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가 무슨 죄를 졌기에…
  • 구로다 가스히로(산케이 신문) ()
  • 승인 1997.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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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느 재벌 기업은 신상품 개발이나 기업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축쇄판 일본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고 한다. 이유는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일본 사회를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이 몇 년 또는 몇 십년 후에 한국에서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 일본 신문을 읽으며 한국에서 히트할 상품이나 비즈니스 힌트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생활해 보니. 수많은 뉴스 속에서 '아, 이것은 전에 일본에도 있었는데'라고 느낄 때가 자주 있다. 물론 일본에서는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사고가 없었지만, 같은 시기에 있었던 대구 가스 폭발 사고가 바로 그러했다. 70년 일본의 지방 대도시인 오사카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 희생자가 많이 났다.

또 5공 초기의 언론 통폐합도 그렇다. 일본이 전쟁하던 42년에 같은 일이 있었으며, 그것이 현재 일본 언론 구도의 기초가 되었다. 당시에 나는 '역사 발전과정에서는 어느 나라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구나'라고 실감했다. 단지 언론 통폐합의 경우, 한국에서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해서 부정되었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 또한 그렇다. 일본의 '이지메'는 학생들이 집단으로 약한 학생을 폭행한다든가, 괴롭히는 현상을 말한다. 이지메는 한국 언론에 일본을 비판하는 좋은 예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학교 폭력 실태를 보면 이지메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확실히 한국은 일본은 좇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는 고베(神□)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초등학생 살인 사건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초등 학교 남자 어린이의 머리를 잘라 학교 정문 앞에 버린 것이다. 그 범인이 열네 살짜리 중학교 2년생이라는 사실에 전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도대체 14세 소년이 왜? 일본 국민은 이해할 수 없는 의문 속을 헤매고 있다.

한국은 최근의 학교 폭력 원인으로 일본 만화를 지목하고 있다. 만화 가게나 출판사에 대한 단속도 시작되었다. 현재 일본 만화는, 세계적 문화 수출품으로 인정 받는다. 한국에도 <아톰><로봇태권V><은하철도 999>등 수많은 일본 만화가 소개되었으며, <알프스 소녀 하이디><캔디><플랜더스의 개> 같은 동화도 원착은 서양이지만, 일본에서 만화화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물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학교 폭력을 유발하는 만화도 있다. 단지 <아톰>을 읽을 것인가, <캠퍼스 브루스>를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소비자의 자유 선택이다. <아톰>을 좋아하는 소년들은 우주 과학자를 꿈꿀 것이다. 일본 만화에는 공(功)과 과(過)가 있다. 모든 일본 만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일본 비판'으로 한국 청소년 문제 막을 수 있나
그렇다면 학교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일본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산업사회화·도시화에 따른 가정의 무력화를 지적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가정을 벗어나고 가족과 떨어져 다른 세계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시절에는 가족이 뭉쳐 가정 중심의 인간 관계에 만족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풍부하고, 정보가 넘치는 무한욕망의 사회이다. 어린이들은 너무 일찍부터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패자가 필요하다.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희생양을 찾고 있다. 희생양, 즉 약자를 발견했을 때 안심한다.

일본 폭력 만화는 이런 경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욕망을 대리만족시키는 스트레스 해소용 소비재이다 .포르노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는 할 수 없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만화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화가 폭력을 부채질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실제 폭력을 대신해서 만화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소년·소녀들은 만화를 통해 폭력에 대한 욕구 불만을 해소하고 있을 것이다. 즉 만화가 폭력 확대를 막는 예방책이라는 견해도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고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도 일본에서는 옛날이이다. 한국에서도 중학생의 살인 사건이 일어날까 걱정이다. 일본 만화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시대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일본 비판'즉, '反日'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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