 저녁, 서울 S호텔에서는 ‘김영상 대통령후보 추대위’ 멤버들의 자축연이 벌어졌다.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김영삼 총재를 지지했던 인사들이 김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김종호 남재희 나웅배 이웅희 김영광 정종택 정재철 이민섭 씨 등 과거 민정계의 원내외 중진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자, 참석 인사들을 과연 ‘허주계’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얘기가 나돌았다.  민정계의 한 인사는 “허주계라 이름짓기는 아직 이르다.  굳이 부르자면 ‘추대위파’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대위파에 속한 원내외 인사 20여명은 지난 경선 이후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주로 민정계의 인사로 구성된 추대위파는 전국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나웅래 남재희(서울), 곽정출 유흥수(부산), 김용태 이치호(대구), 이웅희 김영광(경기), 김종호 정종택(충북), 정재철 이민섭(강원), 황인성 고명승(전북), 김 식 이환의(전남), 금진호 권해옥 박정수(경북), 박희태 배명국 정순덕(경남) 씨 등 쟁쟁한 인사가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진 의원 중심의 소계보로 재편될 듯

  김윤환 의원은 줄곧 여권 핵심에서 ‘막후’ 노릇만 해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김의원 자신도 더이상 무대 뒤에만 머물수는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어떠한 정치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자신의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다.  김의원은 경북대학교 2학년 때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신문기자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해 언론에 투신한 사람이다.  그는 또 정치를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욕심이 없을리 없다.  그가 이제 ‘전면’에 나서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14대 대통령)에는 TK가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김의원의 논리에는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14대는 안된다고 했지만 15대에도 안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부 대구?경북권 인사들은 차기(1998년의 15대 대통령)는 다시 대구?경북권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한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지역 패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차기 정권은 다시 대구?경북세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TK세력은 이제 정치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변화기에 돌입했다.  96년에 있을 15대 총선때까지 이들은 김영삼 총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공천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가 당 총재의 국회의원 공천권마저 없애버리는 획기적인 변혁을 꾀하지 않는 한 현재의 민자당 내 옛 민정계 의원들은 김영삼 총재의 그늘 밑에 놓일 수밖에 없다.

  김윤환 의원을 비롯한 민자당의 중진급 의원들은 이제 차기를 겨냥한다.  민정?민주?공화계의 3계파가 그어놓았던 구획은 중진급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계보 모임으로 대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윤환 의원 중심의 추대위파나 상도동 가신그룹 등이 과거 야당식 계보의 성격을 띠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계보 수장의 정치노선에 충실한 야당식 계보의 특성이 집권여당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96년 봄 총선이 치러지고 난 후 대구?경북세력이 다시 기지개를 켤 무렵이면 이한동?이춘구 의원 등 옛 민정계 중진들과 최형우?김덕룡?서석재 의원 등도 나름대로 바쁜 발걸음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들은 김윤환 의원의 정치력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고, 대구?경북세력의 핵심으로서의 김의원의 위상도 잘 알고 있다.  김의원이 과연 이들 견제세력을 맞이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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