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의 성격 규정
  • 박권상 (편집고문) ()
  • 승인 2006.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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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번호를 바꾸기보다 차라리 기존 체제를 보완하는 보수주의 노선임을 선명히 하는 것이 정직하지 않을까.”



  
   새해 출범할 김영삼 정권이 제6공화국 제2기 정권이냐 제7공화국이냐 하는 논의가 있자 김당선자는 진정한 민주정권이라는 점에서 4·19 후 자유선거로 탄생했다가 군인한테 빼앗긴 제2공화국을 제1공화국으로 보고, 이번에 자유 공명선거로 대통령이 처음 탄생했으니 새 정권이야말로 두 번째 공화정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대통령 선거 기간 김영삼 후보는 그가 당선되어 새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그것은 결코 6공의 연장이 아니라고 단언한 바도 있다. 그렇다면 새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리적인 답변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3, 4, 5, 6공으로 부르다가 다시 ‘2공’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색한 것 같고, 대통령선거만 가지고 새로 구성되는 정부가 장차 완전무결한 민주 공화정이 될 것이라고 미리 단언한 것도 성급한 일이다.

   나의 소견은 6공이니, 7공이니 따지는 것 자체가 쑥스럽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공화국에다 번호를 붙이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한테 배운 것이다. 1789년의 대혁명 후 성립한 자코뱅 정부를 후세 사람들이 제1공화국이라고 불렀다. 국가보다 인민 위주의 공화정이었다. 10년 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제1제정으로 대체되어 국가 위주의 정치체제가 섰다. 그후 부르봉 왕조(1815~1830)와 오를레앙 왕조(1830~1848)를 거쳐 1848년 2월 혁명으로 처음 보통선거가 실시되고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74%의 지지로 대통령이 됨으로써 2공화정이 성립했으나 4년 임기가 끝나자 그는 국민투표를 거쳐 황제로 등극하였다.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이었다.

 

 정부수립 후 5공까지 진정한 의미의 공화정 없었다

   그는 천재적 지도력을 발휘해 프랑스를 다시 유럽의 강국으로 부활시켰으나 18년 후인 1870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른바 제3공화정이 들어섰다. 완전히 의회가 멋대로 정부를 만들고 부순 제3공화정은 제2차 대전 때 히틀러의 침략으로 허망하게 무너졌고 제2차 대전 후 제4공화정이 들어섰으나, 국회의 힘이 막강해져 내각 평균수명 6개월이라는 극도의 정치혼란 속에 58년 알제리 주둔군 반란의 수습에 실패하자 제2차 대전의 영웅 샤를르 드골 준장이 정권을 위임받아 사태를 수습한 뒤 대통령 주도의 새 헌법이 채택되고 이른바 제5공화정이 열려 35년 간의 안정기에 들어섰다.

   프랑스에는 지난 2백년간 파란만장한 제도의 변천이 있었다. 제5공화정이라 했지만, 제5공화국 헌법은 열다섯번째의 헌법이다. 그러나, 큰 줄기는 나폴레옹 제정처럼 강한 행정부 주도냐 자코뱅 정부처럼 강한 의회 주도냐 하는 점에 따라서 제도가 바뀌고 제정이냐 공화정이냐 하는 것이 구분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정부수립 후 적어도 ‘왕정’은 없었다. 따라서 잇따른 정변에도 불구하고 왕정과 대칭되는 공화정으로 불릴 수 있으나 ‘공화정’이라는 개념이, 전제정치나 독재체제와는 달리 최고권력이 한 사람이나 한 계급에 있지 않고 국민 전체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승만의 12년 통치는 출발만 공화정이었을 뿐 공화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박정희의 18년 통치 역시 공화정이라는 말이 해당될 수 없다.

   총칼로 권력을 잡고 명령으로 나라를 통치한 전두환 정권 8년 통치에도 역시 공화정의 이름은 적절치 않다.

 

 대통령직 인수위 명단에 ‘과거와 단절’ 의지 안보여

   그러나, 노태우 정권의 제6공은 성립과정이나 통치실적을 회고할 때 전제나 독재로 규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공화정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더구나 5년 임기 중 3년 간을 김영삼씨 등 ‘반군정 세력’과 손을 잡은 이른바 민주자유당 정부였다. 노태우씨가 군인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곧 군사정부 또는 군정연장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3년 간이나 정치의 책임을 공유했고 같은 민자당 구성원이었던 사람인데, 당의 총재가 노씨로부터 김씨로 바뀌었다는 사실 때문에 “6공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김당선자가 지난달 19일 아침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감격스런 목소리로 변화와 개혁을 선언할 때 그의 뒤쪽에 기라성처럼 포진한 지도자 대부분은 국민의 눈에 낯익은 사람들로 3, 4, 5, 6공에서 고관현직을 지낸 분들이다.

   만일, 김영삼 대통령 정부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세명의 육군대장을 이끈 3, 4, 5, 6공 시대와 단절하고 거기에 대한 ‘변화와 개혁’을 기본노선으로 삼고, 주도세력이 민주개혁의 인물로 바뀐다면 ‘제7공’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명단을 보더라도 과거와 단절하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존의 체제와 성취의 토대 위에 그것을 보완하는 보수주의 노선임을 선명히 하는 것이 정직하고 안전하지 않을까. 굳이 공화국 앞에 번호를 바꿔 새 정권의 성격규정에 혼란을 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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