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총탄’에 지방 기자들 비명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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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언론사, 감원 · 감봉 · 지면 축소 줄이어… 6개 일간지 통폐합 등 활로 모색

지난 1월5일자 광주 지역 일간지 <전남일보>에 중견 문인 문순태씨의 칼럼이 실렸다. 문씨는 이 칼럼에서 지난해 12월 <광주 매일> 부국장으로 재직하던 김준태 시인이‘IMF 총알’에 맞아 신문사에서 실직당한 사연을 거론했다. 문씨는 “자본의 총은 전두환의 총보다 더 잔인하고 무섭다”라는 김준태 시인의 허탈한 독백도 덧붙였다.

‘광주 MBC의 간판스타’로 자타가 인정하는 아나운서 나선희씨(34)도 IMF 총알을 예견하고 최근 명예 퇴직을 신청했다. 나씨는“당장 실직 위기를 모면 한다 해도 앞으로 2차,3차 감원 바람이 불 것이다.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프리랜서로서 활로를 모색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IMF 한파가 광주지역 언론계를 동사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광주일보> <전남일보> 등 6개 일간지가 경쟁하고 있는 이 지역 신문업계에서는 최근 감면과 초긴축 경영으로 언론인 백여 명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내쫒겼다.

 지난해 경영 위기로 신문사 매각까지 추진했던 <광남일보> (사장 신용호)가 최근 편집국 기자 11명을 포함해 20여 명을 해고한 뒤, 사원 임금의 23%를 삭감하는 초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언론인들, 집단 스트레스에 시달려
 <광주매일> (회장 고제철)은 1차로 김준태 부국장 등 21명을 감원한 데 이어, 또다시 20명을‘희망퇴직’형식으로 정리 해고했다. 이밖에 <광주일보> (회장 김종태)도 주필과 국장급 논설위원, 조사부장 · 교열부장 등 10여명을 감원한 데 이어 2차로 30명 감원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주필과 논설실장 등 20여명을 감원한 <전남일보>(회장 이정일)도 얼마전 31명을 해고했다. <전남일보> 노조는 그나마 협상을 통해 편집국 기자 7명에 한해‘1년 무급 휴가’형식을 도입하는데 동의했다. <전남일보>경영진의 입장은 여건이 호전되면 1년 뒤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것. 그러나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다. 모기업인‘라인건설’의 경영위기로 회사 존립을 걱정할 정도로 위험 수준에 이른 <무등일보>(회장 이상하)의 경우, 편집국 기자 8명을 포함해 총 44명을 정리 해고했다.

 정리 해고의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지역 언론인들도 이미 12월분 상여금을 반납하고, 올해 임금 10%와 상여금 200·400%삭감 등 엄청난 내핍 상황을 감내하고 있다. 인력축소 · 임금삭감 · 감량 경영에 이어 24~28면 체제이던 지면도 20면으로 축소되었다.

 광주 지역 언론계의 대량 해고 태풍은 지역 언론인들을 집단 스트레스와‘심리적 공황’으로 내몰고 있다. <광주매일> 노조의 한 관계자는 “생존이라는 사각의 링에 오른 기자들이 동료를 링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동료애는 사라졌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최근 광주 · 전남기자협회는 이러한 대량 감원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한 신문사 경영진을 항의 방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태. 조영석 광주 · 전남기자협회장은“경영 적자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기구 축소와 통폐합, 지면 축소, 임금 삭감 등 노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에 최후의 수단으로 감원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1~2개 신문사의 폐간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현재의 6개 신문사를 2~3개 정도로 통폐합하는 방안이 광주 지역 신문사 경영주와 지역 원로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광주 · 전남 지역은 유례없이 6개 신문이 과당 경쟁을 벌이면서‘언론 공해’또는 ‘모기업의 방패막이 신문’이라는 달갑지 않은 비판까지 들어왔다. 때문에 기자들조차 언론사 통폐합과 구조 조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이종수 교수(광주대 · 출판광고학과)는“광주 지역 신문사의 폐간이나 통폐합은 당연하다. 냉정한 시장 경제 체제에서 경쟁력 없는 지역 언론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6개 신문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며 5백여 기자가 쟁론을 벌이던 광주 · 전남 지역 언론계는 이제 기자 대량 해고로 어느 해보다 춥고 쓸쓸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羅權一  광주 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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