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王’ 꿈은 현대의 ‘악몽’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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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1백9명 구속?수배 ??? 경영에 어려움



 현대그룹에 남아 있는 1백9개의 빈 자리는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다. 사표를 내고 국민당으로 갔던 임직원 3백여명이 재입사 형태로 복귀하고, 지난 연말 2백96명에 대한 대규모 임원 인사가 있었지만 이 자리의 주인들은 돌아오지 못한 채 구속되거나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현대그룹 집계에 따르면 대통령선거 기간 중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수배된 임직원은 모두 1백9명이다(표 참조). “선이 굵고 투박하며 저돌적이다”라는 평을 듣는 현대맨들은 창업주인  鄭周永 국민당 대표를 돕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국민당 당원 자격으로 자발적으로 뛰었다”고 말하지만 비자금을 조성해 국민당에 건네주고 회사조직을 동원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 관용 베풀 수 없다”

 현대그룹측은 선거가 끝난 뒤 대정부 화해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鄭周永 회장은 지난해 12월21일 과장급 이상 간부조회를 열고 “앞으로는 정치바람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고 金泳三 대통령 당선자에게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말했다. 정회장은 26일 金泳三 대통령 당선자를 찾아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김총재께도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걸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김당선자께서 하시는 일에 앞으로 2백% 협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당선자는 “기업이 정치에 참여해 경제공백을 가져온 건 매우 불행한 일”이라면서 “현대그룹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화해 움직임 속에 지난 연말 현대그룹측이 약간 안도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12월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현대 사옥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싸고 토지개발공사와 현대산업개발이 벌인 법정싸움에서 현대측이 승소한 것이다. 올 초에는 정부가 극동정유의 경영을 주주 자율에 맡기기로 함에 따라 최대주주인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쥘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는 9일 현대그룹에 대한 수사 등 선거사범 처리와 관련해 “민주사회의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결코 정치적인 사유로 관용이 베풀어질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혀 현대그룹의 희망을 꺾어 놓았다.

 선거 후유증을 가장 크게 앓고 있는 계열사는 현대종합목재이다. 작년 말의 임원인사가 있기 전 이사 11명 중  陰龍基 사장 이하 부사장 전무 상무이사 등 임원 7명이 구속되거나 수배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대종합목재 관계자는 “현재 임시방편으로 남아 있는 중역과 부서장이 운영위원회 형식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용기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66년 5월 현대건설에 입사,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거쳐 91년 1월 현대종합목재 사장에 취임한 전형적인 현대맨이다. 음사장은 정주영 대표가 자랑으로 여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항만공사 수주에 핵심 역할을 한 ‘주베일 공신’이다. 해외통으로 알려진 음사장은 대전 엑스포 행사에 많은 나라를 유치한 공로로 92년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다. 현대종합목재측은 “환경문제 때문에 동남아 원목 수입이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합판 가격이 오르는 등 목재수급 사정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 국제적으로 신망을 얻고 있는 경영자가 구속외어 있어 계열사 중 가장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종합목재 다음으로 타격이 큰 계열사는 현대정공이이다. 현대그룹측은 “수배중인     李銓甲상무가 기획실장이기 때문에 현대정공은 작년 결산과 올 사업계획을 짜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정공의 기술연구소장인 金東晋 상무에게는 현재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기술연구소 관계자는 “박사 11명, 석사 1백70명으로 구성된 연구집단이 선장을 잃어 정부 용역 연구, 엑스포 사업 등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장은 대전 엑스포의 관람객 수송용 자기부상열차를 개발 한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중공업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崔秀逸 사장은 64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후 현대중공업 관리이사로 발탁되는 등 고속 승진을 거듭해온 ‘관리의 귀재’ 이다. 86년 인천제철 대표이사 ? 부사장 ? 사장으로 있으면서 적자상태의 경영을 정상화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91년에는 현대그룹의 간판기업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발탁됐다. 최사장은 격렬하기로 소문난 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를 잠재우는 뛰어난 관리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張炳琇 전무는 재정을 맡아 왔고, 수배중인 安忠勇 부사장은 해양 공학 박사학위(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소지자로서 조선 수주에 큰 공은 세워 왔다. 현대그룹측은 “수배상태가 계속될 경우 올해 수주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국민당으로 갔던 사람들은 고향인 현대로 돌아왔다. 安充材 전 대한알미늄 사장은 회장으로 승진 복귀했고, 朴世勇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 겸 현대상선 사장, 李來欣 전 현대건설 사장은 종전 자리로 재입사했다. 총선 때 불구속 입건된 바 있는 李鉉泰 석유화학 사장은 회장으로 승진했다.

 국민당에서 현대로 돌아온 사람이 계속 근무할 경우 불이익이 없도록 배려하겠다는 것이 현대그룹 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회사에 남아 창업주에게 충성을 바치던 현대맨의 고통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안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이 되겠다는 단꿈에 취해 있던 鄭周永 대표는 수십년간 그를 도와 오늘의 현대그룹을 일구어낸 수많은 전문 경영인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악몽을 꾸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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