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거칠어지고 있는가
  • 박성준 기자 ()
  • 승인 2006.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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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범죄자 점점 많아져


사법계 “사회참여 는 탓”
여성계 “남성의 학대 탓”

  들어가기만 하면 이름을 숫자로 바꿔 부르는 곳이 있다.  죄를 짓고 형이 확정된 사람이 모여 사는 교도소다.  이른바 ‘칭호 번호’로 불리는 곳이다.

  어떤 교도소는 오히려 여성이 많다.  국내에 한곳뿐인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주여자교도소는 여성 범죄자만 수용하는 곳이다.  다소 의외인 것은 지난해 12월 현재 살인 강도 상해 폭력 등 강력범죄자가 이곳의 수감자 3백40여명 가운데 약 60%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1백30여명이 살인을 저질러 이곳에 왔는데 어떤 장기수의 어께에는 ‘별’(전과)이 15개나 달려 있다.

  청주교도소가 한국 여성의 범죄 현황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 교도소는 범죄자 가운데 특히 죄질이 나쁜 사람만 골라 수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주여자교도소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범죄가 남성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점점 퇴조하고 있다.  아직도 전체 범죄발생 건수에서 차지하는 여성 범죄 비율은 남성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지만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여성 범죄 실태에 관한 통계는 여성이 거칠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 형법범 증가율 남성 앞질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동향연구실의 崔仁燮 실장이 지난해 연말에 발표한 보고서 ‘여성 범죄의 실태에 관한 연구’는 여성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최실장이 보고서를 펴낸 것은 “여성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나 여성 범죄에 대한 학문적 연구, 특히 형사사법기관의 연구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구가 부진했던 것은 여성 범죄 발생 건수가 남성에 비해 워낙 적어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은 까닭도 있다.  최실장은 “여성 범죄는 남성 범죄와는 다른 특성이 있으며 범죄 발생 건수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비율이 늘고 있는 현재의 추세에 비춰봐서 예방책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과학적인 연구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최실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범죄자는 지난 65년 6만3천4백92명이었는데 90년엔 14만9백27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지수로 볼 때 여성 범죄의 증가 속도는 남성 범죄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특정 분야의 범죄에서는 여성이 오히려 남성을 앞지르고 있다.  형법범의 증가지수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65년의 범죄발생지수를 100으로 볼 때 남성의 형법범 발생지수는 135로 증가한 반면, 여성은 151를 기록했다.  지난 81년 여성의 형법범 발생지수는 191까지 치솟기도 했다. 

  여성 형법범 구성비를 보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범죄는 사기 절도 등 재산에 관련한 범죄이다.  그러나 지난 81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재산 범죄의 구성비가 계속 낮아지고 있는 반면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간통 등 풍속 범죄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풍속 범죄가 여성 형법범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는 지난 65년 3.2%에서 90년 24.1%로 크게 증가했다.  무려 11.3배가 불어난 것이다.  사기 배임 문서위조 등 재산 범죄에서 차지하는 여성범죄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도표 참조) 이와 달리 살인 강도 상해 등의 강력범죄는 80년대를 통해 매년 6천건 정도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실장은 여성 범죄의 특징으로 우발적 범행, 가정불화에 의한 범행, 단독범,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범행 등을 꼽았다.  남성 범죄와 비교할 때 여성 범죄는 주로 가정불화 때문에 일어나며 범죄 행위의 상대도 낯선 사람이 아닌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최실장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수록 범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 범죄 주요 원인은 가정불화

  지금까지 서유럽에서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고 여성해방운동이 확산되면 전통적으로 남성이 저질러온 범죄에서도 여성 비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가설이 통용돼 왔다.  특히 여성운동의 역할을 중시하는 일부 학자는 “여성은 그들 자신을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역사적으로 남성이 행해왔던 범죄행위에 종사하는 등 성 역할에 일대 변화를 시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실장은 “여성범죄를 분석하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최근의 조사 결과 여성의 사회 참여가 범죄 증가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여성 범죄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은 최실장의 이와 같은 해석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여성이 남성화할 것이라는 이른바 ‘해방테제’에 따라 여성 범죄를 설명하는 것은 이미 서유럽에서도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자료를 자세히 검토하면 한국에서도 그같은 가설이 무너지고 있음이 입증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4일 서울대에서 열린 사회학 대회에서 발표된 ‘페미니즘과 범죄 연구’라는 논문도 그와 같은 시각차를 설명한다.  논문을 발표한 沈英姬 교수(한양대?사회학)는 “살인 강도 폭행 등 강력범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고 여성운동이 활발해진 최근에 올수록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교수는 그 근거로 지난 65년 0.22%에 이르렀던 여성에 의한 살인 비율이 지난 89년에는 0.13%에 그쳤다는 점을 들고 있다.

“범죄 집계보다 동기 파악 선행돼야”

  페미니즘의 입장에 선 전문가들은 여성 범죄의 증가 추세보다는 범죄의 동기를 중시한다.  심교수는 “여성이 강력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배경에는 남성에 의한 성적 학대나 육체적인 가해가 도사리고 있다”며 “동기 분석이 선행돼야 여성 범죄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여성 범죄에서 범죄 동기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불화의 경우, 배우자를 가진 범죄자의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여성이 불평등한 조건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지난 89년 여성 범죄자의 유배우자 비율은 58.9%로 전체 범죄자의 유배우자 비율 47.8%에 비해 10% 이상이 높다.

  여성론자들은 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가 ‘핵심을 모두 비켜간’ 논문이라고 주장한다.  덧붙여 여성론자들은 “잘못된 가설의 신중하지 못한 적용이 ‘남성 중심’의 세계관을 옹호하는 은폐물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중요한 사실을 거두절미한 가설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범죄에 대한 ‘이론’ 자체가 탁상공론이라는 시각도 있다.  교도관 생활 30년 경력의 청주여자교도소 尹德根 소장은 “범죄 발생의 원인은 남녀 공히 도덕성이나 죄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일고 있는 여성 범죄 논쟁이 어떤 식으로 계속될 것인지 좀더 지켜 볼 일이다.  최근의 논쟁은 단순히 여성 범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김부남 사건, 김보은?김진관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다수 여성은 여성의 범죄 행위가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범죄 논쟁은 바로 그러한 점에서 ‘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여성에게 또 하나의 싸움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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