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지 시험할 ‘낙하산 관행’
  • 이흥환 기자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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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정부투자기관장 人事개선 여론… ‘별들의 안식처’ 오명 벗어야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인사권이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자리 중에 정부투자기관의 이사장이라는 자리가 있다. 한국전기통신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공사 19곳과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국민은행 한국주택은행 등 국책은행 4곳의 이사장은 주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부투자기관 이사장 자리에 대한 세인의 평은 혹독하다. 퇴역 장성과 고위 관리를 위한 노후대책용, 양로원, 외인부대 집결지, 낙하산 기착지 등등 달갑지 않은 별명이 늘 붙어다닌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정된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이 새로 시행되어 이사장 자리가 만들어진 84년 3월1일 이후부터 줄곧 구설수에 올라 있다. 획기적인 인사 개혁이나 제도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정부투자기관 이사장 자리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부투자기관은 정부가 납입자본금의 50% 이상을 출자한 기업체다. 한국방송공사는 정부가 전액 출자한 기업체이긴 하지만 한국방송공사법이라는 개별법에 따라 정부투자기관에서 제외되어 있고, 한국화학공업주식회사는 정부투자가 5%밖에 되지 않지만 화학공업(주)의 특별법에 따라 정부투자기관으로 분류되어 있다. 대통령은 또 이사장뿐만 아니라 투자기관의 사장과 감사 등 임원에 대한 임명권도 가지고 있다.

 

이사장·사장·감사 94%가 ‘낙하산’ 인사

  92년 7월 옛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낸 權正達씨가 한국산업은행 이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부당한 인사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육사 15기 출신에 국보위 내무분과위원을 지냈으며 11대 국회의원(외무통일위원회)과 민정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경력을 볼 때 금융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인사가 산업은행 이사장 자리에 기용된 ‘상식 밖’의 인사라는 비판이었다. 정가 일부에서는 14대 3·24총선에서 권씨가 안동군 출마를 포기한 데 따른 보상 차원의 인사라는 평이 나돌았다.

  하지만 권씨의 경우는 이사장 인사에 대한 잡음의 한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해 5월에는 柳炳賢 전 합참의장이 토지개발공사 이사장에, 金又鉉 전 치안본부장이 중소기업은행 이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김우현 중소기업은행 이사장에 이어 권정달 산업은행 이사장이 등장하자 즉각 금융업계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4개 국책은행만큼은 비금융계 출신 인사들의 ‘낙하산 바람’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이제는 그런 관행마저 무시되었다는 자포자기적인 불만이었다.

  92년 12월말 현재 23개 정부투자기관 이사장 자리 중에서 무려 10곳이 예비역 장성 출신으로 메워져 있다. 그나마 업무와 관련이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安承喆 국민은행이사장(전 기업은행장)과 李憘逸 주택공사이사장(전 동자부장관) 등 2명에 불과하다. 하기야 84년 이사장제가 처음 실시되었을 때 초대 이사장의 반수 이상은 퇴역 장성 몫이었다.

  이사장 인사의 왜곡된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9년 12월9일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조차 “정부투자기관 이사장 임명 관행을 시급히 개선해야 하며, 지나친 대우도 재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宋大熙·李興宰 박사팀은 정부투자기관 이사회 제도의 문제점을 밝힌 연구보고서에서 “24개(당시) 투자기관 이사장 중 군 장성 출신이 11명, 장차관 등 전직 고관이 10명, 전직 국회의원이 3명으로 위인설관격이라는 비판과 이사장 제도 폐지론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기관 업무에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이사장직에 임명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달 후인 90년 1월9일에는 경제기획원의 평가도 나왔다. “24개(당시) 기관 이사장 중 14명이 업무와 관련이 없는 인사이며, 이사진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교수나 관련 산하기관장들로 구성되어 최고의결기관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91년 4월 한국가스안전공사(당시 명칭)의 신임 이사장에 육군 중장(육사 12기·국방정보본부장) 출신 이상규 전 화재보험협회이사장이 임명되었을 때도 “동자부 산하기관이 ‘별들의 안식처’냐”하는 지적이 나왔다. 안필준(육사 12기) 대한석탄공사 사장, 최세창(육사 13기) 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장, 최상화(해사) 에너지관리공단이사장 등 예비역 4성 장군 3명과 함께 동자부 산하 정부투자기관 이사장에 ‘별 15개’가 포진하게 된 것이다. 5공화국 한때는 23개의 별이 동자부 산하 기관장 자리를 ‘빛낸 적’도 있었다.

  투자기관의 임원 자리는 여권 정치인의 안식처 노릇도 한다. 92년 2월 14대 총선을 앞두고 정부투자기관장 자리 9개가 한달 넘도록 공석이었던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당시 민자당에서는 “국영기업체장 자리로 낙천자를 회유하려고 비워놓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정부투자기관의 임직원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면 의원임기 만료 1백50일 전에 해당직에서 해임되어야 한다는 국회의원 선거법 32조에 따라 실제로 석달 전인 91년 12월에 이미 이사장 9명과 사장 3명 등이 공천 신청 의사를 밝히면서 사표를 제출했고, 수자원공사 민태구 이사장, 주택공사 이영창 이사장, 토지개발공사 김영진 이사장 등은 민자당 공천을 받아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安龍植 교수(연세대 행정학과)와 朴鍾斗 교수(목포대 행정학과)는 91년 3월 투자기관 임원 및 집행간부 인사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한 결과 충격적인 자료를 제시했다. 90년 10월말 현재 24개 기관의 이사장 사장 감사와 비상임이사 85명, 부사장과 본부장 등 집행간부 1백53명 등 총3백10명의 경력과 출신지 등을 분석한 것이었는데 이사장 사장 감사 72명 중 94.4%인 68명이 ‘낙하산’ 인사였다.

  임원 72명의 출신 지역은 영남이 44%인 32명, 호남은 9%인 7명이었다. 특히 이사장의 경우 영남과 호남 출신이 각각 37.5%(9명)와 16.6%(4명)의 격차를 보였는데, 영남 9명 중 경북 출신이 무려 6명이었다.

 

육사·대구 경북 출신이 압도적

  사장은 영남 출신이 14명으로 58.3%나 차지한 반면 호남과 제주 출신은 단 1명도 없었으며, 감사의 경우는 영남이 37.5%인 9명이며 이 중 경북이 6명이었다. 이사장의 전직을 보더라도 고위공직자가 10명(관리관1, 차관보 2, 교육감 1, 대사 1, 차관 3, 장관 2)으로 가장 많았고, 군 출신은 9명(대령 1, 소장 4, 중장 3, 대장 1)에 달했다. 감사의 경우는 공직자 출신이 7명인데 반해 군 출신은 무려 13명이었다. 해사와 공사 출신이 각 1명, 나머지는 육사 출신이라는 점도 특기할 점이었다. 이 논문은 임원 인사의 특징을 △60대 후반 고령자의 낙하산식 영입 인사 △영남지역 출신 특히 대구를 포함한 경북 출신이 압도적 우세 △사장과 감사는 거의 외부 영입 등 세가지로 압축했다.

  안용식 교수는 “승진이 안 된 고참 차관이나 차관급이 투자기관 사장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50% 이상이 되며, 감사는 군 출신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인사 관행의 특징 중 하나다. 임명권자와의 친분 친소 관계가 임명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안교수는 또 “정부투자기관은 정부가 수립한 정책 실현의 투자도구다. 문제는 인사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이다”라고 말한다.

  이사장 사장을 포함한 이사(임기 3년)와 감사(임기 2년) 등 투자기관의 임원에 대한 인사뿐만 아니라 이사회 제도의 문제점도 병폐의 하나로 지적된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으하면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상임 또는 비상임(11조2항)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이사의 정수와 임명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11조3항).

  투자기관의 경영조직을 사장을 정점으로한 집행간부와 비상임 이사회로 이원화함으로써 집행부에 집중되어 있던 의결권과 경영권을 분리하고, 주무부처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를 배제해 투자기관의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 83년 12월에 개정된 기본법의 취지였다. 정책결정기관과 집행기관을 분리시킨 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투자기관은 정부의 승인 없이도 이사회의 의결만으로 경영 목표 설정과 직제 개편, 예산 등 주요 사안을 자체 의결하고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된 것은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ㅎ공사의 비상임 이사로 있는 한 교수는 이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사장이 업무 내용을 너무 모른다. 답답할 정도다. 이사장이 전문인으로서 식견을 가지고 이사회를 주도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집행부가 이사장과 이사회를 우습게 아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다.

  23개 정부투자기관을 통폐합하고 이사회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음은 물론이다. 통폐합론에 대해 안용식 교수는 “투자기관은 각 부처별 특성에 맞추어 설립한 것인만큼 존속 여부는 해당 주무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통폐합보다는 민영화쪽으로 운영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안교수는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80년대부터 각종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있다. 우리만 세계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투자기관의 주식 일부를 국민주로 보급하거나 일부 업무를 외부 민간 기업에 넘겨주는 ‘기능의 민영화’도 가능하다”는 제안을 대시한다. 실제로 재무부는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전력공사의 주식 49%를 국민주로 보급하는 등 정부투자기관의 민영화 계획을 수립해놓은 상태이나 주식시장의 악조건 때문에 실시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기획원에서도 투자기관 이사진에 관련 소비자단체나 민간주주(공개투자기관의 경우)를 참여시켜 이사회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투자기관과 관련 있는 산하기관 또는 기업의 사장을 이사 기용에서 제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경영실적을 평가해 실적이 부진한 투자기관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해임건의까지 할 수 있는 경영평가위원회의 기능을 적극 활용해 투자기관 사장에게 자율경영 권한을 부여하는 대신 책임도 함께 묻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경영 평가해 해임 건의할 수 있어야

  통신공사와 전력공사는 23개 투자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기업체다. 두 기관은 23개 기관의 총매출액과 인원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2만6천 명으로 가동되는 전력공사의 경우 92년 매출액(예상)은 6조3천억원에 달하며, 89년(4조5천6백83억원)과 90년(5조61억원 91년(5조6천억원) 매출액 1위를 기록했다. 89년에는 7천6백61억원, 90년에는 6천58억원의 순이익을 보았으나 90년에는 환율 예측을 잘못함으로써 89년에 비해 순이익이 감소하기도 했다.

  투자기관의 이사장과 이사는 1~2개월에 한번씩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회의 안건도 대부분 회의 하루 전날 전달되기 때문에 제대로 검토할 시간도 없이 이사회에 참석하곤 한다. 이사장은 비상임이지만 사무실과 비서 승용차를 제공받으며, 보수 성격의 일정액 경비 약 1백만원과 1백만원 범위 내에서 업무추진비 명목의 활동비를 지급받는다. 이사들도 이사회 참석 교통비 명목으로 10만~20만원씩의 사례를 받고 있다. 이사장의 활동비는 당초 기관의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50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으나, 87년 10월 이후 상향조정된 것이다.

  정부투자기관의 임원직 인사 관행은 임명권자인 대통령 개인의 개혁 의지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기획원의 한 고위관리는 공기업의 이사장이나 사장 자리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 주변에는 어차피 사람이 남아돌고 자리는 한정되기 마련이다. 퇴역 장성이나 고위 관료에게 정부투자기관의 사장 자리를 맡기느니 차라리 한직이기는 하지만 명분은 세울 수 있는 이사장직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정치적인 판단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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