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세금이 ‘밀수 금’ 키운다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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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방 “뒷물건 팔아야 남는 장사”… 과세자료 갖추려 영수증 매입도


 

  서울 명동 부근에서 20년째 금은방을 경영하고 있는 ㅈ씨는 올해 1천8백50만원을 세금으로 냈다.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가 월평균 1백50만원 꼴로 모두 1천8백만원이었다. 종합소득세는 50만원이 채 안되었다.

  금싸라기 땅에 자리잡은 이 금은방은 보증금 6천만원에 월세 1백50만원으로 임대료는 다른 곳에 비해 매우 높다. 보증금을 빼더라도 연간 임대료로 1천8백만원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직원 월급으로 월 1백만원씩 연간 1천2백만원이 나간다. 세금과 임대료, 인건비로 모두 5천만원 가까이 지출된 것이다.

  세무서에 신고된 이 금은방의 연감 매출액은 1억2천만원이다. 매출액의 40% 이상 순이익을 올려야만 겨우 세금, 임대료 및 인건비 5천만원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귀금속은 1~2년 뒤 되파는 경우가 많아 되팔 때 어느 정도 값을 쳐주기 위해서 10% 이상 남기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액면대로라면 이 금은방은 오래 전에 문을 닫았어야 하지만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고 임대료도 밀리지 않고 있다. 과세 소득으로 잡히지 않는 밀수품, 이른바 ‘뒷물건’을 취급하지 않고서는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상 금’ 값, 국제시세보다 15% 높아

  우리나라는 금에 많은 세금을 매기고 있다. 금을 수입할 때 관세 4%와 부가가치세 10%가 부과된다. 이로 인해 국제시세와 국내 금값은 정상적인 금의 경우 15% 가량 차이가 발생한다. 이 금을 재료로 하여 반지·목걸이 등 귀금속 제품으로 세공했을 때 그 가격이 50만원을 넘어서면 특별소비세 20%가 덧붙여진다(보석류는 60%). 세금이 많으면 그만큼 세금을 포탈하는 밀수꾼의 이익도 커져 밀수는 늘게 된다. “현행 세제가 밀수를 부추기고, 그 바람에 정부의 조세수입이 줄어든다”는 업계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얼마나 많은 금이 유통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연간 80t~1백t 가량이 공급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중에는 밀수되는 금의 양은 80%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밀수된 금은 ‘나까마’라 불리는 중간상인의 손을 거쳐 도매업자에게 넘어간다. 시중시세라는 것은 이 단계에서 형성된다. 시중시세는 국제시세보다 10% 가량 높고 정상적으로 생산 또는 수입된 금값(공매가)보다는 5% 가량 싼 것이 보통이다. 이 가격차 때문에 국내의 금 생산업체는 국내시장을 포기한 채 생산량의 대부분을 홍콩 등 해외 금시장에 내다 판다. 우리나라에서 금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럭키금속이다. 럭키금속은 주로 동광석을 제련해 금을 생산하고 있다. 동광석에는 동 이외에도 금과 은이 약간 함유되어 있어 부산물로 금을 뽑아낼 수 있다. 이렇게 생산하는 금은 연간 20t에 이르지만 이중 7t 정도만 국내시장에 판다.

  도매업자 중에는 밀수꾼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 국내에서 생산된 금만을 취급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도매상은 이중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우선 시중시세보다 공매가가 비쌀 경우 비싼 값에 금을 사서 싸게 팔아야 한다. 또 부가가치세 10%를 고스란히 떠안는 경우도 생긴다.

  부가가치세는 도매업자 제조업자 소매업자(금은방)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넘겨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는 금의 유통과정 속에서 실종된다. 현재 전국에는 2만여개의 소매상이 있는데 이중 95% 이상은 일반과세자가 아닌 과세특례자이다. 일반과세자와는 달리 과세특례자는 과세자료를 챙겨야 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과세특례자는 연간 매출액이 3천6백만원 미만인 것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영수증 장사로 적자 메우기도

  이런 유통구조 속에서도 과세자료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금이 팔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것은 세금을 더 내는 한이 있어도 깨끗한 장사를 하겠다는 소신파가 존재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영수증 자체가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1백% 밀수 금만 취급하는 업자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과세자료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므로 영수증이 2~3%의 가격으로 매매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금을 취급하는 도매업자들 중에는 영수증 장사로 적자를 만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즉 공매가가 1돈에 4만원이고 시중시세가 3만9천5백원이라면 정상적인 금을 매매하는 업자는 돈당 5백원을 손해보지만 영수증을 2%에 팔면 8백원을 벌 수 있으므로 오히려 3백원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의 금 생산업체는 관세와 부가가치세가 존재하고 금은방 대부분이 과세특례자로 남아 있는 한 밀수와 변칙거래는 근절되기 힘들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을 생산·공급하는 입장에서 15%라는 가격상의 불리함을 안고 있는 데다 정상적인 금이 구색맞추기 식으로 매매되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가가치세에 손을 댄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귀금속 판매업자들도 금은방이 일반과세자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가가치세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관세법과 특별소비세에 관심을 쏟는다. 특히 관세법 제 175조 제2항과 제3항은 업계의 생존권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귀금속 판매업자들은 지난 86년의 수난을 잊지 못한다. 아시안 게임이 있기 전 서울 세관 직원들이 명동과 남대문 일대의 금은방을 급습해 진열된 물품을 보자기로 싸들고 간 일이 있었다. 금은방으로서는 아무리 제 돈을 주고 산 물건이라고 해도 그것이 밀수품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보일 수 없기 때문에 밀수품 단속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법원 판례는 설사 의심이 가더라도 판매업자가 증거를 댈 의무는 없다는 쪽이었다. 뒤집어 말해 판매업자가 밀수품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세관원이 밀수품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압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유권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상점 주인 수백명이 몰려가 빼앗긴 것을 되돌려 받긴 했으나 그 사건은 자신들이 밀수꾼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90년 12월30일 신설된 관세법 제175조 제2항과 제3항은 진열된 물품에 대한 증거자료를 금은방이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조항은 밀수 단속을 용이하게 하는 반면, 모든 귀금속 판매업자를 밀수꾼으로 만들 수 있다. 판매업자들은 자기들이 뒷물건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항이나 항만을 단속해야지 시장을 단속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세금 더 내더라도 떳떳이 장사하고 싶다”

  또한 과도하게 부과되는 특별소비세를 조정해준다면 세금을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떳떳이 장사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50만원으로 되어 있는 특별소비세 면세점을 2백50만원으로 조정하고 세율도 대폭 낮춘다면 과세자료를 성실히 갖추고 일반사업자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특별소비세는 귀금속 20%, 보석 60%로 매겨져 있다. 따라서 50만원짜리 금반지를 팔면 10만원, 1백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면 60만원의 특별소비세를 물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소비자 가격에 포함시킬 수 없으므로 과세자료 또한 남길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특별소비세를 물지 않기 위해 밀수품에 유혹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소비세가 조정된다 해서 밀수가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다. 특별소비세를 회피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1백만원짜리 귀금속을 거래하면서 업자들끼리 짜고 50만원 미만의 영수증을 끊으면 특별소비세를 회피할 수 있다. 또 임가공은 특별소비세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마치 손님이 금과 보석을 가지고 와서 세공만 부탁한 것처럼 위장하면 특별소비세를 물지 않을 수 있다.

  특별소비세를 조정해야 밀수가 줄어든다는 판매업자들의 주장에 대해 재무부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금은방이 특별소비세보다 종합소득세가 더 무서워 소득 노출을 꺼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다. 또한 부가가치세는 일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소득 차이에 따른 고려가 없으며, 이같은 역진성을 보완하는 것이 특별소비세라면서 특별소비세가 세수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91년 특별소비세로 걷힌 세금은 모두 2조3천5백억원이고 올해에는 2조8천억원이 거두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국세의 5%에 이르는 특별소비세를 당장 줄인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재무부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귀금속과 보석 제품에서 거두어들이는 특별소비세는 그다지 많지 않다. 91년의 경우 보석에서 3억원, 귀금속에서 5억원을 걷었을 뿐이다. 매년 50만쌍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중 5만쌍이 1백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물론 주고받는다고 쳐도 그 규모는 1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부과될 수 있는 특별소비세는 무려 6백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금속과 보석에 대한 특별소비세 징수액이 8억원에 불과하다면 실적이 이만저만 저조한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 관계자는 과세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해 특별소비세를 징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자료의 미비는 상인과 세무공무원 사이에 흥정을 낳기도 한다. 금은방 주인은 특소세를 얼마로 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세무공무원과 옥신각신한다고 털어놓았다. 세무공무원은 어림잡아 금은방 전체 매출의 40%에 대해 특별소비세를 물라고 요구하고 상인은 30%만 물겠다고 버티다가 대개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는 것이다.

  금에 물리는 세금은 무겁지만 세수의 실속은 그다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금이 1백t 규모라고 할 때 관세와 부가가치세만 제대로 물려도 1천5백억원의 조세수입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같이 엄격한 세제는 국제 시세와 국내 금값의 격차를 불러 밀수를 가능케 할뿐더러 조세수입의 감소를 가져온다. 한때 밀수가 많았던 일본의 경우 30%의 소비세만을 적용한 결과 금괴 밀수가 자취를 감췄다.

  혼탁하기만 한 금의 유통구조 속에서 손기술로 금메달을 딴 기능인들도 헐값 취급을 받고 있다. 국제기능올림픽 금세공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6연패를 기록한 바 있으나 이들 기능인의 손재주는 오히려 일본에서 더 인정받는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며 약 1천5백명 정도가 일본을 오가며 세공 일을 하고 있다. 15일짜리 관광비자를 끊고 도급제로 일할 경우 한국에서 받는 월급의 2배 이상 월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귀금속 분야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20년 경력의 한 세공인은 “양복 공임은 30만원 이상 불러도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금 세공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팔찌를 하나 만들더라도 금실을 뽑아 그것을 엮고 일일이 용접하는 데 꼬박 4시간이 소요되지만 세공료는 2만원도 채 안되기 때문에 기능인의 사기가 떨어지고 일을 배우려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귀금속 및 보석 산업을 산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해라고 말한다. 금에 많은 세금이 붙는 것도 ‘귀금속은 사치품’이라는 인식 때문이며 이같은 고정관념이 귀금속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한다.

  태국의 경우 귀금속 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되고 있다. 그 결과 귀금속·보석류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년 현재 6.1%, 금액으로는 14억달러에 이른다. 반면 우리의 수출액은 7천만달러도 채 안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의 기능인력은 수준이 높아 귀금속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경우 10배 이상 수출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동차는 10년이 못가 폐차되지만 금은 10년이 가도 일정한 가치를 보유한다. 게다가 금에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밀수로 인해 더럽혀지고 있는 금은 부리기에 따라서 값어치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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