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善 정주영, 내우외환
  • 서명숙 기자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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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자충수에 국민당 ‘생존’의문 ??? YS의 정대표 은퇴 유도‘ 관측도


 

 

 대통령선거 이후 끊임없이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국민당과 鄭周永 대표의 시련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시련의 끝’은 실용적인 경제 대안을 제시하며 나름대로 독특한 목소리와 자기 입지를 지니는 명실상부한 공당으로서의 제출발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파행적인 정치상황의 산물로서 기형적으로 탄생했던 거품정당의 소멸로 낙착될 것인가.

 최근 金東吉 의원의 최고위원직 사퇴로 노출된 당 내분과 “한국은행 3천억원 발권” “새한국당과의 통합은 실수” “이종찬 의원에게 50억원 제공” 발언 등 정대표의 잇따른 자충수가 빚어낸 국민당 사태는 이처럼 정당으로서의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한가라는 의문까지 던지고 있다.

 국민당 생존 가능성에 대한 해답은 여러 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다. 우선 각기 다른 정치행로를 걷다 모여든 ‘외인부대’ 출신들이 전투상황이 아닌 평상체제 아래서 얼마만큼 정치적 결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가 하나의 열쇠다. 정대표의 막강한 자금력과 그의 ‘양김 배제 연합전선’에 동조? 편승한 다양한 정치세력이 전쟁이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얼마나 의연하게 당을 지킬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金泳三 차기대통령의 대 국민당 전략도 커다란 외생변수다. 지지기반이 겹치는 국민당의 출현과 대선기간 정대표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았던 그는 선거기간 내내 “재벌의 잘못된 정치참여는 반드시 바로잡겠다” 고 공언해 왔다. 선거 직후부터 정대표가 수차례에 걸쳐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음에도 완곡히 거절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李源宗 부대변인을 통해 “국민화합과 법질서를 지키는 것은 별개”라며 국민당의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을 검찰에 촉구하는 등 ‘강공’의 끈을 좀처럼 늦추지 않고 있다.

 정가에서는 김차기대통령의 지속적인 강공수는 정대표의 정계은퇴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라는 관측도 무성하다. 정대표의 은퇴는 곧 국민당의 와해로 이어질 게 뻔하므로, 김차기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강경한 반대자는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나머지 와해된 국민당 세력을 흡수해 거대하고 강력한 여당을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당의 앞날을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무엇보다도 정대표 자신이다. 정대표야말로 막대한 자금력과 권위주의적 당지배를 통해 현대 출신은 물론 친구공화당계, 친민주당계, 14대 공천 탈락 인사 등 다양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 출신을 모두 뭉뚱그려 한틀에 녹여온 거대한 용광로였다.

 국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최근 국민당이 드러내고 있는 한계는 곧 정대표의 한계이자. 국민당의 시련은 곧 정대표가 뿌린 씨앗 때문이다”라고 전제하고 “공당체질 강화나 당내 민주화 구호도 정대표 자신의 변화 없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하고 잘라 말한다. 지난 6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김동길 의원이 재합류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 당직자들에게 “정대표의 2선 퇴진과 당 발전기금 2천억원의 조속한 집행 등 최소한의 조치를 약속하지 않는 한 복귀할 수 없다”고 고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대표 도착시간이 회의 시작시간

 국민당 공당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을 ‘정대표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독선’으로 지적된다. 이는 정대표의 정치형태를 규정짓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권위주의와 독선은 공당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가장 주요한 민주적 형식이자 절차인 각종 당 회의에서부터 드러난다. 물론 국민당에도 다른 정당처럼 당무회의, 최고위원회의, 주요당직자 회의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토론은 지루하고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인 ‘행위’로 간주돼온 것이 국민당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정대표 자신은 “나는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털어놓곤 했다. 따라서 정대표가 주재하는 회의는 30분을 채 넘기지 않은 채, 일방적인 보고와 지시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대표가 한참 발언중인 참석자를 향해 “이봐, 이봐요”하고 손을 내저으며 발언을 토막내는 일은,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회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의제와 결정할 수 있는 권한 범위가 다르고, 의결권과 발언권을 가지는 구성원과 단순한 배석자는 엄밀히 구분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국민당에서는 이런 구분조차 종종 무의미해지곤 했다. 정대표는 간혹 회의 정식 구성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싶으면 눈에 띄는 배석자들에게 “어이, 이리 와서 자리 좀 채우지”라며 즉흥적인 회의 참여를 지시한곤 했다. 국민당 최고위원을 지내다 탈당한 金光一 전 의원은 “한마디로 장소도, 위제도, 구성원도 따로 없는 회의가 국민당의 회의였다”고 술회한다.

 정대표의 독선적인 회의 운용방식을 둘러싸고 문제 제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국민당 주요 당직자 9인은 정대표의 미국? 멕시코 방문기간에 국내에서 몇 차례 회합을 가지면서 ‘당내 민주화 대책’을 숙의한 끝에 정대표가 귀국하자마자 김동길 최고위원을 통해 민주적인 회의 운영 등 부분적인 당내 민주화를 건의했고, 이 건의를 수용한 정대표는 “앞으로 모든 회의의 사회는 김동길 최고위원이 맡아보라”고 한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이 첫 사회를 맡은 회의에서 정대표는 김최고위원이 운을 떼자마자 즉각 발언을 시작해 회의 내내 발언을 독점함으로써 상황을 원점으로 돌리고 말았다.

 정대표는 자신의 정책결정 방식이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당 안팎의 지적에 대해 “3분의2쯤은 내 의견이 채택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당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나오기 때문이다” “오전 회의에 못나오는 게으른 사람들이 새벽회의를 독선, 독주라고 한다”는 등의 설명으로 이를 완강히 부인해 왔다.

 하지만 최근 정대표가 자신의 ‘자의적인 결정방식의 문제점’을 어쩔 수 없이 시인한 사건이 발생했다. 정대표는 지난 6일 오후 “李鍾贊 의원의 새한국당과의 통합선언은 나의 실수였다”고 기자들에게 털어놓으면서 “당무회의를 거치지 않고 자세한 법적 절차도 확인하지 않은 채 혼자 결정을 내린 게 나의 실수였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당무회의를 열 경황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대표는 이 발언을 통해 공당의 대표로서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혼자’ 결정을 내린 자신의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당 운영 방식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의 이런 정치 스타일은 효율을 신봉하고 기업주 의견이 그야말로 절대적인 권위와 권한을 지니는 사기업에서의 오랜 경험과 정치인들의 생산 능력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대표의 ‘사기업 오너’ 체질은 주변 사람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정대표의 사람 관리방식은 유난히 독특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의 눈에 들어 중용한 사람에겐 최대한 여건을 조성해 주지만, 한번 자신의 눈 밖에 났다 하면 가차없이 밀어내 버리는 방식으로 특정 지워진다.

 

주변에 대한 신임, 방배치로 표현

 즉흥적이고 변덕 많은 정대표의 주변 관리 방식은 ‘방배치’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돼왔다. 국민당 주요 당직자들과 당 간부들의 방은 종종 당내 서열이나 위계와 관계없이 정대표의 직접 지시에 따라 결정돼 왔다. “방배치를 보면 정대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의적인 방배치와 관련해 가장 큰 수모를 겪었던 당내 인사로는 楊淳稙 최고위원을 들 수 있다. 양최고위원은 창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창당준비위원장으로 거론될 만큼 국민당내의 ‘정치인 출신 간판얼굴’이었다. 그러나 부위원장을 맡았던 창당대회 이후 그는 상임고문으로 밀려났다. 급기야 총선이 끝난 며칠 뒤 정대표는 본인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상임고문방의 명패를 떼도록 지시했다. 일방적인 방 폐쇄였다. “국회의원(전국구)이 됐으니 의원회관 방을 쓰면 된다”는 게 정대표의 짤막한 설명이었다. 물론 의원직에 진출한 모든 당직자에게 이런 조치가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홀대했던 양상임고문을 하루아침에 최고위원으로 ‘모신’ 시기는 朴熙富 金燦宇 의원의 연쇄탈당으로 중부권 출신 의원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드러날 무렵이었다. 정대표는 당사를 옮길 때 다시 내주었던 양상 임고문실의 명패를 최고위원 명패로 바꾸라고 전격 지시한 데 이어, 모든 당직자들에게 최고위원으로 호칭할 것을 지시했다. 당 회의에서 양최고위원을 정식 선출한 것은 그로부터 한달이나 지나서였다.

 贇汶植 전 공동대표를 비롯 李慈憲 金龍渙 朴哲彦 의원등 새한국당의 ‘사전입당파’들이 입당인사차 처음 당사를 방문한 날 정대표가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도 “환영한다. 내일까지 14층에 여러분의 방을 다 만들어 놓을 테니 즉각 출근해 달라”는 것이다. 당직자들의 방 위치, 면적, 집기까지 일일이 직접 지시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신임을 표현하는 행태는 일견 정대표의 인간적 소탈함과 사소한 일도 직접 챙기는 치밀함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모든 구성원을 당내 위계질서와 연공서열이 아닌 자신의 판단에 따라 관리? 지배할 수 있다는 사기업 ‘오너’ 의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업인으로서 정대표를 입신의 경지에 이르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로서 기존의 발상법과 틀로부터 파격적일 만큼 자유로운 발상법과 탄력성을 발휘하는 것이 손꼽힌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에서 이런 강점은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일관성결여와 무모한 즉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일어난 몇 차례의 발언-번복 소동은 이와 무관치 않다. 국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최근 사태는 “정치경험이 짧은 정대표가 대선 패배 이후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초조감에서 무리한 자충수를 둔 것 같다”고 상황적인 이유를 든다. 그러나 정대표의 ‘일관성 결여’는 대선 이후의 특정 상황에서만 연출된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공산당 발언’ 파문이다. 정대표는 지난해 6월8일 ≪시사저널≫이 주최한 ‘대통령후보 초청 패널 토론회’에서 “공산당이 결성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허용하고 있지만 시장경제체제가 망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해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조순환 대변인의 발표처럼 정대표가 ‘헌법에서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까지 거론한 것은 아니었지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한에서 공산당 결성의 허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음날인 9일 정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장경제 원리를 부정하는 공산당 결성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전날 자신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었다. 정대표는 11월 중순께 재야 청년단체들이 주최한 한 정책토론회에서 “공산당 결성도 헌법산 보장된 사상 ? 결사의 자유에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사상의 자유가 있으므로 제3자를 해치지 않는 한 공산당을 결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대답함으로써 다시 한번 자신의 발언을 번복했다. 뒤이어 내각제를 당론으로 수용해 선거공약화하는 과정에서도 정대표는 ‘대통령직선제와 강력한 경제대통령’을 선호해온 자신의 논리를 바꾸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발언 번복과 입장 선회 사례 중에서도 ‘3천억 발권’을 둘러싼 한국은행과의 공방전은 단연 압권으로 기록될 만하다. 선거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정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발권은행인 한국은행이 3천억원의 통화를 찍어냈다”면서 이 자금이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라는 추가 질문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다”고 대답했다.

 

신뢰 잃어 정치입지 협소해진 듯

 한국은행  趙 凉총재는 중앙은행의 위상을 심각하게 뒤흔드는 발언이라 규정하고 즉각 공개사과를 요구했지만 정대표가 그럴 이유가 없다며 끝까지 응하지 않자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정대표는 지난해말 당 관계자를 보내 사과문을 전달한 데 이어 지난 5일에는 “나의 실수였다”고 공개사과 했고 한국은행이 고소를 취하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다.

 명백한 정대표의 판정패로 귀결된 이 공방전은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린 사건으로, 당에서도 가장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상대방과의 협상과 갈등의 과정이다. 이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정대표가 얻은 4백만 표에 가까운 표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충분한 정치력만 발휘했더라면 얼마든지 정치적 입지를 가질 수 있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승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당내외에서 정치적 입지가 더욱 협소해진 것 같다”고 진단한다.

 최근 정대표가 기업인으로써의 발상법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선거 이후 정대표는 당체질을 개선하고 강화하기 위해 전국 2백37개 지구당을 대폭 정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전국의 지구당위원장들은 대선이 끝난 3~4일 뒤 일제히 ‘사퇴서를 제출해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지구당 운영비로 매달 내려보내던 중앙당의 지원금도 올 1월부터는 전면중단한다는 통보도 함께 전달됐다. 대선을 위해 무리하게 확장해 놓은 지구당이 많은 데다 공조직이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은 게 사실인 만큼, 이런 조치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전국에 걸쳐 방대한 공조직 건설을 강행하도록 독려한 것은 정대표 자신이었다. ‘지구당위원장의 일괄 사퇴서 제출’도 정당 사상 초유의 일이다. 중앙당이 조직책을 임명하고 상부에서 지명한 조직책을 지구당 대의원들이 지구당위원장으로 추인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이다. 하지만 그 선출과 정은 대의원들의 동의와 제청이라는 ‘밑으로부터의 선출’ 형식을 갖추게 되므로 중앙당의 일방적인 사표 강요는 형식논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국민당은 조직정비 과정에서 승복하지 않는 지구당위원장들의 반발로 인해 또 다시 내분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광주?전남 지역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원칙적으로 부당한 처사지만 대선에 패배한 책임도 있어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구당 정비는 공당체질 강화보다는 대선이 끝났으므로 불필요한 투자는 않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결국 국민당의 현 위기상황은 정대표 스스로가 그 씨를 뿌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국민당의 생존 여부는 정대표의 정치인으로서의 진정한 변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몰 위기로까지 점쳐지고 있는 정대표는 정치인으로서의 본격적인 시련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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