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행랑’ 문화재 반출, 적법한가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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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 소장품’ 둘러싸고 유족측.한국언론 공방

 한 외국인이 소장하던 한국문화재의 처리문제가 장안의 화제다. 학자이자 외교관으로 양국 정가에 널리 알려져 있는 그레고리 헨더슨(88년 사망)이 정부 수립이후부터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동안 수집한, 선사시대부터 조선조까지의 유물 1백50여점을 보스턴에 사는 그의 미망인 마이아가 하버드대학에 기증하자 영문일간지 <코리아 타임스>는 유물수집 및 반출의 ‘불법성’과 비윤리성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가 나간 뒤 헨더슨을 아는 인사들이 과장 혹은 왜곡이라며 반발하자 <코리아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중요한 것은 문화적 자산을 찾아내고 후손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다”하고 서둘러 매듭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조각가로 서울 혜화동성당에 작품을 남겨놓기도 한 마이아 헨더슨은 곧 보스턴 총영사관을 통해 항의 의사를 전달했고 홍콩의 시사주간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는 한국언론을 조롱하는 기사를 실어 이에 가세했다.

 사실 헨더슨의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헨더슨의 지우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가 한국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탁월한 식견으로 수집과 보존에 정성을 쏟았으며  문화재를 헐값에 사들여 밀 반출하는 부류의 위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그가 선물로 혹은 불공정한 거래로 수집한 유물을 외교행랑을 통해 반출했다고 믿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의 행위의 적법성 여부보다는 이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이냐에 있는 것 같다. 유물 반출의 당사자들은 대개 △반출 당시 ‘적법절차’를 밟았으며 △그로 인해 유물을 좀더 좋은 환경에서 보존할 수 있게 됐다는 논리를 편다.

 이번 사례에서도 한 외국기자는 “한국문화재를 고이 보존하여 널리 알릴 수 있게 해준 유족의 호의를 무시하는 한국언론의 국수주의적 태도”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영국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신전의 대리석을 돌려달라는 그리스정부의 요구를 “당시 엘진 백작이 총독의 허락 아래 합법적으로 반출했으며 아테네처럼 공기가 나쁜 곳에 그대로 뒀다면 아마 지금쯤은…”이라며 일축했었다.

 이같은 서방측의 오만한 시각과는 정반대로 국내에는 “외국으로 나간 유물은 원래 우리것이니까 무조건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다소 우격다짐식의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白承吉 기획실장은 “문화재에 관한 한 제국주의적 시각이나 편협한 국수주의적 시각을 모두 극복해야 한다”면서 모범적 사례로  /덴마크 국립박물관을 들었다. 6?25 때 참전한 덴마크 의사가 경주에서 수집한 다량의 문화재를 ‘사후 공공박물관 기증’을 조건으로 반출한 뒤 70년대 말 덴마크정부에 기증하자 우리 정부가 한국관을 지어줘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뉴욕에 있는 한국문화원 김준길 원장은 “문화재 반출과정에 윤리적 하자가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미 반출된 문화재에 대해서는 보존과 전시에 정부나 기업이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돈을 들여서라도 해야 할 일을 유족이 해줬으니 차라리 다행스런 일이다”라고 말했다. 아쉽지만 헨더슨 소장품 문제는 이정도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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