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즐거운 M&A 산업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7.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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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 악화로 ‘매물’ 증가 … 중개 회사 · 종금사 등 활약



대기업까지 줄줄이 쓰러지는 불황 때문에 오히려 특수를 누리는 사업이 있다. 바로 경영난에 처한 기업의 합병·매수(M&A)를 돕는 M&A 사업. 현재 국내에는 백여 기관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합병·매수 중개 회사이다. 현재 20~30개 정도의 중개 회사가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한국M&A*(사장 권성문)이다. 업계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라는 소리는 듣는 권사장(36)은 연세대 경영학과 81학번이다. 대학 졸업후 삼성물산에 근무하다가 87년 미국에 건너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동부그룹과 한국종합금융에 근무하면서 합병·매수 실무를 익혔다. 95년 1월 독립해 한국M&A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지금은 변호사 1명과 공인회계사 3명 등 직원이 20명이다. 이들의 연봉으니 기본급에 수당을 협쳐 최소 5천만원에서 최대 3억원에 이른다.

권사장은 단순히 기업의 합병·매수를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직접 인수해 경영을 혁신해 기업의 가치를 높인 뒤 다시 파는 방식도 택한다. 영우통상을 사서 6개월 만에 3배 가격을 받고 한솔그룹에 판 것도 그런 경우이다.

지금 그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섬유 봉제 업체인 군자산업을 인수해 회사 명칭을 ‘미래와 사람’으로 바꾼뒤, 공장을 남미로 옮기고, 정보통신과 유통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업들은 다시 팔지않고 직접 경영할 생각을 갖고 있다.

권사장은 지난 7월 초 자살한 부산 태화쇼핑의 김정태 회장이 회사가 부도 나기 직전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자살까지 생각하면서도, 합병·매수를 통해 적극적으로 회사를 살릴 생각은 못하는 것이 우리 기업인들의 정서 같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코미트M&A 윤현수 사장(45)도 M&A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전문가이다. 경영학 박사이자 공인회계사인 그는, 산업은행을 거쳐 한외종금에서 국제금융부장 과 M&A팀장을 역임했다. ‘합병·매수는 종합 예술이다’ 라고 강조하는 그는, 합병·매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법률·회계·금융·세무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협상력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합병·매수 업계에서 주목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합병·매수를 학문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성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그는 회계사·변호사·교수 등을 망라하는 한국M&A학회를 창립했다. 현재  75명이 가입되어 있고, 올해 말까지 회원을 백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벌써 합병·매수 관련 세미나를 두 번 개최했고, 연1회 학회지도 펴낼 계획이다. 아울러 관련 법룬·판례·사례등을 책 세 권으로 묶어낼 계획도 갖고 있다.

다음으로 합병·매수에 적극적인 기관은 종합금융회사이다. 현재 국내에는 30개 종금사가 있는데, 이 중 한국종금과 한외종금이 합병·매수에 적극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은 한국종금. 94년 국내 처음으로 합병·매수를 성사시킨 이 회사는, 지금까지 20건을 성사시켰고 10건을 진행 중이다. 한국종금은 특히 미국 보스턴 은행과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국제적 합병·매수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종합종금 M&A팀장은 영국인 데이비드팀블릭(29)씨, 옥스퍼드 대학에서 결제학을 전공하고 미국의 6대 회계법인인 아서 앤더슨에서 7년간 근무한 두, 지난해 9월 스카우트되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바클레이스 은행 임원으로 나진·선봉 특구 사업에 관여하고 있어 가족 모두가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팀내에서 그가 주로 맡는 업무는 국제적 합병·매수이고, 국내 기업 간의 협병·매수는 이 관 고장(36)이 맡고 있다.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종금에 입사해 10년째를 맞고 있는 이 과장은, 5년 간은 기업 공개·채권 투자·단자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한외종금은 지난해 말 윤현수씨가 퇴사한 후 기업들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져 한동안 위축되었다가 지금 복구하고 있는 중이다.

합병 · 매수 중개 수수료 수십억 원 까지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기관은 증권사이다. 전체 33개 증권사 가운데 6 ~ 7개 정도가 M&A팀을 갓고 있고,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은 쌍용투자증권과 대우증권이다.

쌍용투자증권에 M&A팀이 구성된 것은 90년 9월, 당시 과장이던 김석동 현 사장은 기업간 합병·매수를 유망한 사업으로 보고 팀을 구성해 활발히 활동했다. 그후 한동안 주춤하다가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7월30일에는 사보이호텔을 대리해 신성무역을 매수함으로써 언론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것은 지난 4월 의무 공개 매수제가 도입된 후 증시를 통해 합병·매수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현재 쌍용투자증권의 M&A팀은 이병훈 차장(35)이 이끌고 있다.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 81학번으로, 한국기업평가(주)에 다니다가 89년 말 쌍용증권으로 옮겼다. M&A팀 초창기 맴버로서, 중간에 기업 공개 업무를 보다가 지난해 다시 M&A팀에 합류했다.

증권업계의 선두 주자를 자처하는 대우증권은 이황상 팀장이 맡고 있다. 쌍용투자증권이 국제적 합병·매수에 강한 반면, 대우증권은 국내 기업간 합병·매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그밖에 은행권에서는 제일은행·산업은행·국민은행·장기신용은행 등이 있고, 회계법인 가운데 안진·청운·안건 회계법인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참여하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을 아직 미미한 상태이다.

이들 중개 기관들은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우선 합병·매수 중개회사들은 기업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기동성 있게 대처할 수 있고, 비밀 유지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반명 종금사는 국제 금융·리스·단자·투신 업무를 함께 하기 때문에, 금융 상품과 연계해 합병·매수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증권사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많고,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추고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증권사는 대부분 M&A팀을 독립된 공간에 배치하는데, 이것은 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그밖에 은행·신용평가회사·회계법인이 기업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고급 인력을 확보하고 합병·매수 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몇 개의 전문 중개 기관과 종금사, 증권사가 주도하고 있다.

중개 기관이 협병·매수를 중개하고 받는 수수료는 보통 거래 대금의 2~3%이지만, 사안의 복잡성이나 기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건당 수수료는 수억~수십억 원에 이른다. 최근 들어 특히 많은 기관들이 중개 업무에 뛰어 들고 있지만, 정작 이익을 남기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이다.

그러나 기업의 협병·매수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변호사들이다. 기업의 합병·매수는 거래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부분 소송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적대적 합병·매수이다. 이때 경영권 탈취와 방어를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여기서 용맹을 떨치는 것은 대부분 대형 법률 회사들이다.

대표적인 기관은 김&장·태평양·세종·한미 법률사무소. 이중 가장 규모가 큰 김&장 법률사무소는 소속 변호사가 백여 명, 공인회계사·세무사·외국 변호사가 1백30명에 이르는 초대형 법률 회사이다. 합병·배수를 둘러싸고 대기업간에 싸움이 붙으면, 싸움은 반드시 법률 회사 간의 대리전으로 비화한다. 합병·매수와 관련된 규정이 대단히 복잡해서 변호사 1~2명이 감당하기 어렵고, 기업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최고 경쟁력을 갖춘 법률 회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미국, 전체 거래 60%는 상위 다섯 업체 몫
김&장의 이경훈 변호사(38)도 합병~매수와 관련해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이다.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 주 변호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는 그의 주특기는 증권법. 합병·매수와 관련한 사건이 터지면 그는 전문 분야 별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과 팀을 짜서 소송에 나선다. 이때 상대편 법룰 회사에도 합병·매수만 담당하는 변호사는 없다. 그만큼 합병·매수 소송 건수가 적다는 얘기다. 95년부터 점차 늘던 합병·매수 소송은 올해 4월 증권거래법이 바뀐 뒤에 크게 줄었다. 의무적 공개매수제도가 채택된 뒤 기업 간 합병·매수가 뜸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 대부분은 앞으로 합병·매수 사업이 호황을 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쟁력 없는 경영인과 기업을 퇴출시키기 위해서는 합병·매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에 꽃피는 합병·매수 사업, 여기서 주도권을 장악할 기관은 과연 어디일까. 수백 개의 합병·매수 중개 기관이 난립한 미국에서도 전체 거래의 60%정도는 상위 5대 중개 기관이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우리나라도 사정이 똑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개 기관이 난립해 있지만 정작 이익을 보는 곳은 몇 군데 안되고, 적대적 합병·매수에 따른 소송 사건도 결국 초대형 법률 회사 서너 곳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합병·매수 업계는 지금 대세 상승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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