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복권이냐 이기택 재활이냐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7.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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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반 치닫는 포항 보궐 선거…"대선 전초전"정치권 긴장

갈수록 열기를 더하고 있는 포항 북 보궐 선거는 두 정치 거물의 접전으로 압축되고 있다. 애초 정치권에서는 '포철 신화'의 주역 박태준 후보가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기택 후보가 30년 정치 자산을 몽땅 투입하며 전략 투구해 '반전시킬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신한국당 이병석 후보가 바닥 표를 다지면서 막판 변수로 떠오르고 있어, 포항 북 보궐 선거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이다.

이번 포항 북 보궐 선거는 어는 모로 보나 연말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각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에서도 이런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후보가 '반YS, 반DJ'라는 이 지역 정서를 연말 대선과 연결해, 이번 선거전에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포철 신화의 주역임을 자부하며 표밭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박태준 후보는 가는 곳마다 '갱제는 가라! 경제가 왔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제를 갱제라고 발음하는 김대통령의 사투리에 착한해 대구·경북 지역의 반YS 정서를 자극하고, 성공한 기업인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이 구호에는 또 문민 정권 내내 해외로 떠돈 박후보가 현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이번 보선에서 자신을 찍느냐 한 찍느냐가 곧 김영삼 정권에 대한 이 지역 유권자의 평가임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기택 분발에 놀란 박태준, 야당에 구조 요청
민주당 이기택 후보는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3김 청산'을 들고 나왔다. 지난 총선에서 3김 시대 청산을 내걸고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했지만. 자신의 고향인 포항에서 반3김 깃발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김대중 총재에 대핸 반감이 강한 이 지역의 정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후보는 유권자를 향해 '박태준을 찍으면 김대중 총재가 집권할 길을 여는 것이고, 나를 찍으면 거꾸로 김총재 집권을 막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열세인 신한국당 이병석 후보는 철두철미하게 '지역 일꾼론'을 내세우고 있다. 중앙 정치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포항 시민을 볼모로 정치 재개를 꾀하고 있는데, 정치 신인인 자신만이 포항 지역의 이익을 위해 뛰는 인물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정작 신한국당은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 사흘 뒤 치를 이번 보궐 선거에서 기대이하의 결과가 나오면 새 대통령 후보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중앙당 차원의 지원에 골몰하고 있다.

민자당 대표위원을 지낸 박태준 후보는 정치 거물임에 틀림없지만, 직접 자기 선거를 치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상대방은 7선의원을 지낸 백전 노장 이기택. 더구나 이후보는 '보궐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만큼 보궐 선거에 관한 한 뚝심을 발휘해 왔다. 이기택 후보는 통합민주당 대표 시절 강원 명주·양양의 최욱철, 경북 경주 을의 이상두, 충북 진천·음성의 허 탁 의원을 보궐 선거에서 당선시킨 바 있다. 한마디로 선거에 관한 한 박태준 후보는 아마추어이고, 이기택 후보는 프로이다.

박후보측은 조직면에서도 무소속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박후보측 선거본부장 김동일씨는 "우리는 두 여당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한다. 이병석 후보는 여당 조직을 활용하고 있고, 이기택 후보는 측근인 박기환 포항시장으로부터 은밀한 행정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당 조직을 통째로 포항시로 옮겨와 조직 선거를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기택 후보의 맹렬한 추격에 내심 긴장한 박후보측은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야당에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다. 두 야당으로부터 조직적인 뒷받침과 선거 노하우를 '전수'받겠다는 것이다. 물론 야권 통합 논의를 벌리고 있는 두 야당 또한 박태준 후보의 승리를 도와야 연말 대선 때 대구·경북 표를 흡수 할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7월5일 포항에 내려온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박후보에게 당 차원의 전폭적 지지를 약속했고, 국민회의 또한 김민석 의원등 선거 전문가를 보내 기획을 돕는 등 측면을 지원하고 있다.

선거 결과 따라 대선 구도 크게 바뀔 수도
포항 북 보궐 선거가 박태준 후보의 일방적 승리라는 '싱거운 게임'으로 끝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빅 게임'으로 발전한 까닭도, 어찌 보면 연말 대선을 앞둔 각 정치 세력의 이해 관계가 이곳에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즉 여야 모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연말 대선의 최대 변수 대구·경북 표의 향배가, 이곳 포항 북 보궐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상당히 변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대선 지형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정가에서는 박태준 후보가 보선에서 승리한다면,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 주자로 떠올라 최근 정치권 쟁점 중의 하나인 '보수 대연합'흐름에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즉 야권 통합에 지렛대 구실을 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신한국당 경선에서 탈락한 일부 주자들의 탈당을 유혹하며 정계 재편의 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김종필 총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자민련 박준규 고문과 박철언 부총재가 김총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TJ 챙기기'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사실은 연말 대선에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보수 대연합을 염두에 둔 행보이다. 요즘 정가에서는 박태준·박준규·박철언 등 'TK 3박'을 축으로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아우르는 거대 보수 대연합이 탄생할 가능성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박태준 후보의 최측근인 최재욱 전의원은 "박후보가 당선되면 최소한 대선의 최대 킹 메이커로 떠오를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메이커 딱지'를 뗄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이번 보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민주당 이기택 후보 또한 대권의 꿈을 접지 않고 있다. 사실 전당원에게 포항 총동원령을 내린 민주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민주당 간판은 사수해야 한다'는 각오로 이번 선거에 임하고 있다. 이기택 총재가 낙마하면 대선 정국에서 당이 공중 분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물론 이총재가 보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는 당연히 이총재 몫이고, 바로 그 순간 이총재는 연말 대선의 무시 못할 변수로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이기택 후보의 선전에 박준규 박철언 등 자민련 대구·경북 맹주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후보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고향인 청하면 등 농촌 지역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이후보 진영은 이 여파를 포항 도심으로 몰아 간다는 전략으로 '이제는 포항에서도 대통령 후보가 나와야 한다'며,  경남 양산 태생인 박태준 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투표 다음날인 7월25일 환갑을 맞는 이후보가 환갑 잔치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포항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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