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투사들 예상 밖 진출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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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한다” “이번 선거 최대의 드라마다” 25일 새벽 서울 마포 민주당사에서 텔레비전 중계로 재야 후보들의 선전상을 지켜보던 관전자들은 환호와 탄성을 연신 터뜨렸다. 민주당의 최연소 후보인 김민석 (영등포 을) 후보가 여권 중진이자 경제부처 장관을 두루 거친 나웅배 의원과 숨가쁜 역전, 재역전극을 연출하는 장면에서는 매순간 환호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재야 운동권의 ‘선거 혁명’은 마침내 이부영 최고위원(강동 갑)을 비롯, 유인태(도봉 갑) 박계동(강서 갑) 신계륜(성북 을) 원혜영(부천시 중구 을)  제정구(시흥 · 군포) 후보 등 수도권 지역에서만도 6명의 초선 국회의원을 탄생시키는 이변으로 귀결됐다. 호남지역에서도 농민운동의 대부 이길재(광주 북을) 후보와 학생운동권 출신 장영달(전주 완산구) 후보가 무난하게 금배지를 달았다. 임채정(노원 을) 고광진(동대문 을) 김희완(송파 갑) 김민석 후보 등 은메달에 머문 후보들도 막판까지 경합을 벌여 재야후보드를 향한 두터운 지지를 과시했다.

 사실상 재야출신 후보들의 선전은 당 관계자들조차 예상 못한 유권자들의 쿠데타였다. 당지도부는 공천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의 별’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당시 당내에서는 민주인사 홀대와 전문인 선호 분위기와 관련, “김대표는 진짜 별, 이대표는 변호사면 무조건 공천한다”는 푸념이 나돌기도 했다. 13대와 달리 민주대 반민주 구도가 희석된 선거양상과 유권자들의 보수 안정심리에 비추어 ‘재야 투쟁 경력’이 당선에 도움보다는 부담이 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지역구 전망에서도 국민적 지명도를 확보한 이부영 최고위원,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이자 오랫동안 빈민운동을 해온 제정구 씨, 지역구 출마 경험이 있는 유인태 당무위원 정도가 당선 가능 후보로 꼽혔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막판에 수도권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차출’한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신계륜 후보와 김민석 후보는 서울지역 전체에 바람을 일으키는 전초기지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70,80년대 오랜 도피생홀로 ‘운동권의 홍길동’이라고 불렸던 전민련 대변인 출신 박계동 후보도 3파전의 어려운 싸움에서 신선한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풀무원 사장’으로 더 알려진 원혜영 후보 또한 지역 인지도가 낮다는 사전 분석에도 불구하고 압승을 거두었다.

 결국 이번 이변은 유권자들이 전반적인 보수 심리 속에서도 야권에 관한 한 참신한 인물과 개혁성을 요구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는 게 당내의 사후 분석이다.

 더욱이 참신한 재야 인사의 약진은 공천과정에서 ‘자질론’‘의정활동 부진’이 거론돼온 후보들의 퇴조와 맞물려 나타났다는 데에서 유권자들의 자체 물갈이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이들의 진출은 재야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다가 ‘민중세력의 독자적 정당화’를 내걸고 제도권 진입을 모색해온 민중당이 끝내 교두보 확보에도 실패한 점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과연 이들은 13대에 이미 진출한 재야 출신들과 함께 개혁과 진보의 목소리로 차별화 되는 ‘범개혁 단일진영’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 내 공천과정에서 신민 · 민주계 개혁파들이 기존 계보의 장악력을 벗어나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했던 만큼, 어떤 형태로든 진보진영의 단일 세력화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부영 최고위원의 경우 통합과정에서 발휘한 역량과 함께 그가 이끄는 민주연합계 후보들이 대부분 선전한 만큼 변화의 중심축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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