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속에 무엇이 담겨 있나
  • 이철현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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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801us의 추락 원인을 찾기 위해 관계 기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고 조사를 주관하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제일 먼저 기체 안에 탑재된 상자 2개를 수거했다. 흔히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이 두상자의 정식 이름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자료기록장치(FDR)이다. 이 두 장치에는 비행기 추락 원인과 그 과정을 재 구상할 수 있는 비행 자료와 조종실내 대화 내용이 담겨 있어, 항공 사고가 날 때마다 사고 원인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래서 이 비행기가 추락할 때 가장 충격을 덜 받는 꼬리 부분에 답재한다.

조종실의 음성기록장치는 조종사와 관제사의 통화 내용은 물론 엔진 소음까지 녹음한다. 기장과 부기장 사이 천장에는 녹음용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조종실과 관제탑 간의 교신과 조종실내 대화 뿐만 아니라 엔진 소음과 경고음, 심지어 랜딩 기어를 내릴 때 나오는 미세한 소리까지 담아 사고 당시 엔진 상태나 기체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항공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비행기의 녹음 장치 내용을 분석하는 판독위원회가 설치된다. 정부의 관계 기관, 비행기와 엔진 제조업체, 항공사 대표들이 주축이 되는 판독위원회는 시간 단위 별로 사건 일지를 구성한다. 판독위원회가 작성한 조종실 대회 내용 일지는 항공 사고의 원인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는 하지만 고도나 비행 속도처럼 정확한 숫자를 담을 수는 없다.

비행자료기록장치가 이를 보완한다. 비행자료기록장치는 시간·고도·풍속·방향같이 당시 비행 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를 스물여덟 가지 이상 기록한다. 비행자료기록장치에서 나온 지표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고 당시 비행기가 처한 상황을 재연하는 데 이용된다.

항공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두 장치를 수거하는 일이 필수이다. 이 장치들에는 수심 4천3백m에서도 37.5kHz 음파를 계속 발생하는 장치가 붙어 있어 파손되지 않는 한 수거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장치들이 항공 사고와 관련한 모든 의문에 대해 언제나 속시원한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자료를 담고 있어 항공사와 비행기 제조업체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미국 의회는 워낙 사안이 민감한지라 사고 비행기의 조종실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게끔 했다). 또 갑작스런 폭발이나 조종사가 인지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부 추락 사고에 대해서도 명확한 원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만일 대한항공 801편의 블랙박스가 비행기 추락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해 시간을 끈다면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새로운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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