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일 어업 분규
  • 편집국 ()
  • 승인 1997.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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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위해서 민족 감정 자제하자

일본이 도발하기만 하면 우리는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몇 년 전 일본의 우익 정치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을때 김영삼 대통령까지 나서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일본의 노림수에 걸려들고 만다. 지금의 사태를 풀어가려면 한?일간의 어업사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어로 기술이 월등히 뛰어난 일본 어선은 우리 수역에 몰려와 싹쓸이 조업을 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긋고 이를 침범하는 일본어선에 함포를 쏘아댔다.

61년 박정희 군사 정부가 들어서고 한·일 국교 정상화로 가는 과정에서 일본은 안정 조업을 위해 어업협정을 체결하자고 요구했다. 국가 재건을 위해 돈이 급했던 박정권은 협상에 응했다. 그러나 평화선의 위력이 남아 있던 때라 일본은, 한국이 서해와 남해 일부에 직선을 긋고 그 안에서는 한국 어선만 조업하는 어업전관수역을 설치하는데 동의 했다. 어업전관수역선은 77년 영해법이 제정되면서 직선 기선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우리 어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해, 일본과 더불어 세계적인 수산 국가가 되었다. 77년 소련이 2백해리 어업전관수역을 선포하자 캄차카 반도 수역에서 밀려난 한국의 명태잡이 어선들이 일본 북해도 부근의 공해로 밀려들었다. 그러자 일본 어민들이 어획고가 줄어든다면서 한국 어선을 규제하고 일본 정부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제주도 어민들은 제주도 수역으로 진출하는 일본 어선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양국은 북해도와 제주도 근해에서 조업하는 어선을 지율 규제하기로 합의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일 어업은 이른바 '꽃놀이 패'단계로 들어갔다. 일본이 북해도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을 규제하면, 제주도로 출어하는 일본 어민들의 비명을 지르게 된 것이다.

동북아의 바다는, 서쪽보다는 동쪽에서 고기가 더 잘 잡힌다.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한국보다는 일본 연안에서 어획량이 더 많다. 조업 능력이 대등해져 일본 근해로 진출하는 한국 어선이 늘어나자 일본 어민의 불만은 날로 높아졌다. 94년 발효된 국제해양법협약도 그들을 불안케 했을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 독도가 한국의 기점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유권 다툼이 있는 지역으로 만들려고 최선을 다해 왔다. 여기에 우리 언론과 국민이 민족 감정으로 맞서 일본을 성토하면, 일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독도가 마치 영유권 다툼이 있는 곳인 양 국제 사회에 선전해 왔다.


어업협정, 한 · 중 · 일 3국이 함께 체결해야
일본의 영악함고 우리의 순진함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과 비교하면 극명해진다 중국과 대만이 아무리 항의해도 일본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은 그들의 우익 정치인이 센카쿠 열도에 상륙하려는 것을 강제로 저지해 가며, 이 섬을 영유권 다툼이 없는 곳으로 만들려 했다. 지금 일본이 일방적으로 직선 기선을 선포하고 한국 어선을 나포하는 것은 한국민의 민족 감정을 자극해 한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술수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의도에 말리지 않는 대신,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불법성과 인권 침해를 국제 사회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수산업계의 최대 고민은 우리 영해를 침범하는 중국 어선이다. 그들은 남북한 모두가 어업을 금하고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 수역에 들어와 싹쓸이 조업을 하고 있다. 이 수역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이 조류에 밀려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것을 남북 해군이 침범으로 오인할 경우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급선무는 일본과의 어업협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중국과 어업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 뒤에 일본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않아야 한다. 일본 역시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어업 분규를 빚고 있는 만큼 한·중·일 3국이 동시에 어업협정을 체결하자는 우리 외무부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민족 감정에 휩쓸려 국익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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