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의 킬러를 국제 법정으로”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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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한 주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킬러를 국제 법정으로”

  인간 백정 폴 포트를 국제전범재판소에 세울 수 있을까. 캄보디아 정부는 6월21일 ‘킬링필드’의 주역 폴 포트(69세 추정)가 부하 게릴라 세력에게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 사망설이 나돌고 있으나 6월 23일까지 생존이 확인된 포 포트는 살아서 캄보디아 정부에 인도된다면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75년 친미 론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뒤 79년 베트남의 침공으로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인 2백만명을 무참히 살육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불교 사원과 카톨릭 계열 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원래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청년이었다.

  주위사람들은 그가 49년 프랑스 유학을 시작하면서부터 잔인한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장학금을 얻어 전파공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학생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는 바람에 장학금 혜택을 잃고 53년 중도 귀국했다. 유학 시절 폴 포트는 모택동 사상을 따르는 유학생들을 모아 폴 포트파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귀국한 이후 63년까지 10년간 프놈펜의 사립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다. 고사 생활과 지하 조직인 캄보디아 공산당 활동을 하다 62년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비밀경찰에 쫓기면서 63년 크메르족이 거주하는 북동부 산악지대로 피해 게릴라 활동을 시작했다.

  폴 포트는 75년 권력을 장악한 직후부터 도시를 공동화하고 화폐. 사유지산제. 종교를 폐지하고 집단 농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혁하려는 그의 실험은 2백만명의 생명을 빼앗는 유례가 없는 살육극을 초래했다.

  한편 그가 지도하는 크메르 루주가 국경을 자주 침범하자 베트남은 78년 캄보디아를 침공해 이듬해인 79년 폴 포트는 81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것ㅇ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크메르 루주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폴 포트는 내부 갈등이 심해지면서 그에게 등을 돌린 루주 국방장관 타 목이 지휘하는 게릴라와 싸움을 벌였다.

  현재 폴 포트의 생존 여부는 가장 큰 관심사이다. 대다수 캄보디아 국민들은 그를 살려서 재판정에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등 서방과 유엔도 국제 재판소에서 그에게 학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폐루
후지모리도 박정희 향수丙을?

 
  후지모리는 페루의 박정희인가.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개발 독재 정책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그는 최근 위헌인 대통령 3선 출마를 위해 정적을 제거하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등 통치 기반을 강화하고 나섰다.

  페루 정부는 국익과 국가 안보를 해치는 국민의 국적을 박탈한다는 국가 보안법 포고령을 발효시켰다. 또 페루의회는 후지모리의 3선 출마를 허용한 법안이 위헌이라고 비난해온 헌법재판소 판사 해임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지난해 의회를 해산해 자신의 수족들로 재구성해 놓은 상태이다.

  후지모리가 이처럼 불도저 식으로 도재 정치를 강화하자 곳곳에서 저항이 일고 있다. 페루 야당도 국가보안법 포고령이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용이고 헌법재판관을 파면한 조처는 정지 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도 거세다. 노동자와 대학새 5천여 명은 6월 초 페루 의회 앞에서 ‘후지모니 독재가’ ‘독재 권력 타도라는 플랭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반 국민들도 후지모리를 독재자로 인식하고 있다. 페루 수도 리마릐 한 여론 좌 기관은 FLAK 시민 40.6%는 후지모리 정부가 독재 권력이며 24.8%는 군부가 정부를 배후 조종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민주 정부라고 생각하는 시민은 30-9%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와 우사한 정책을 펴고 있는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崔寧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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