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금요일이 두렵다”
  • 강태진 (한컴퓨터연구소장) ()
  • 승인 1992.03.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일 예루살렘 바이러스 ‘공습’ … 국산 LBC등 극성

 지난 3월6일이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탄생 기념일이었다는 것을 안 사람이 올해는 특히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 이 날을 기념해 미켈란젤로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유럽에서 처음 발견됐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발견된 이 바이러스는 평상시에는 자료의 입출력 속도를 저하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다 3월6일이 되면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는 자료를 모두 파괴할 수도 있다. 또 13일은 87년 이스라엘에서 발생해 ‘13일의 금요일’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예루살렘 바이러스’가 공격을 개시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88년 브레인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이후 ‘국산’으로 추정되는 LBC(李秉喆) 바이러스 · 터미네이터 바이러스 등을 포함해 1천 종류 이상의 바이러스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말은 83년 프레드릭 코헨의 논문에서 처음 사용됐다.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생명체 내부에서 자신을 계속 복제해내는 것처럼 컴퓨터 바이러스도 컴퓨터 내부에서 자신을 스스로 복제하는 특성을 가진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떤 물리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감염 여부는 이 바이러스가 컴퓨터 화면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메시지를 출력한다든지 컴퓨터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등의 ‘증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와 같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악성 바이러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별다른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만을 알리거나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쓸데없이 자신을 번식시켜 컴퓨터의 기능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결코 이롭다고 할 수는 없다.

 로스 그린버그라는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벌레형 · 트로이목마형 · 컴퓨터 바이러스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벌레형 프로그램은 컴퓨터의 기억장치 내에서 자기 자신을 계속 복제만 할 뿐 다른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바이러스다. 트로이목마 프로그램은 스스로 증식은 못하나 사용자가 모르는 내용을 고의적으로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일을 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여기서 한술 더 떠 자신을 컴퓨터의 운용체제나 다른 프로그램에 포함시킨다. 한번 감염된 프로그램을 사용한 후 같은 컴퓨터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 프로그램도 감염되는 것이다.

 초기의 컴퓨터 바이러스는 프로그래머들의 지적 호기심에 의해 만들어진 양성 바이러스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과 많은 연구소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들끼리 싸움을 붙여 어떤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을 몰아내고 컴퓨터의 기억장치를 차지하나 하는 ‘코어 워’(Core War : Core는 컴퓨터의 기억장치를 일컫는 말이다)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과 함께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가 80년대 말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컴퓨터 바이러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조처를 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프로그램 디스켓을 복제하거나 컴퓨터통신의 전자게시판에서 가져다 쓰는 행위는 바이러스 감염을 자초하는 것이나 진배 없다. 그리고 감염되었을 때를 대비해 중요한 프로그램과 자료를 수시로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일 바이러스를 퇴치하지 못할 경우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깨끗이 지우고 먼저 상태로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 주변의 두 사람이 3월6일 미켈란젤로 바이러스의 피해를 입었는데, 한 사람은 저장을 해놔 한두 시간만에 피해를 쉽게 복구할 수 있었으나 다른 사람은 한달 동안 작업한 내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이러스가 점점 극성을 부리자 이들의 감염 여부를 발견해내고 치료도 해주는 백신 프로그램이 많이 나와 있다. 대부분 전자게시판이나 컴퓨터 제조회사들에 의해 무료로 배포되는 백신 프로그램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바이러스들을 알아내고 치료도 해주지만 새로 나온 바이러스나 조금 변형된 기존의 바이러스는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시 예방이 중요하다.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컴퓨터 바이러스는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CD-ROM 같이 읽기만 하고 쓸 수는 없는 저장 매체로 공급된다면(녹음테이프와 콤팩트 디스크 음반의 차이점을 생각하면 된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어쩌면 에이즈 바이러스가 점점 문란해져가는 성습관을 바로잡는 데 한몫을 하는 측면도 있는 것처럼 컴퓨터 바이러스도 불법복제가 만연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유통형태를 바로잡는 순기능을 다소나마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