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후보의 전 · 노씨 조기 사면론/ 역사 퇴행에 앞장 서는가
  • 편집국 ()
  • 승인 1997.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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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과 국민회의 대선 후보가 경쟁적으로 전두환 · 노태우 전 대통령 조기 사면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먼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현 대통령 임기 내 사면’을 주장하자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추석 전 석방’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사사건건 치고받기를 일삼는 양당 후보가 이처럼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조기 사면론을 제기한 배경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김대중 총재는 동서 화합을, 이회창 대표는 국민 대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그러한 명분 뒤에는 12월 대선을 겨냥한 득표 전략이 숨어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동향 출신인 두 대통령이 함께 복역하고 있는데다가, 대선 후보마저 내지 못한 대구 · 경북 지역의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앞장서 사면 조처의 물꼬를 트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전 · 노씨 사면 논의만큼은 이 같은 차원에서 다룰 문제가 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뒤틀린 과거를 바로잡고, 무단과 폭압에서 벗어나 민주와 정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폭력에 의해 헌법 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이끌어낼 때까지 십수 년 동안 얼마나 큰 대가와 희생을 치렀던가를 돌이켜 보면, 전 · 노씨에 대한 응징은 개인에 대한 단죄 차원을 넘어 반민주에서 민주로, 폭력에서 정의로, 거짓에서 정직으로 나아간 역사 진전의 기념비적 사전이다. 더욱이 전 · 노씨 사건은 군사 반란과 내란 범죄 이외에도 검은 돈 수천 억 원씩을 은닉한 전대미문의 권력형 부패와도 연루되어 있다.

따라서 전 · 노씨 조기 사면론이 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들이 왜곡한 과거가 바로잡히고, 항구적을 민주와 정의에 입각한 국가 운영이 가능해졌다는 국민의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도 5 · 6공 때 만들어진 비민주적 제도가 상존하고, 한보 사태 · 김현철씨 국정 농단 등 권력형 비리와 부패 사건을 재판 중인 마당에 우리 사회에서 반민주 · 부패의 과거가 청산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5 · 18 광주와 5 · 6공 정권 아래에서 전 · 노씨를 비판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인권을 짓밟힌 수많은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보상이 제대로 완결되지 않았다.

참회하지 않는 자들을 용서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전 · 노씨가 국민과 역사의 이름으로 열린 법정의 서고에 진심으로 승복하고 전죄를 뉘우치는 자세를 보여 준 적도 없다. 이들이 참회하지 않더라도 국민 화합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이 전 · 노씨의 참회를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훼손한 과거에 대해 고백하는 것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싶어서이지, 그들의 비루한 눈물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80년대에 신군부가 집권한 과정과 5 · 6공의 권력 비리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실체를 사실 그대로 고백해 달라는 것이다. 전씨는 아직도 광주 학살의 참극이 어떠한 명령 체계에 의해서 자행되었는지 밝히지 않았고, 노씨는 92년 대선 자금 지원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밖에도 이들이 숨긴 내용들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사회를 요동시킬 것들이며, 그에 따라 다시 과거 청산의 회오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처럼 과거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참회의 고백을 통한 진실 규명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사면을 거론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일 뿐이다. 이미 노인이 된 두 수감자를 대통령의 은전으로 석방해 가족과 함께 추석을 지내게 하자는 인정과 배려를 운위하기에는 상황과 여건이 전혀 성숙하지 않았다. 여야 후보가 진심으로 전 · 노씨 조기 사면을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서 진정한 참회를 끌어내고, 과거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는데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납득할 만한 계기도 없이 ‘선 사과론’에서 ‘무조건 용서’로, ‘신중론’에서 ‘추석 전 석방’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뒤집는 김대중 총재와 이회창 대표는 역사를 퇴행시키는 어리석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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